요한복음에 나오는 유명한 스토리중에 하나..
군중들에게 붙잡혀 예수앞으로 던져지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스토리이다..
“율법의 명령대로 죽일까요 말까요???”
군중들이 예수에게 물어본다..
땅에 쭈그리고 앉아 무엇을 적는 예수..
정확히 무엇을 적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군중들의 죄명들을 적었다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어쨋든..
중요한건..
군중들이 마음에 생기는 죄책감들을 못견디고
하나둘씩 그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는 예수님..
간음한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명하신다..
정말 좋은 스토리이다..
죄짓는 사람인 내가 죄짓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더불어 살때에
너무나도 필요한 용서의 교훈,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교훈을 주는
기막힌 스토리이다..
그래서 나는 이 스토리를 내 자신에게도 적용을 시키고
또 남들에게도 적용을 시킨다..
죄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한
“용서” 의 개념과 "자기비판" 의 개념을 가르쳐주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진정한 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면
이 스토리에 나오듯이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실것을 믿기에
이 스토리를 거룩한 스토리로 믿고 있고 그러기 때문에
이 스토리를 거룩한 책, 즉, 성경의 한 부분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
가장 오래된 요한복음 사본에는 없다..
그럼 언제 이 스토리가 나타나는가???
요한이 죽은지 사백여년후
그리스 성경사본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즉, 예수가 죽고 요한이 죽은 후 사백여년동안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읽고 있던 요한복음속에는 없던 이야기란 것이다..
처음 사백년동안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읽고 있던 성경의 한 부분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에 대한 “전설”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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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사백년후..
요한복음을 베끼던 어느 사본 복사자 (들) 가 (이)
입으로만 전해지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전설” 로 생각을 했는지
요한복음의 한 부분으로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삽입한다..
어느 복사자는 이 이야기를 현재의 요한복음처럼 8 장에 삽입하지 않고
요한복음 마지막장에 삽입을 하기도 했다..
또 어느 복사자는 요한복음이 아닌
누가복음 21:38 후에 삽입시킨다..
오리지날 요한복음에 속하지 않았던 이야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극소수의 원문 비평 학자들은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초기사본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초기 교인들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한 예수의 이야기를 통해
간음이 그다지 심각한 죄가 아니라는 인식을 사람들이 가질까봐
원본에는 있었던 이 이야기를
원본을 베끼는 과정에서 일부러 삭제시켰을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리고 4 백년후,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온 간음한 여인과 예수에 대한 “전설” 을
요한복음을 베끼던 복사자 (들) 가 (이),
그리고 누가복음을 베끼던 복사자 (들) 가 (이),
거룩한 책, 성경, 의 한 부분으로 삽입 시켰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요한복음 원본에 있었던 이야기를 어느 누가 삭제했던,
요한복음 원본에 없었던 이야기를 4 백년후에 어느 누가 삽입했던 상관없이,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인식해야할 중요한 사실은,
현재 우리앞에 놓여진 거룩한 책, 성경, 은
수백, 수천, 수만명의 복사자들에 의해 여러방면으로 변경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천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동안 수많은 변형을 거친 거룩한 책을
아무런 생각없이 읽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기에
2010 년 현재 간음한 여자들을 돌로 쳐서 죽이는 무식한 종교인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할 것이다..
7-8 백여년전에 쓰여진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예수에게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이 여인을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느냐고 묻고 있는 생각없는 군중들이
2010 년 현재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할 것이다..
모세의 법은 분명히 간음한 여자와 남자 둘 다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간음한 남자는 어디다 숨겨두고 간음한 여자만을 잡아와
돌로 쳐서 죽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예수에게 물어보는 생각없는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군중들이
2010 년 현재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성경에 쓰여져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모세의 율법이고, 예수의 가르침이고, 하나님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며 변해져가는 각시대의 관습과 풍토와 지식과 삶의 방식에 맞추어
생각이란것을 해가며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얼마나 무지막지한 인간의 행태가 탄생할수 있는지
기독교 역사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 알수 있을 것이다..
이천년전에 탄생한 예수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
이천년이 흐르도록 변하지 않는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
바로 “믿음, 소망, 사랑” 이라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각과 이성을 사용하며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는 각 시대와 장소에 맞추어 적용하며 살아야 하는것이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의무요 책임일 것이다..
아직도 모세의 율법을 들이대며 여인들을 돌로 쳐 죽이는 생각없이 사는 “미친사람” 들에겐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 상관없이
거룩한 책, 성경, 의 한 부분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간음한 남자는 봐주고 간음한 여자에게만 손가락질을 해가며 욕을 하는
생각없이 사는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미친교인” 들에겐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 상관없이
거룩한 책, 성경, 의 한 부분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주여 !!!
초기 요한복음 사본에는 없었던 이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4 백년 후에 어느 누군가에 의해 요한복음에 삽입시킬수 있도록 허락하셔서
진심으로 감사하옵니다..
이 이야기가 실화이던 전설이던 상관없이
모욕과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 수많은 여인들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고 사랑을 줄수있는 성경의 중요한 교훈으로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옵니다..
주여 !!!
우리 모두가
주님의 거룩한 책, 성경, 을 읽을때에
주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생각과 이성을 활용해가며 읽을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 멘…… !!!
나도 좋아하는 이야기
잘 지내지 모두 에게 안부를
글쎄 내 생각에는 생각 이란 단어 이성이란 단어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정의의 차이가 이 논점들에 대한 시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 된다.
생각, 이성 이란 단어의 생리적 과정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생각 없이 무조건 이라든지
아니면 생각 좀 하자는 제안에 대한 반감 머 등등이 것이
번번히 너와 논쟁을 벌이는 분들의 대다수의 글을 읽으면
첫번째로는 일단은 단어에 대한 서로의 정의 차이가 너무 먼것 같고
두번째로는 논점의 속뜻 보다는 단어 즉 표현의 글짜, 모양에 집착하것 같고
세번째로는 너나 내 나이가 아직을 이동네에서 너무 어린것 같다? ^^
즉 많은 부분 아직도 몸은 미국에 있지만 사고의 바탕은 한국적 사고 (나이와 관련하여) 남아 있는것 같고.
머 대충 그런것 같아
행복한 연말 보내고 아래의 내 도움 답신 좀 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