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보내고 2015년을 맞는 것보다, 어쩐지 음력으로 갑오년을 보내고 을미년을 맞는 소회가 여러 모로 더 착잡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갑오년이 지닌 역사적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120년 만에 맞았던 갑오년이, 이제 바야흐로 저물고 있는 것이다.
눈 내리는 만경 들 건너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봉준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의 연이다. 1894년 12월 2일(양력 12월 28일), 전북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서, 동지였던 김경천의 밀고로 관군에 체포된 녹두장군 전봉준이 순창군청을 거쳐 담양으로, 다시 일본군에게 인계되어 나주와 전주를 거쳐 서울로 압송되고 있ek.
그런데 또 한번의 갑오년이 저물어 가는 이 시각, 옷깃을 여미며 다시 읽는 이 시 속의 ‘우리 봉준이’는 단지 120년 전 혁명의 지도자였던 전봉준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지난 한해, 빼앗긴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탈환하기 위해 각지에서 싸우고, 매 맞고, 끌려가고, 법정에 서야 했던 이 땅의 민초들, 혹독한 더위와 모진 추위를 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모든 의로운 시민들의 얼굴이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는 영상 위로 겹쳐 떠오른다. 그래서 이 시는 지금, 갑오년을 보내는 우리의 심사를 노래하는 듯하다.
못다 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세밑, 적막한 마음에 120년 전 어느 날의 눈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돌아본다. 갑오년 벽두,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꿈꾸었나. 그리고 우리는 지난 한 해 어떻게 싸우고, 무엇을 쟁취하고, 또 무엇을 잃어 버렸나. 도도한 역사의 강물 앞에서, 단순한 계산으로 이해득실을 따지거나 승패를 평가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일지 모른다. 다만, 한 해 전, 120년 만에 돌아온 갑오년을 맞으며 너나없이 마음에 밝혔던 등불을 꺼트리지 말고, 묵묵히 그 심지를 다시 돋울 때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봄바람 찾아오면
수천 개의 푸른 기상나팔을 불어제낄 것을
그런데 ‘꽁꽁 숨어 우는’ 풀뿌리들의 기상나팔 소리 들려올 봄은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이 질문에, 신동엽 시인의 장시 <금강>의 한 대목(제12장)을 펴든다. 동학의 지도자 해월 최시형 이야기다.
해월은,
1898년 6월 2일
서울 광화문 밖 형장 교수대에서
순교하던 일흔두 살,
34년간을, 탄압에 쫓기며
동학을 물고
전국 방방곡곡
농어촌 찾아
노동자를 조직,
포교했다.
(중략)
가는 곳마다,
내일 떠날지
오늘밤 떠날지
알 수 없는 빈 집,
쓰러진 외양간에 묵으면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짚신을 삼고
멍석을 짜고
노끈을 꼬고
구럭을 얽고
과수나무를 심고
채소씨를 뿌렸다.
할 일 없으면
꼬았던 노끈 풀어서
다시 비볐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몇 날 안 가 또
딴 데로 떠나셔야 할 텐데
그런 일 해
뭘 하시렵니까?”
“안 될 말,
한울님께서 사람을 내신 건
농사지으라고 내신 건데
농사짓지 아니하고
생산하지 아니하면
양반보다 나을 게 없지 아니한가,
그리고 우리가
혹 이 멍석 쓰지 못하고
이 채소와 과일 먹지 못하고
딴 데로 가게 된다 할지라도,
이 다음날 누군가가 이곳에
와, 멍석을 쓰고
채소와 과일을 따먹게 될 게 아닌가?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한다면, 어디 가나 이 지상은
과일과 곡식,
꽃밭이 만발할 것이요
모든 농장은
모든 인류의 것,
모든 천지는 모든 백성의 것
될 게 아닌가.”
지난 갑오년을 맞을 때 우리를 설레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혁명의 상상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농장은/모든 인류의 것,/모든 천지는 모든 백성의 것”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 120년 전 외세와 그에 결탁한 어리석은 지배자들의 저항 앞에 결국 꺾일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함성이 갑오년에 다시 지펴지기를 우리 모두는 내심 바랐던 것이리라.
그 꿈은 갑오년이 가고, 을미년이 온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녹두꽃 자지러지게” 필 날은 그냥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른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비록 고달프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짚신을 삼고/멍석을 짜고/노끈을 꼬고/구럭을 얽고/과수나무를 심고/채소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일하고, 조직하는 수밖에 없다. 설령 그 과실을 내 손으로 거둘 수 없을지라도, 그것이 이 시대 우리의 소명임을 자각하고 묵묵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공익과 미래를 위해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양반보다 나을 게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