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사라진 글에 붙였던 '봄이오는소리'의 글입니다.

by 봄이오는소리 posted Mar 29, 2012 Likes 0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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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snj 님이 글을 올리시고 얼마 되지 않아 우연찮게 이 게시판에 들어왔다가 문제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의 글을 덧글로 올렸습니다. 아마도 글을 쓰신 분이 이 덧글을 읽고 삭제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의 글을 복사해두었습니다. 글을 올린 후 한 시간 정도 후에 게시판에 다시 들어오니 역시나 글이 삭제되어 초스피드로 써내려가 올려놨던 저의 덧글이 없어졌더군요. 원 글이 삭제되니 덧글인 저의 글은 자동 삭제되는 것이었지요.

 

아침에 보니 관련 글들이 없어졌는데, 김원일 님이 올리신 글을 보면서 저의 이 덧글은 원 글의 일부를 인용하기는 했으나 그냥 두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그리고 앞으로 있는 비슷한 류의 글들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라도 인식을 공유했으면 해서 올립니다.

 

나는 올라온 문제의 글이 어떤 사안을 대하는 우리 재림교회의 신앙 공동체, 그 이전에 인간으로서, 한 개개인들과 그 집합체로서의 우리 자신, 우리나라 역사의 축적된 문화유전자가 응축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대한민국 사람 그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여기까지 이 문제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시각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 민초스다라고 하는 게시판이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생겨났고,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모든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그 양면은 '서로 반대'가 아닌 '서로 맞닿아' 있다. 문제를 접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한 개인에게는 오랜 마음의 부담을 떨칠 수 있는, 박진하 님이 말씀한 그 어머니의 눈물과 그로 인한 죄스러움에서 벗어나 과거의 박진하와 화해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적어도 그 정도의 양식과 신앙적 수준은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가 글을 올리신 분과 박진하 님 모두가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게 어떤 이정표적인 사건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톨릭에서 20여 년 전에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보건데, 문제의 원인은 결국 '' 때문이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결국 ''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불편한 내면의 소리'100퍼센트 인정하지 않고 살아온 삶의 나날이었습니다. 내가 그런 나와 화해할 때,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리는 '진정한 자기'로 돌아갈 때 진정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있게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일본과 화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일을 하고 수 많은 소중한 가치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이승만, 박정희와도 화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 당사자들이, 그 주위 사람들이 그 '화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정리되고 화해해야할 일이 오늘도 진행형입니다. 내가 너무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일제[일본제국주의], 이승만, 박정희, 이명박의 문제는 지금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이 문제의 원인과 그 정신에 있어서 맞닿아 있습니다. 더 좋은 공동체로 가기 위해 적극적인, 보다 적극적인 인식의 변화와 실천이 요청됩니다. 그래서 고한실 박사의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 의식'을 작동해야하는 것입니다. 나는 고한실 박사에 대한 박진하 님의 의견에, 그와 같은 접근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와 생각이 다를지라도 이러한 '비판적 의식'을 발휘하여 이 게시판에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문제에 있어서는 '박진하 님'에게 우리가 많은 경우 잃어버려왔고, 잊고 사는 그 가치를 구현하는 입장에 기꺼이 서고자 선택을 합니다. 말이 좀 어려워졌습니다. 쉽게 말해서 모든 문제는 서로 연계되어 있고, 상식적인 인간, 합리적인 공동체가 되자는 것입니다. 바로 이 문단의 글은 쓰지 않으려고 하다가 썼다. 그만큼 글이 딱딱해졌습니다.

 

봄이 오고 있지 않습니까?

 

 

 

snj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니 박진하 님과 그분이 올리시는 글의 분위기 등을 통해 느껴졌던 것들에 대한 느낌이 다가옵니다. 저는 박진하 님의 이력에 대하여 거의 모릅니다. 그분이 올렸던 글과 그를 둘러싼 공방의 분위기로 파편적으로만 알 뿐입니다만, 님께서 올리신 짧은 글을 통해 얼개가 생겼습니다 

 

저는 글이 좀 더 길줄 알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몰입하여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저는 님께서 올리신 글이 비판적인 시각이라는 것을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동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에서 이 '허무감''아쉬움'이 교차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결국 박진하라는 인물에 대하여 그의 삶의 역사를 드러내어 그의 오늘을 나타낸 것인데, 글을 쓴다고 할 때 적어도 균형은 갖춰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님께서 올리신 박진하라는 인물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이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진실'은 아니라고 봅니다 

 

마지막 문장인 '그리고 그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니 이제 그만하라고. 글을 쓸수록 박진하 당신은 더욱 비참하고 불쌍해진다는 것을'. 물론 이 글을 읽고 박진하라는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으로 인해 님께서 쓰신 글의 가치는 '곤두박질'을 쳤다고 봅니다. 이 글은 한 개인이나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성찰이 아니라, '절망'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님의 글에도 '분노'가 있습니다. 결국 '박진하 당신은 글을 쓸수록 더욱 비참해지고 불쌍해질테니 글을 쓰지말고 가만있어라'. 이것은 '로산' 님이 말씀한대로 "우리는 이러지 말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괴물 박진하'라는 표현도 적절치 않습니다. 미움의 언어입니다. 그런 논리라면 님의 의식 속에 있는 '괴물 박진하'도 님이 만들어 온 것일 수 있습니다 

 

결국 고작 님께서 쓰신 글의 마지막 문장의 결론을 이야기하려고 박진하라는 분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하시러 이런 글을 올렸다는 것은 저와 같이 그분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분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박진하 개인과 그가 속한 공동체, 그의 영향력 속에 '희망의 언어'를 이어갈 삶들에게 있어서 의미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정의' 개념의 문제는 '사랑'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님처럼 접근한다면, 박진하 님도 할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만일 위의 내용이 사실일진데, 목회를 나가는 중차대한 문제에 있어서 신학과 교수님들이 상담을 통해서, 그와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도하고 설득하고, 가슴을 열어 그의 삶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까? 당시의 신학과 교수들의 학생들에 대한 지도에 대한 인식이나 능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니 여러 면으로 봐야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진정 글을 쓰는 목적이 '공동체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인가. '박진하 님을 살리기 위한 글'인가 말이지요. 글은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저도 내 안의 '분노 조절'이 잘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님의 '폭력에 가까운 글'에 박진하 님을 변호하는 입장에 서고 싶군요. 박진하 님은 이 글을 읽고 오히려 지난 삶을 돌아보겠지요. 님이 쓰신 글이 몇 %의 사실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며, '진실'에 가까울지는 모르나 예수께서 삶으로서 실천하신 '진실' 그 자체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진하라는 분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과 한계를 우리에게 드러낸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을 받아들일 수조차 없었던 숨막히는 교단 분위기. 그것이 존경하는 목사님이든, 사도 바울이든, 다양한 인간의 삶과 맥락을 하나로 몰아갔던, 그래서 이 민초스다 공간에서 봇물 터지듯 터져나오는 만시지탄의 다양한 의견들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에 눈을 돌려야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올리신 snj 님께서 혹 글을 지우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박진하 님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게시판을 찾는 '삶을 함께하는 여행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불쌍한 우리 재림교회 신자들의 각성과 성찰을 위해서라도 이 글을 그냥 두시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님께서 올린 글에 감사하고요, 또 제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또한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님의 글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글을 썼지만, 님의 충심과 님께서 바라시는 바에 대하여 저도 그 마음 깊이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글을 통해 그 이면에 그 어떤 것, 뭔가 놓치고 있는 본질을 보자는 것입니다. 이래야 우리 역사에서 보여준 '한국 재림교회가 보여준 삶의 공동체로서의 그 무엇'과 함께 우리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에서 느껴지는 '괴물 한국 재림교회'의 모습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괴물 한국 재림교회'라는 말에 네티즌들께서 좀 불편해하실 것 같다. 내가 이 말을 쓰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 전부를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만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공동체임을 보여주지 못해왔던, 못하고 있는, 기별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백성으로서 '최소한', '아주 최소한'의 상식적이고도 합리적 선택을 못해온 것에 대한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세상을 소망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말씀이다. '

 

 

괴물 한국 재림교회'라는 '불편한 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 속에 있는 괴물'에 가끔 불편해 하는 민초스다를 사랑하는 어느 네티즌이. 봄이 오는 어느 멋진 날에!

 

 

ps: 저는 고한실 박사의 지난 이력에 대한 그분의 자세나 작금의 현상황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입장의 사람입니다. 필리페 님의 활동에 적극 지지하고요. 연합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보다 적극적인 자세와 문제해결을 위한 인식의 전환이 요청됩니다.^^ 혹 이런 저의 글이 좋은게 좋다고 그냥 넘어가자는 식의 사고를 지지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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