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없다

by 지경야인 posted Apr 01, 2012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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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마을에 썼던글인데 여러분은 어떠신지

샘이 깊은물님이
십일조 이야기 쓰시고 댓글들이 달려서
황당한 마음에 글을씁니다
성경을 올바로 읽읍시다
정직해 집시다.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꾸었다고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면서
없어진 십일조가 성경에서 나왔다고 말하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위 성경 절을 근거로 제시하는데 한심하고 억지고 기가 막힌 이야깁니다
솔직히 가톨릭에서 자기들이 안식일을 변경했다고 말하듯이
안식일교회 조직을 위한 방편으로 교회가 다른 교회들의 방법을 차용했다고 말하심이 가장 알맞은 이야깁니다

십일조
한심한 이야깁니다.
성경을 도대체 어떻게 읽으셨길레 ...........
십일조가 언제 교회에 들어왔는지 역사를 연구하시길 바랍니다.
신약에는 위에 인용한 십일조는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였습니다.
십일조가 계속이어 졌다면
신약성도들이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바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한 사고가 되고
제사는 계속 이어져야 되는 것이고
레위인이 계속 십일조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긴데

행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신약의 헌금 개념은 고아와 과부를 그 곤란한중에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유무상통의 정신으로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3000명이나 침례를 받은 것이죠.
일곱 집사를 뽑은 것도 골고루 그 혜택을 나누는 일을 맡겨 불편부당함이 없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를 위한 연보를 거둔 기록이 전무합니다.
대신에 어려운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거둔 것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고전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고후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도들을 돕고 유무상통의 정신이 점점 사라지고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교권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헌금이 가난한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교권을 행사하는 자에게 돌아가고
다시 지방영주들이 세금으로 향락을 추구하는데 모자라는 금액을 착취수단으로 교회에 십일조를 거둘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그 십일조를 교회와 영주가 나누는 일들이 생기면서 교회에 십일조가 슬그머니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성경으로 십일조를 설명하면 안 됩니다
이건 교회 전통이다
십일조를 교회 목회자를 위한 급료를 위해 만든 것이다 해야 올바릅니다.
신약 성경은 연보의 목적이 가난한자를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음이 확실합니다.
사도들이 십일조로 생활한 흔적이 없습니다.
몇 백 년이 흐른 이후에 아둔한 백성을 착취 할 수단으로 들어온 방법일 뿐입니다
이건 성경을 근거로 하면 안 됩니다.
인정합시다.
교회권위로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하였다고 명백히 인정한 카톨릭 처럼
교회권위로 십일조를 제도화 시켜 이를 안식일교회의 헌금 명목을 삼았다고요
성경에 없는 헌금종류 많잖아요.
그 수많은 헌금종류도 어떠하면 더 많은 헌금을 내게 하여 그것으로 각종 사업에 도움이 되게 할 것인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고 거부하지 않잖아요.
성경으로 억지로 풀어먹으면 성경모독입니다
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우기면 짐승의 표라고 몰아 부치잖아요.
현시대의 십일조는 성경적이 아닙니다.
교회행정 편의상 5일조로 헌금을 거두었으면 다른 여러 종류를 거둘 필요 없을 터인데
더 많이 거두어서 풍성하니 넉넉하니 쓸 수 있었을 터인데
정말 아쉽게 되었습니다.



 

 

지경야인 [2012.04.02 00:14:21]

과연 십일조가 처음 등장한 배경을 보겠습니다.
애급의 장자들은 모두 죽습니다
하지만 문설주와 문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칠한 이스라엘백성의 장자는 죽지않습니다
여기서 어린양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죽어야 할 이스라엘백성의 장자들 대신에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돌아가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들은 하나님께 바친바 되어야 하였습니다
장자는 실질적으로 가정에서 대표자입니다

가장 귀한 것이란 뜻이죠
하지만 그러면 곤란한일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되어 대표로 레위인을 택하여 그일을 대신합니다

십일조는 가족의 장자를 대신하는 가장 귀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그저 십분의 일이아니라 장자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이 모두가 땅의 대표이시며 땅의 십일조이신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면 모든 것이 드려지는 법이다. 우리 예수님은 세상의 십일조로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 온 세상이 거룩해졌고(고후5:14-21)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려졌기에
그분 안에서 우리 또한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의인들이요, 제사장들이 된 것이다.

“우리가 죄들로 인하여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 또 함께 일으켜 세우시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 안에 함께 앉히셨으니...”(엡2:5-6)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는 우주 만물 중에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너무 거룩하셔서 달도,
별도, 깨끗하지 못하며(욥25:5-6) 아담 이후 타락한 세상 역시 더러워졌고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롬1:18-25, 8:18-2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시킨 어떤 피조물도 거룩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십일조는 땅의 십분의 일 대표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시는 교훈인 것이다.
골고다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승천하신 날 세상 우주의 십일조로 즉 거룩의 대표로 하늘에 올라가셨고
하나님께서는 받으신 것이다. 결론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십일조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그분 안에서 더러운 죄인들이 거룩해져서
함께 하늘에 들려간 것이다.(행10장 참조)


그러므로 십일조 규례는 율법 하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고 그 안에 ‘복음’이 들어 있는 것이지 결코 ‘물질’을 염두에 두신 규례는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라.
우리는 복음이 율법을 이긴 것을 안다. 십일조 아니라 십의 이십조를 드리는 것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부부간의 지갑은 계산이 필요 없는 것처럼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 사이에 십분의 일이니
칠분의 일이니 계산이 필요하겠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이시며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고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계산하지 말고 우리의 전 생애를 드리자.
그것이 마음, 정성, 뜻,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멘

“이는 너희는 값으로 사신 바 된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문전인 [2012.04.02 05:45:34]

예수님은 장자만을 위해 돌아 가셨다고 전제하시고 이 글을 쓰시면 자의적 이십니다. 보편적 복음은 만인을 위해 돌아 가신 것으로 하셔야 신약적 입니다. 그러나 결론 부분에 십분/일 칠분/ 일 보다 우리 전부를 드리자에는 공감합니다

샘이깊은물 [2012.04.02 06:44:01]

신약의 십일조에 관한 권면이 많이 나오지 않아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가 시행하는 십일조 제도는
예언의신에 수 많은 글들 속에 안식일과 십일조는
현대의 선악과라는 말씀을 견지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보는 성경과 예언의신이 평신도들이
보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우리가 아는 그것이 목사님들이
아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신약의 십일조에 관한 권면을 더들을 수는 없으리라
판단 됩니다.

이미 정착되어 있고 또 다른 방향으로 개혁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사료되어 궁금한 것을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판단 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청지기직분은 십일조 뿐 아니라
우리가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주인의 뜻을 따라
관리하는 청지기 (종) 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이 다시오셔서 회계 하실때 어떤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씀하실 것이고,
어떤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으로 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지경야인 [2012.04.02 07:33:26]

참 순진하신 샘이 깊은 물님
예언의 신에 써있어서 라고요
그 예언의 신 팔아서 그 저작권료 누가 받는 줄 아세요.
기독교가 박해 시대를 거쳐 황제에 의해 공인되기 전인 4세기 초가 될 때까지도 십일조가 헌금의 일종으로 바쳐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교부 에피파니우스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십일조라는 것은 할례보다도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교세가 확장되고 교권력이 강화되면서 십일조 복원이 시도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암브로스를 비롯한 많은 교부들이 십일조를 거두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동방 교회들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였고,
서방 교회 내에서도 반발이 심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밀고 당기다가 결국 한참 후대인A.D 585년에 가서야 마콘(Macon) 교부 회의에서 십일조가 채택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십일조는 점차로 강제성을 지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른 교부 회의들도 십일조들을 속속 채택하였고,
결국은 A.D 800년 경 샤를레망(Charlemagne) 대제 때 비로소 십일조가 정식 법령으로 공포되었습니다.
그런데 13세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십일조의 대상이 구약의 가르침 그대로 주로 '토지 소산물'이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십일조를 보관하는 '십일조 창고'를 따로 만들어 둘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13세기에 이를 즈음, 십일조의 대상이 '토지 소산'에서 '모든 소득'에까지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바리새인과 랍비들의 십일조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1,000년 이상 지난 후에 다시 부활시켜 적용한 셈이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언제나 교세가 커지고 교권과 이권이 거대해질 때 십일조가 머리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즉 십일조가 하나의 엄청난 기득권이나 치부의 수단으로 자리 잡는 곳에서는,
반드시 종교 지도자들이 십일조를 교묘하게 가로채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라기 시대,
신구약 중간 시대,
중세 시대,
그리고 오늘날에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십일조로 판단하시나요
맡겨진 영혼을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입니까
신약의 성도들은 재산의 전부를 가져왔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산의많은 부분을 가져오고도 벌을 받아 죽습니다.
천주교회는 자신들의 잘못된점을 인정하고 십일조가 없습니다
개신교회도 안식일교회등 몇몇교회외에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회들은 십일조를 받아 치부하는데 쓰는 앞장서는 날입니다
한국의 안식일교인들은 이런 이웃 개신교인들의 모습에서 공통적으로 십일조를 거두니 아무런 저항감이나 인식의 변화없이 십일조를 드립니다
안식일 교회 참 난감합니다
예언의 신 팔아서 그자손들이 아직도 저작권료로 치부하는데
한심합니다
남의글 도적질했는데 그게 예언의신 최고 잘된글이라고 정로의 계단이라면 환호합니다
지금 같으면 저작권 법정 분쟁 일어 날 일인데 버젓이
예언의신 환상에서 그만 벗어나야하는데
일요일 휴업령에서 그만 벗어나야하는데
야곱의 환난 벗어나야 하는데
종말론 이제 그만 좀 우려 먹어야하는데
남은 무리라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진정으로 안식일에서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참뜻을 아셔야하는데
안식이 없는 날짜나 지키는 예관습에 푹 파 뭍힌 지독히도 율법주의적이 모습이 내맘에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안식일 때문에 예수를 죽인 유대 지도자들 처럼
안식의 정신은 버린체 껍데기만 가지고 히히낙락하는 모습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어휴 예언의 신이라
지금의 예언의 신은 내글이 예언의 신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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