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고개를 넘어가면서

by 로산 posted Apr 18, 2012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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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고개를 넘어가면서


어쩌다보니
미아리고개를 자주 넘어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미아리고개는 유행가 덕분에 더 유명해 졌고
그리고 그 고개 아래 만들어진 집창촌 때문에 더 유명한 곳이 되었다
미아리 사는 분들 그 이름 때문에 매우 기분 상했을 것이다

카스다가 실명제를 고집하자 그게 싫은 분들이 나와서 만든 게
민초스다(www.minchosda.com)이다
그것 만든 분들은 원래 카스다에서부터 실명을 사용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비실명으로 글을 쓰는 교인들을 보호한답시고 만든 것이
바로 민초스다이다

그곳에는 대학교수 장로 목사 집사 교인 그리고 잃은 양들이 짬뽕으로 기거한다
그래서 그 짬뽕들이 올리는 글이 어떤 때는 내 기분을 상하기도 했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나도 그 비실명의 글로 인해서 스트레스 받았다
교리와 관련 없이 인신공격을 해대는 비실명을 보면서
예비군복 입혀 놓은 제대군인들 보는 기분 들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서로들 친하게 된 사이가 아니면
묻지도 않는다
비실명으로 글을 쓰는 분이 무엇을 묻기 위해서 내게 이메일도 보낸다
물론 본인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사실로 말하자면 나도 실명주의자이다. 비실명이 싫다
여기 재림마을도 실명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비실명으로 글을 쓰면 비교적 자유로운가 보다
얼굴 붉혀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글 쓰다가 며칠 안 보이면 그만인 곳이다
상대방 기분 나쁘게 해 놓고 떠나면 아무도 모르는 곳이다
서로의 언사가 높아지면 당신 누구요 하고 묻는다
당신 어디 사는 사람이지요? 하고 헛다리도 짚는다
그러면 아니요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래요? 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곳을 미아리 집창촌이라 부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전에 거래하던 회사가 용산 집창촌 바로 옆에 있었다
그 회사가 한국의 유명한 그룹인데 본사 빌딩이 비좁아서 얻어 나온 곳이
용산 집창촌 바로 옆 건물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그곳을 지나면서 구경 좀 했다
그런데 팸프 녀석이 날 보고는 들어와 쉬다가 가라고는 잘 안한다
내 얼굴에 뭐라고 쓰여져 있나보다
나와 같이 가는 그 회사 직원들에게는 종종 쉬어가라고 하는데 말이다

성경은 집창촌 이야기도 멋있게 해 놓은 책이다
창 38:21  
“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가로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족보에 나오는 유다, 다말, 베레스에 관한 것이다
유다가 창녀를 찾아서 에나임을 갔는데
사실 에나임이라는 촌락에는 창녀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변장한 며느리 다말을 건드리고 베레스를 낳은 이야기이다
다른 촌락들에는 있던 창녀촌이 에나임에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요즘은 어떤가?
미아동이 길음동에 편입되었고 미아리 집창촌도 없어졌다
그런데 같은 재림 교인들이 같은 종류의 사랑앵무 새소리 내지 않는다고 저들에게
미아리 집창촌이란 말로 바벨론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성경에는 또 다른 집창촌 이야기가 있다
수 2: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두 사람의 스파이가 숨어 들어간 곳이 비로 여리고 집창촌이었다
거기서 저들은 창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고 여리고를 탈환했다
그 이후 그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어지는 살몬은
자기를 살려준 기생 즉 창기 라합을 사랑하게 되었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기생이라고 번역해 놓은 글이 한국기생이라 해석하고 있는지
그 한국기생도 황진이 같은 기생이었는지
그 시대에 그런 제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멸망으로 가는 여리고가
그런 고상한 기생 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기생집은 일반 여염집과는 다르다

혹시 아는가
여러분들 중의 일부가 미아리 집창촌이라 부르는 곳을 들락거린 대가로
새로운 메시아가 탄생할런지...
그 집창촌에서 새로운 선지자가 나올런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요상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인생사 하나님의 손에 있어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우리가 만든 예언 도표대로 움직여 주면 좋은데
세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
주께서 그 백성들을 위해서 재림의 시기까지 조절해 주신다고 믿는 재림교인들은
새로운 예언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도 말할 자격은 없다
왜냐하면 이 지구는 우리 손에서 마쳐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로 마쳐진다고 입이 닳도록 떠들던 우리들 아닌가?
그렇다면 이 지구의 운명은 우리 손에 있지 않고 크신 하나님의 손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집창촌에는 누가 들락거리는가?
물론 집창촌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은 일부러 길이 멀어도 돌아간다
예전에 사마리아를 돌아가던 유대인들처럼 말이다
혹시 아는 사람을 근처에서 만나면 변명하는 것도 여간 성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박 장로를 집창촌 부근에서 만났어” 하는 말이 변해서
“박 장로가 집창촌에서 나오는 것을 봤어” 하는 말로 변할 수 있는 게
인간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본 사람 없다고 생각하고 동산으로 들어갔는데
선지자 이사야는 거룩한 자들이 그곳을 들락거렸다고 성경에 기록했다
그러니 집창촌 부근에는 얼씬 거리지 않는 것이 좋다
민초스다를 집창촌이라 부르더니 그렇게 부른 사람들이 한동안 저희 집 안방처럼 왔다 갔다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모른다
저들 얼마나 거룩한지 알리려 왔는지는 몰라도 온갖 보통명사 다 쏟아 내고서
승자의 노래 부르며 갔다. 패배의 쓰라림을 숨기고 이름 없는 용사되어 갔다
만약 그곳이 카스다나 재림마을처럼 이름 석 자 적거나
두 달 간 닉네임 못 바꾸는 곳이었다면
아마 그렇게 거룩하지 못한 언사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집창촌에서 거룩하지 못한 언어 마음껏 쏟아 내고서
집창촌이 내 건 비실명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떠났다

인간은 그렇게 간사하다
너희들 동네는 비실명이라도 된다면서? 하면서 정정당당하게 대했다
우리 언어 그리고 글자 한 조각 모두 하늘 기록책에 기록되고
조사심판 받는다고 아우성치는 무리들이 말이다
비실명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새로운 선지자의 발현이나 새로운 메시아의 탄생을 준비하듯이
정장 입고 넥타이 메고서 광이 나는 구두 신고서 휘젓고 다녔다

하늘은 다 알고 있다고 방방뛰었다
집창촌을 휘어잡고 다니면서 주인장 노릇했다
그곳이 저들이 말하는 집창촌이란 것을 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믿음 있고 없고의 차이는 종이 한 장도 안 된다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경은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 마음이라 한 뜻을 이해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시146:3)라는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자를 욕하는 사람을 믿지 않기로 했다
사랑, 이건 이 지상에 내리신 하늘의 축복이다
사랑을 사랑 타령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자를 믿지 않기로 했다
내 비록 집창촌에 거한다 해도 살몬처럼 그곳의 여인네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래서 예수의 족보에 이름 올리기를 세상의 낙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비록 창기를 아내로 맞이한다 해도 호세아처럼 그분 뜻을 따르기로 했다

우리 중 거룩한 자가 있는가?
그 거룩한 자가 안수기도해서 병을 고치는 것이라도 본 적 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그런 간단한 것도 못 한 자들은 거룩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보통 사람들을 좋아한다
특별나게 떠드는 신앙 가진 자를 경멸한다

전에 우리 교단에서 기라성처럼 전도회 강사노릇 하시던 목사님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인도하던 목사님이 “우리의 유명하신 목사님이...”라고 설교하자
그 밑에 앉아 있던 그 집 며느리가 하는 말 “유명하기는 개뿔..”하더란다
그 목사님이 정작 자신의 며느리에게는 인기 없었나 보다
숨겨온 버릇들이 며느리에게는 들켰나 보다

나는 이 세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라고 외치면
세리와 함께 먹고 마시는 주님을 반길 수 없다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 적에 나는 인정을 받는다
그게 성경적이다
상대를 미아리 집창촌에 거하는 펨프 정도로 나락 시킨다고 해결되는 것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이름으로 불려 질 때 거룩해 진다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미아리 고개를 넘어 갈 때 마다
나는 나를 돌아본다


(재림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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