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y당하다가 자살하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가슴이 아프다.
왜 연필로 쿡쿡 찌르고
툭툭 치는데
당하고만 있었을까?
동급생들간의 가해자-피해자의 관계는
어떻게 해서 생기고 확립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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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도 bully를 당한 적이 있다.
속상하기 말이 아니다.
여기서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가르친다.
누가 너에게 손을 대거나
네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만지거든
Stop It!
I don't like it!
이라고 말을 해라
똑바로 서서
눈을 부릅뜨고
양 손바닥을 내밀고 (차 멈춤 신호를 보내듯)
단호하게 얘기해라
그래도 안들으면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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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예사롭게 넘기지 않는 사회에서
그런 식으로 훈련 받은 아이들은
시달림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자라난 사회는 달랐다.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은 매일 있었다.
선생이 학생의 귀싸대기를 갈기는 것은 예사였고
선배는 후배를 불러서 팼고
부모도 물론 자식을 때렸고
군대에서의 폭력이야 필수였고 무용담처럼 회자되었다.
심지어
별을 단 장성들도
술자리에서 서로 쪼인트를 까더라고 했다.
레지던트는 인턴을 때렸다.
우리반에서 가장 착한 아이도
"조선 사람은 그저 줘 패야 말을 들어"
그랬다.
이웃집에서 남편이 아내를 잡는 소리가 나도
남의 가정사라면서 간섭 안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런 빌어먹을 폭력의 문화에서
'Stop it! I don't like it!!
내 몸에 손대지 마. 싫단 말이야.
안그러면 선생님한테 이른다'
웃기는 얘기다.
bully 들의 폭력을 얘기하기 전에
'정상인' 들의 폭력을 얘기해야 한다.
아버지도 때리고 선생님도 때리고 상급생도 때리고
심지어 전문인들 사회에서도 상사가 부하를 구타하는 사회에서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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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y하는 가해자 아이들은
그 자신들이 대개 폭력의 희생자들인 경우가 많다.
대개 아비로부터 맞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취약한지 안다.
누가 맞고도 입 뻥긋 못할지를 안다.
누구는 때려도 어떤 어른이 와서 혼내지 않을지 안다.
떼에서 가장 약한 짐승을 찾아 잡는 사자처럼
폭력은 그렇게 비겁한 것이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
종례시간마다 매타작을 벌이던 M 선생은
군대에서 상급자에게 엉덩이가 물러 터지도록 맞던 얘기를 해 가면서
몽둥이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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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산에서
자신을 죽이겠다고 묶는 아버지에게
이삭은
Stop it!
I don't like it!!
이라고 했어야 했다.
우리는
'얘들아 언젠가 혹시 내가
하나님이 나더러 너를 제물로 바쳐 죽이라고 하셨다고 칼을 들걸랑
너는 바보같이 네 그러세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할께요
이러지 말고
아버지 미쳤어? 정신차려!!
그러고
내 사타구니를 냅다 걷어 차고 도망가라
그러고 경찰을 불러라
알았지?'
라고 가르쳐야 한다.
어려서 유년반에서는 그렇게 안배웠다.
'이삭은 아버지에게 언제나 순종하는 아이였어요.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다니까
네 그러세요 아버지
저를 묶는데 힘드시죠?
제가 도와 드릴께요
그러고 스스로 묶였답니다.
참으로 착한 아이죠?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겠어요'
이런 우라질!!!
우리는 폭력 문화 속에 푹 빠져서 살았습니다. 삼육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따귀로, 발로, 손바닥으로 뺨을 맞기도 하고, 선생님이 사람 되라고 배우는 과목의 중요한 내용을 쓰시던 그 하얀 분필로 마치 프로야구 선수인 오승환의 '돌직구' 만큼 빠른 속도의 분필을 날려 정콩으로 이마를 맞추던 것도 보았고, 갑자기 와서 흰 분필로 머리를 찍어 내리던 분들도 있었다. 선배의 후배에 대한 폭력이 많다보니 그 선배 중에서 후배를 자주 때리는 선배들을 옥상으로 데려다가 그야말로 그들이 후배들에게 하던 방식대로 갚아주면서 사람 되라고 총대를 매셨던 선생님들도 계셨다. 주먹으로, 마포자루로, 그 마포자루(교실 바닥 닦는 청소걸개의 나무로 된 긴 손잡이)는 부러져 표창이 되어 날아갔다. 그 옆에 누가 맞았으면 대형 사고감이다. 출석부로 머리를 때리기도 다반사. 성적이 떨어지면 떨어진 평균 점수만큼, 학급 평균보다 낮은 점수만큼, 어떤 땐 지난 번 평균보다 떨어진만큼, 수업 시간에 문제 못풀었다고 맞기도 했고, 선생님이 화가 나셔서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가 집단 벌을 받기도 했다.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라고 해서 무릎 꿇고 손들고 벌을 서기도 했고, 교무실 옆 벌받는 방에 가서 선생님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남녀 불문하고 엎드려 뻗쳐 자세로 엉덩이를 맞기도 했고, 교무실 선생님 자리 옆에서 손들고 무릎 꿇고 벌을 서기도 했다. 위의 벌을 내가 다 경험했는지를 궁금하실 것 같다. 몇 가지는 경험해봤다.^^
이게 다 삼육학교에서 있었던 story이다. 당시에도 스승의 날이 있었고, 매주 채플이 있었으며, 안식일마다 아름다운 찬미 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아침에 수업 시작 전에, 종례 하기 전에 예배를 드렸으며, 거기다가 성경 시간에는 감동적인 말씀들이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러면서도 폭력은 계속되었다.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으며, 학생들은 "여자와 대구는 사흘에 한 번씩은 늘씬 패주어야 맛있다"는 말을 스스럼 없이 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면서도 말이다.
우리는 삼육학교의 선생님들이 그런 사회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잘 안다. 김주영 님 말씀처럼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여차하면 주먹'을 배웠다. 그것이 우리가 보고 배운 것이다.
우리는 'God is so good'이란 노래를 성경시간에, 틈만 나면 자주 불렀다. '눈을 예수께 돌려 그 얼굴을 주목하라. 그의 영광스러운 광채에 세상 영화는 사라지네'라는 찬미를 자주 불렀다. 왜? 아주 짧으니까. 젊은 꼬마들이 '세상 영화는 사라지네'를 부르면서 이 세상의 영화는 덧없으니 '차카게 살라'는 메시지를 우리 마음 속에 되뇌이고 되뇌였다.
지난 시절을 어떻게 정리해야할까? 삼육학교가 이 정도인데, 다른 학교들은 또 어땠을까?
이것은 좀 부정적인 시각에서 본 것이다. 순전히 체벌이란 측면을 중심으로. 삼육학교에서의 좋은 추억도 많다.
삼육학교는 우리들에게 무엇이었을까?
김주영 님은 성적으로나 당시 학교의 기준으로나 최고의 학생이었던 것으로 안다. 아주 탁월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고도.
김주영 님의 중고등학교 시절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