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좋아하지 마

by 로산 posted Apr 20, 2012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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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성 표절보다 심각한 문제는…
[메아리/4월 21일] 문대성은 그렇다 치고-


  •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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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려고 지난 18일 국회를 찾은 새누리당 문대성 당선자(부산 사하갑)가 이를 돌연 취소한 뒤 돌아가려다 보도진에 막히자 얼굴을 찡그 리며 자신의 승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엊그제 동네에 4·11 총선 낙선사례가 하나 붙었다. 플래카드에 '성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큰 글씨로 적혀 있고 낙선자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 밑에 적힌 글을 보고 쓴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행정학박사 XXX'. 단지 그것뿐이다. 어느 선거구에, 어느 정당 소속 혹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였는지 하는 정보는 전혀 없다. 그저 자신의 얼굴과 이름 앞에 행정학박사라는 타이틀만 명시했다. 박사라는 것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는 모양이구나, 행정학박사와 낙선사례가 무슨 상관이 있나 하는 잡념이 출근길 머릿속 한켠을 차지했다.

다른 이야기는 연전에 어느 교수 한 분에게 들었던 것이다. 교수사회에 우스개가 하나 있다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교수와 거지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알 리가 없다. 그 교수가 들려준 답은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든데, 일단 되고 나면 세상에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직업"이라는 것이었다. 박장대소했다. 10년, 20년씩 온갖 노력과 수단을 다해도 교수 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일단 교수 자리 잡기만 하면 논문 쓰기를 비롯한 자질구레한 힘든 일들은 '하늘의 별도 따 오는' 조교나 줄을 서 있는 교수 지망생들에게 맡기고 거지처럼 하는 일 없이도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다, 그런 요지였다. 교수사회의 자조를 담은 우스개이기도 했다.


박사, 교수는 어쨌든 그렇게 우리사회에서 막강한 타이틀이다. 문대성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20일 결국 탈당했다. 총선 보름 전인 지난달 말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지만 지역구에서 당선된 그는, 당선 후 계속된 논란과 탈당 요구에도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버텨 왔다. 하지만 이날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았던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가 논문이 표절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곧바로 탈탕해 버렸다.

문 당선자는 지난 18일 탈당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왜 나한테만 표절 의혹을 제기하느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운동과 연구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심함이 부족했지만 표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전 세계 100여명 남짓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라는 지위에 올랐고 박사학위, 대학교수에다 국회의원에까지 당선된 이의 말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졸함이 드러난다. 얼떨결에 너무 많은 것을 품에 안아버린 30대 중반 나이의 젊은이가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는 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투정인지, 표절이 자신뿐 아니라 주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말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연구 교수 사회봉사라는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대학교수로 특채되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 표절이 얼마나 엄중한 문제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한 말투다. 운동과 연구를 병행해야 하는 처지라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는 그의 말에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우스개 하나 더 소개하자면 기자 사회에는 이런 말이 있다. 수십년 기자생활을 한 어느 선배가 했다는 말로 전해진다. "기자가 기사만 안 쓰면 참 좋은 직업인데 말이야." 힘들다고 운동선수가 운동 안 하고 대학교수가 연구 안 하고 기자가 기사 안 쓰고, 본업 제대로 안 하고 직업윤리 안 지키면서도 폼만 잡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문대성 표절 논란은 경과를 돌이켜보면 그 한 사람의 문제에서 나아가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막말 파문을 일으킨 '나는 꼼수다' 진행자 김용민(그도 어느 대학 '겸임교수'다) 공천으로 선거 자체를 망쳤다는 비난을 받은 민주통합당뿐 아니라, 이미 4년 전에 표절 의혹이 제기된 문대성을 걸러내지 못하고 뒤늦게 말썽을 자초한 새누리당 역시 스타 마케팅으로 표만 얻으려 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이해타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대성 표절 논란으로 그 주변의 체육계는 물론, 학계와 대학사회의 논문 대필ㆍ표절과 교수 임용시 뒷거래, 그 실상에 대한 묵살 내지 은폐 의혹 등 치부가 다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교수와 거지' 우화는 언제 사라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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