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기림비’ 세운 美 팰파크市 로툰도 시장
“2년간 사실 관계 확인한 뒤 추모비 건립… 日 아무리 찾아와도 철거하는 일 없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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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2만 명의 미국 뉴저지 주 북부 소도시 팰리세이즈파크(팰파크) 시가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진실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외교
격전지로 떠올랐다. 일본 뉴욕총영사와 자민당 의원 4명은 일주일 새 두 번이나 시를 방문해 시립도서관 입구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기림비’의 철거를 요청했다. 제임스 로툰도 팰파크 시장(사진)은 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은 잘못된 과거라면
이를 드러내고 기념비를 세워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중시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일본은 과거를 그냥 묻어두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 정치인과 외교관들의 방문은 예고됐던 것인가.
“갑작스러워 당황했다. 그들은 우리 시에 무제한 투자를 해 줄 수 있다고 얘기하면서 그 대신 기림비를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의 투자 제안이 시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투자는 물론 미디어 매체까지 세워주겠다고 했다. 비록 한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긴 하지만 시가 기림비를 세운 목적은 미국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다른 나라의 처절했던 과거 역사의 아픔을 알려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명분과 실리 앞에서 명분이 더 중요했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앞으로도 계속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2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각종 자료는 물론이고, 일본 군인과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그런데 일본 의원들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위안부 광고 3장을 달랑 들고 와서는 ‘일본 정부가 개입한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정부가 한 일이 아니라는 증거자료를 갖고 오라고 했다.”
―3시간 동안이나 일본 의원들과 면담했다.
“그 들은 일본의 교과서에 담겼다며 같은 주장을 계속 되풀이했다. 그래서 우리는 교과서에 실렸다 하더라도 우리가 확신하는 진실과는 매우 다르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 사견인지를 물었다. 처음에는 공식 입장이라고 얘기하다 우리가 현장에서 일본 외무성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보여주며 반박하자 사견이라고 말을 바꿨다.”
―일본 정치인들은 기림비가 미일 관계에까지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는 수많은 기념비가 있다. 유대인 학살과 흑인 탄압 등을 다룬 기념비가 많다. 그렇지만 한 번도 해당 국가와 외교적인 관계가 틀어진 적은 없다. 그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로 툰도 시장은 “일본 의원들이 계속 찾아온다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조사 검토해 기림비를 세웠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의 강연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 중인 정의화 국회의장직무대행 등 국회의원 4명은 9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기림비를 참배하고 로툰도 시장도 만난다.
“2년간 사실 관계 확인한 뒤 추모비 건립… 日 아무리 찾아와도 철거하는 일 없을것”

―일본 정치인과 외교관들의 방문은 예고됐던 것인가.
“갑작스러워 당황했다. 그들은 우리 시에 무제한 투자를 해 줄 수 있다고 얘기하면서 그 대신 기림비를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의 투자 제안이 시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투자는 물론 미디어 매체까지 세워주겠다고 했다. 비록 한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긴 하지만 시가 기림비를 세운 목적은 미국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다른 나라의 처절했던 과거 역사의 아픔을 알려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명분과 실리 앞에서 명분이 더 중요했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앞으로도 계속 이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2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각종 자료는 물론이고, 일본 군인과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그런데 일본 의원들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위안부 광고 3장을 달랑 들고 와서는 ‘일본 정부가 개입한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정부가 한 일이 아니라는 증거자료를 갖고 오라고 했다.”
―3시간 동안이나 일본 의원들과 면담했다.
“그 들은 일본의 교과서에 담겼다며 같은 주장을 계속 되풀이했다. 그래서 우리는 교과서에 실렸다 하더라도 우리가 확신하는 진실과는 매우 다르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 사견인지를 물었다. 처음에는 공식 입장이라고 얘기하다 우리가 현장에서 일본 외무성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유감을 표명하는 성명을 보여주며 반박하자 사견이라고 말을 바꿨다.”
―일본 정치인들은 기림비가 미일 관계에까지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는 수많은 기념비가 있다. 유대인 학살과 흑인 탄압 등을 다룬 기념비가 많다. 그렇지만 한 번도 해당 국가와 외교적인 관계가 틀어진 적은 없다. 그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로 툰도 시장은 “일본 의원들이 계속 찾아온다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이미 충분히 조사 검토해 기림비를 세웠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의 강연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 중인 정의화 국회의장직무대행 등 국회의원 4명은 9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기림비를 참배하고 로툰도 시장도 만난다.
(뉴욕=연합뉴스) 주종국 특파원 =
6일(현지시간) 한인유권자센터(KAVC)와 팰리세이즈파크시 등에 따르면 일본 자민당 소속 중의원 4명은 이날 기림비가 설치된 한인 밀집지역 팰리세이즈파크를 방문, 시 관계자들에게 기림비에 대해 항의했다.
일본 의원은 케이지 푸루야, 이치로 츠카타, 에리코 야마타니, 나오카즈 다케모토 등으로, 모두 자민당 내 북한의 일본인납치문제위원회 소속이다.
이들은 제임스 로툰도 팰리세이즈파크 시장 등에게 기림비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며 한국에서 이 이슈를 다루는 비정부기구(NGO)가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또 위안부는 일본 정부나 군대가 아니라 민간인 업자가 운영했고,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억지를 썼다.
이들은 이어 미국 내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미국과 일본 관계에 방해가 된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기림비에 새겨진 당시 위안부의 숫자가 20만명이라고 돼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로툰도 시장은 기림비는 한국인들이 세운 것이 아니라 미국 시민의 세금으로 세워졌으며 시 의회에서는 충분한 자료와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입증한 후에 건립했다고 반박했다.
로툰도 시장은 이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려면 근거 있는 자료나 데이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자리에 참석한 팰리세이즈파큭시의 행정관은 대화 도중 그 자리에서 태블릿PC로 일본 외무성의 홈페이지에 접속,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인정하고 사과했던 내용을 보여주면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자민당 내 북한일본인납치특별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푸루야 위원장은 "이는 과거의 입장이며,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성의원 야마타니는 당시 군대 위안부의 대다수는 일본여성이었으며 다른 나라 여성은 아주 소수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림비를 제작한 화가 스티브 까발로 씨는 "십수년동안 위안부 문제를 연구했고 모든 것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피해자 할머니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대화하면서 모든 것이 진실임을 확신했다"고 반박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유권자센타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일본 정부에 이어 자민당 내 거물급 정치인들까지 직접 나서는 것을 보면 기림비를 철거하겠다기보다는 미국 내에서 한국과 일본 간의 분쟁을 만들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히로키 시게유키 주미 뉴욕총영사와 나가세 켄수케 정무담당 부총영사는 지난 1일 팰리세이즈파크 시청을 방문, 도서관 앞에 건립된 기림비가 양국 관계증진 프로그램에 중대한 걸림돌이 된다며 `철거'(remove)를 요구한 바 있다.
일본 측은 기림비를 없애는 대가로 벚꽃길 조성을 위한 벚나무 지원과 도서관 장서 기증, 미일 청소년 교환 프로그램 신설, 시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거액의 투자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팰리세이즈파크의 기림비는 미 연방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한 지 3년여 만인 지난 2010년 10월23일 한인유권자센터를 주축으로 진행된 미국 동포들의 풀뿌리 시민운동 결과로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