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나한테는 슬픈 글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글일 수 있음)

by 최종오 posted May 13, 2012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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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숙제만 하고 있다.

숙제를 안 하고 있으면 숙제를 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눌러 죽이려고 한다.

책을 읽기만 하라고 하면 하루에 1,000,000 페이지도 읽을 수 있는데 그 독후감이 문제다.

책을 읽고, 요약하고, 평가하고, 그리고 그 책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쓰라는 거다.

설상가상, 한국말로 쓰라고 해도 질릴 만큼의 양을 영어로 써야한다.

지금 막 책 두 권을 끝내고 세 번째 책을 쓰려고 하면서 제목을 봤는데 갑자기 혈압이 부글부글 하면서 올라왔다.

 

책 제목이 “Margin: Restoring Emotional, Physical, Financial, and Time Reserves to Overloaded Lives”이다.

뭐, 대충 과중한 짐에 눌린 생명체를 어떻게든 회복시켜준다는 얘기 같은데...

젠장, 그런데 나는 이 책 때문에 눌려 죽게 생겼다.

책도 만만치 않게 두꺼운데...

 

아니, 가뜩이나 바쁘고, 힘들고, 힘들고, 그리고 신경 쓰는 일 많아죽겠는데 그걸 회복시켜준다는 이 책마저 나를 죽인단 말인가?

그러니까 이 책을 끝낸다 해도 아직 끝내지 못한 책이 7권이나 남아있다.

정말 이 사람들은 숙제 한번 대책 없이 내준다.

어떻게 16권이나 되는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것인가?

 

그러나 할 말이 없다.

그 숙제를 몇 달 전에 내주었으니까...

그동안 놀고먹은 내가 잘못이지.

 

작년에 한번 고생해보고 올해는 미리미리 준비해서 편안히 수업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런데, 나는 참 그 이상한 게 뭐든지 코앞에 들이닥쳐야 하는 그 습관이 문제다.

너무 규칙적으로 살려고만 하는 고지식한 이 내 성격을 언제가 되야 고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입이 열 개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지만 정말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울컥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아, 일요일날 놀지도,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An Overloaded Life"가 되어버린 내 신세...

난 정말 이 작가가 밉다, 지금 이 순간만은...

 

하지만 독후감에는 그런 말을 쓰면 안된다.

“이 책은 과중한 짐에 눌린 나를 자유가 충만한 영혼의 푸른 목장으로 인도해주었다.”

막 이렇게 써야 된다.

 

아니,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은 책들을 쓴 거야? 도대체... 왜...

다 읽어봐도 다 그 말이 그 말이구만.

에이, 이 글 쓰다가 숙제할 시간 30분이나 날려버렸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그만 두고 빵이라도 좀 뜯어먹어야지.

밀린 빨래도 좀 하고...

양말이고 속옷이고 이젠 갈아입을 것도 없으니...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전 12:12

 

2012년 5월 13일 일요일 아침에 앤드류스의 내 골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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