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5천억짜리 유령

by 로산 posted May 24, 2012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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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갈 배가 여기까지 ...놀랍다
"아. 내일 대통령이 오는 거여? 어쩐지 사람들이 바빠 보이더라고."

 

김포여객터미널 1층에서 만난 페인트공 이정미(가명)씨는 "오전 내내 이곳 저곳 시키는 곳에 가서 막바지 페인트 칠을 했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24일, <오마이뉴스>가 찾은 경인 아라뱃길 김포터미널은 개장을 하루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길에는 경광등을 켠 경찰차가 오갔다. 컨테이너 부두에서는 대형 크레인이 컨테이너 하역 작업을 하는 가운데 폭발물 탐지견이 뛰어다녔다. 기자도 걷느라 바빴다. 대중교통으로는 터미널에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5월 24일 김포컨테이너터미널 부두. 텅 빈 야적장 너머로 컨테이너들이 보인다. 인부들이 개장을 앞두고 야적장 시설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 김동환
김포터미널

 

세관 통과 컨테이너 계속 내렸다 실었다...MB 효과?

 

김포터미널은 경인 아라뱃길이 시작되는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에 있다. 김포공항 방면에는 화물선이 들어오는 컨테이너 부두가, 강 건너편에는 여객터미널과 요트용 '미니' 항구인 마리나항이 있다. 김포공항에서 22번 시내버스를 타고 평교다리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면 컨테이너 부두의 상징인 붉은 색 크레인이 멀리 눈에 들어온다.

 

25일 개장식을 앞둔 컨테이너 부두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스크린과 20여 동의 행사용 임시 천막 사이로 성인 만한 덩치의 폭발물 탐지견들이 보였다. 김포공항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폭발물 탐지견이 이제 막 개장하는 김포터미널에 나타난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곳에서 열리는 개장식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바쁜 것은 탐지견 뿐만이 아니었다. 검은색 제복을 입은 관세청 직원들도 부두에 나타났다. 전날 <한겨레>에서 물동량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김포터미널에 70여 개의 빈 컨테이너가 동원됐다고 보도하자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컨테이너 내부를 볼 수 있는 X선 검사 차량을 끌고 온 것이다.

 

이날 붉은색 크레인은 종일 바쁘게 움직이며 정박해 있는 화물선 한서호에서 컨테이너를 내렸다 실었다를 반복했다. X선 검사와 폭발물 탐지 검사를 위해서다. 현장에서 만난 관세청 직원은 "컨테이너는 70개가 아니라 55개"라면서 "검사결과, 컨테이너 일부는 비어있지만 일부는 수출 물품으로 차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애당초 이 배에 선적된 짐들은 인천항에서 이미 세관을 통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곳 화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한서호는 인천항과 중국 칭다오를 오가는 화물선으로 지금은 칭다오에 갈 짐을 싣고 김포터미널에는 25일 있을 개장식 '세리머니'를 위해 잠시 정박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일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는 한 인부는 "요 며칠 크레인이 엄청 움직이던데 컨테이너 트럭은 한 대도 못 봤다"며 이유를 궁금해했다.

 

  
김포 컨테이너 부두 야적장에 쌓여있는 대용량 생수상자들. 이곳을 이용하는 유일한 화물이다.
ⓒ 김동환
김포터미널

 

크레인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가운데 광활한 부두 야적장 한켠에는 푸른 색의 대용량 생수상자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한서호에서 내려놓은 컨테이너를 제외하면, 이 터미널에 존재하는 유일한 화물이다.

 

사정을 알아보니 김포터미널의 중장비 운송을 맡고 있는 ㅈ공운 사장의 친구가 운영하는 생수 유통업체의 물품이다. ㅈ공운 최 아무개 사장은 "보관비용을 내지 않는 조건으로 친구가 한 달 전부터 컨테이너 부두 야적장을 '무료 창고'로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비용을 왜 내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서로 돕고 있는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컨테이너 부두 바깥으로 나오니 수십 대의 자전거들이 길을 오간다. 강을 따라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가 있는 이곳은 '자전거 천국'이다. 아라대교 아래서 자전거 정비 차량을 운영하는 조정석씨(가명)는 "내일은 오랜만에 장사 안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방문하면 단속할테니 눈치껏 피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부들이 김포여객터미널 옆 길에 이명박 대통령의 서명이 새겨진 기념석을 설치하고 있다.
ⓒ 김동환
이명박

 

부족한 물동량과 이용객... 터미널에는 대중교통도 안 다녀

 

'대통령 방문'이 별 힘을 못쓰는 부분도 눈에 띄었다. 컨테이너 부두 입구에 위치한 널찍한 2층짜리 부두 사무소 건물은 거의 비어 있었다. 이곳을 관리하는 한진해운과 관세청 사무실을 빼놓고는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것이다. 보통 항만에는 세관, 출입국사무소, 검역소 등이 입주한다. 수출입되는 물품과 배를 타고 오는 선원들의 출입국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장 하루 전까지 출입국사무소와 검역소가 입주하지 않은 이유는 당장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화물 물동량이 없다는 얘기다. 국립인천검역소 관계자는 "김포터미널에는 배가 안 들어오는데 거기 나가있을 이유가 없다"며 "처음부터 입주할 계획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입주 계획이 없기는 출입국관리사무소도 마찬가지다. 인천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김포터미널에 배가 많지 않아서 요청이 있을 때만 출장심사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컨테이너 부두 건너편에 위치한 3층짜리 여객터미널도 차분하고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곳 직원들에게 대통령이 오는 개장식은 '강 건너 얘기'일 뿐이었다. 인천과 김포를 오가는 여객터미널은 문을 연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입점한 식당이 없다. 터미널에 근무하는 H여객업체 직원은 식당을 찾는 기자에게 "우리도 단체로 배달시켜 먹는다"고 귀띔했다. 유일한 점포인 편의점은 6개월째 적자 상태다.

 

  
아라뱃길을 운행하는 유람선. 승객이 거의 없다.
ⓒ 김동환
김포터미널

 

건물을 관리하는 업체인 '이랜드크루즈'의 직원은 "지금 대통령이 오는게 문제가 아니라 명색이 터미널인데 대중교통이 안들어오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터미널에서 시내로 나가려면 택시를 따로 불러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30분이나 걸어야 하는데 자기 차 없으면 누가 오겠느냐는 얘기다. 이 직원은 "처음에 터미널 열었을 때는 서울시와 김포시에서 각각 한 대씩 버스를 운행했는데 이용 승객이 없어서 열흘 만에 중단됐다"고 말했다.

 

그는 "유람선도 어마어마한 적자"라고 털어놨다. 오후 2시 20분이 되자 인천에서 출발한 이랜드크루즈의 유람선이 터미널 앞에 멈췄다. 180명이 탈 수 있는 이 여객선에서 내린 사람은 18명.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그중 한 남자가 기자에게 "식당은 어딨냐"고 물었다.

ⓒ 201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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