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준목사가 뭐길래 ?

by 이동근 posted Nov 30, 2010 Likes 0 Replie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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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준목사가 뭐길래 ?

 

미국에서 10년 사는 동안
아름다운
좋은 추억들이 수두록하지만
기억되는 가장 보림된 일은
지금의 세리토스 교회를 개척하던 일이었다.

 

강현일장로님, 하수애장로님, 하정수장로님, 김동림장로님, 김진달장로의 부모님과 누나 가정이
초기부터 하나가 되어
너무도 열심히 개척교회를 섬겼고
(고)이용진목사님과 현혜경사모님이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한만선장로님 가정과 안철주목사님 가정이 합세하면서
교회의 발전은 탄력이 붙기 시작하였다.

 

초기에
라팔마 공립 고둥학교의
피아노가 있는 음악교실을 안식일에만 임대하여
예배를 드렸다.
임대료가 너무도 저렴하여 부담도 없었고
편리하였다.


얼마 후에는 학교에서
안식일에 음악실 학생들 사용 계획이 있다며
대신에 넒은 강당을 사용하는 특권을 누리며
교회 성장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
동남가주 합회로부터
재림교회 명칭을 사용하지 말라는 공문을 받게되다니 !
참으로 어이없는 교회 행정에 순종하면서도
행정세력의 반대에 굴하여 넘어지기는 커녕
도리어 교회개척의 불은 활활 타올랐다.

 

화를 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지헤로
교회 위치를 남가주합회로 옮기니
교회 하나가 그냥 굴러들어오게된
남가주합회는 대환영이었다.
이런 위험에 미리 대비하여
개척 초기부터
개울 하나 건너면 합회가 달라지는
지역을 택하여 교회 개척을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다.


가게나 사업이나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장소의 선택은
성공여부에 결정적 요소가 된다는
교회성장학 이론근거도 체험하게 되었다.

 

장소를 옮기고 소속을 옯겨서
새합회의 소수민족부장의 적극적인 행정적 지원도 받게되었고
교회는 빨리 발전하고 성장하였다.
다른 일반 일요교회들과는 달리
재림교회는 행정적 지원이
교회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되는지를
몸으로 배우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개척한 교회는
이상구박사님 초청 건강전도회를 매년 실시하는 등
하나된 성도들의 헌신과
적극선교에 힘입어l
출석 교인수가 50-60명 정도를 넘어서
70-80명에 이르게 되니
목회자 없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교회를
평신도 지도자들이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되었다.

 

합회에 성실하게 바치는 십일조 이외에 별도로
교회가
목회자 급여와 관련보조지원금 전액을 합회로 보내고
합회가 목회자 급여를 지불하는
계약직 목회자(Contract Pastor) 청빙을
교회 직원회가 결의하고
합회의 승인을 얻어서
목회자 후보를 물색하게 되었다.

 

교회 직원회는
그 당시
중국 선교에 미쳐서
중국지역의 조선족 선교를 처음 시작하여
영혼구원에 불붙어 있었던
카나다 시민권자이던
유영길선생님을
교회의 초대 목회자로 청빙하게 되었고
유선생님은 드디어
한인 재림교회의 유목사님으로 변신하게 되고
미국 영주권까지 얻게되는
인생역전의 길이 이루어드리게 된 셈이다.

 

나는
복지선진국 미국에 이민와서 누리게 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 보답하려고
교회개척으로 심령이 뜨거워진 심령을
고국 한국을 위하여
10년간 봉사하리라는 10년 플랜을 세우고
1989년 1월1일부터 3일간
로마린다 교회 지역의 뒷산 빅 베어 마운틴에 가서
자동차 안에서
3일간 금식기도를 올리며
결심을 다지게 되었고
이를 실천에 옮기게 되어
초딩 2학년이던 큰 딸 소은이를 데리고
다음달 2월에 한국으로 먼저 출국하였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당하는 어려움은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체류기간 90일이 지나면 한국을 떠나야 하고
떠나지 않으면 불법체류가 되는 것이었다.

체류기간 90일이 얼마나 빨리 돌아오는지
미국 시민권이라는 죄(?)로
한국 체류비자 때문에
매 90일을 넘기지 전에
가기 싫어도 가까운 일본이나
필리핀을 다녀야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삼육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월계교회 전도사 2년을 거쳐서
인준목사 시험을 통과한 후에
한국연합회 목회부장은
미국 시민권자는 규정상 인준목사가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시민권을 포기하든지
목회를 포기하든지
선택인지 강요인지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 규정을 감히 확인할 엄두도 내보지도 못하고
한국연합회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으로
믿고 따르던
순수성인지 어리석음인지도 모른채로
미국시민권은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하늘 시민권 있는데 까짓 미국시민권 쯤이야...
이렇게 믿었고
이런 것 포기하면 이 땅에서도
더 좋은 것들이 주어지리라 믿으면서
즐겨 순종하였다.

미국 시민권 포기하는 절차와 기간 때문에
다른 사람들 보다 약 한달 늦게
인준목사가 된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 다운 목회자가 되려는 노력으로
혼신의 헌신을 쏟았고
처음 맡게된
개척교회 월계교회는
(고) 김택용장로님과 김용갑장로님, 이삼록장로님, 박영권장로님,
김봉수장로님, 오진규장로님, 김공익장로님, 정해근장로님 든든하신 장로님들과
여러 집사님들의 헌신으로
지금의 공릉 제일교회로 성장하는 기초를 든든히 놓게 되었다.

 

미국을 등지고 한국에 온 이후로
월게교회 개척의 기초를 일군 보람과
삼육대학 후문 도로를 이룬 보람과
쓰러지려던 삼육보건대학을 살리기 위하여
몸과 마음과 재산을 바쳐 헌신하다가
의사인 동생집까지 경매로 날리게 된
주님과 교회기관을 위한 헌신은
나의 어리석음이었단 말인가 ?

 

괘심죄(?)에 걸리면
헌신인지 어리섞음인지 혼돈으로 몰아가게 되는 것인가 ?
그리고 ㅈㅇㅁ집사의 참혹한 뒤를 따라야하는지
무서운 유혹에도 시달리게 된다.

 

지금은
왜 ?
인준목사가 뭐길래 ?
한국연합회가
나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게 한 것일까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젠 후년 7월부터
한국에 살면서도 미국정부로부터
매월 꼬박 꼬박
최소한 600 - 800불정도의 생활비도 받게되는데.....

 

그런데


한국연합회는
십일조가 아닌
사학교원연금공단에서 평생 받게 될
월 180여만원 정도가 될
나의 연금 혜택을 날려버리는 것인가 ?

 

허위경력서로 교수된
전직 ooo장의 딸 교수임용을 덮어두지 않고
필리핀 의대 졸업장 의학사를 석사로 속인 것을
덮어두지 않고
이는 시정되어야 할 부정이라 말하는
괘씸죄(?)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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