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사울

by 로산 posted Jul 12, 2012 Likes 0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다윗과 사울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닌 것은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백성들의 칭찬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분노한 겁니다.

다윗은 자기가 스스로 만만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저절로 한 겁니다.
입 밖에 내지 않은 일이 다른 이들의 언어로 인해서
그는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
그들의 합계가 400명이었다 합니다.
모인 무리 거의가 비정상적인 사람들입니다

찬미가 일절입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게”
이 찬미를 부르면서 내가 바로 환난 당한 자라고 느낀 적 없습니까?
그렇다면 나도 400명 중의 하나입니다
사업에 실패한 경험으로 빚진 적 있습니까?
그래서 빚쟁이에게 쫓겨 다닌 적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400명 중의 한 사람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원통해서 혼자서 울어 본 일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 400명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런 무리가 모였는데 불과 400명이라 합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대대병력입니다
정규군인도 아닙니다
그 가운데는 부량자도 있었을 겁니다
다윗의 친인척도 있었을 겁니다
갈 곳 없는 밥 얻어먹을 길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다윗의 무리는 사울의 추격을 받습니다

그 무리가 세월 지나서 불었는데 600명쯤 되었습니다
삼상 30:9
“이에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육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는
뒤 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렀으되“

그런데 상대방인 사울은 다윗이 상대를 할 수 없을 만큼 많았는데
다윗이 왕권을 인계받은 후에 수를 세워보니 이랬습니다
삼하 24:9
“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

다윗의 군대는 600명인데
사울의 군대는130만정도였습니다
왜 내가 이런 숫자를 들먹이는지 아십니까?

다윗을 잡으려고 사울이 나섰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울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가 된 겁니다
두 번째 그런 상태에서 다윗은 사울의 창과 물병만 취합니다
삼상 26: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서 목숨을 취하지 않았다 합니다
그 말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뜻을 잊어버릴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반란군이 아닙니다
다윗이 반란군이라면 사울의 목을 취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울도 기름부음을 받았고 다윗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면 모가지를 뗄 수도 있었고 떼어도 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죽이려 드는데 죽임을 당하느니 죽이는 것은 전쟁의 철칙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사울을 자기 손으로 죽이지 않았을까요?
첫째는 자기 때를 기다림이고 둘째는 세력의 불균형 때문입니다
그것을 합리화 시켜 준 것이 바로 기름 부음이란 것입니다

압살롬이 반역했습니다
그를 피해서 도망갔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세력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전쟁의 분위기가 바뀌고 오히려 압살롬이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전쟁은 그런 겁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겁니다
그러나 숫자가 열세에 머물면 죽일 수 있다고 해서 다 죽이는 것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죽은 아들을 위해 울었습니다
뭐라고 하면서 울었습니까?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18:33)
다시 말하자면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지 하는 말입니다
같이 도망가던 신하가 빈정됩니다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삼하19:6)

자기를 잡으러 오던 자식이 죽었는데
그를 위해 우는 다윗은 매우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패륜아라도 사랑하던 다윗 그게 아비의 마음 인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다윗이 매우 나쁜 왕이었습니다
남의 마누라 빼앗기 위해 그 남편까지 죽인 왕이었습니다.
사람이 잘못하는 일이 없이 살면 어디 그게 인간입니까? 신이지요
그렇게 인간답게(?) 산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던 자식을 잊지 못해 우는 겁니다
그게 발전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위 성경절과 내가 쓴 글이 대입이 잘 안되십니까?
예수님은 이런 예루살렘을 향해 우셨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못 잊어서 울듯이 말입니다
그런 울음 우는 곳이 기독교입니다

사울은 천천이지만 다윗이 만만으로 통한 이유가
어릴 때 다윗의 모습에서도 이런 것을 백성들이 봤다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골리앗을 죽인 것으로만 다윗을 만만으로 평가하듯이 성경을 읽지만
떡잎 때부터를 알아보는 눈은 정확한 겁니다.

사울은 길르앗 전투에서 지고 죽습니다
기다린 보람으로 다윗이 그 뒤를 잇습니다
그의 인간적 모습은 요나단의 가족을 돌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 챙길 여유가 있다는 것은 다윗의 왕다움을 예견하는 겁니다

오늘 유대인들의 국기에서 다윗의 별을 볼 수 있는 것
저들 히틀러의 죄수복에서도 그 별을 볼 수 있는 것은
다윗이라는 걸출한 왕이 있었기에
그 왕을 존경하는 백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성웅 이순신을 가지고 있듯이
저들 또한 성왕 다윗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완벽이 없습니다
항상 모자라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의 사랑은 이 불행한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을 감싸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입니까?
그 이름에 걸 맞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일까요?



Articles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