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2일 다아먼드 바 새소망 교회에서 행한 설교 개요

by 오강남 posted Aug 23, 2012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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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2일 안식일 다이아먼드 바 새소망 교회에서 한 설교의 개요입니다.

"혹시나" 하고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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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뜻 - 기쁨, 기도, 감사

 

성경본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여기서 바울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언제나 기뻐하는 것,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1. 항상 기뻐하라

 

어떻게 해야 기뻐질 수 있는가? 누가 우리 보고 기뻐하라고 권고한다고 해서 우리가 기뻐지는 것 아니다. 심지어 기뻐하라고 명령을 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기뻐할 수도 없다. 또 내가 기뻐해야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기뻐지는 것도 아니다. 기쁨은 기뻐할 이유가 충분히 있을 때 저절로 속에서 울어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면 기뻐할 이유로 어떤 것이 있는가?

 

성경에 보면 만남의 기쁨, 사랑의 기쁨, 승리의 기쁨, 해방의 기쁨 등이 있고, “너희가 진리 안에서 거하는 것을 보는기쁨, “진리와 함께 함의 기쁨 등이 있다. 특이한 사실은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고전13:6)하는 것을 보면 불의한 것, 남이 안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일, 고소해 하는 일도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남이 잘되는 것 보는 것보다 안 되는 것 보는 것이 더 기쁠 수 있다. 사촌의 아버님이 건강하시면 사촌과 함께 기뻐하고, 병이 들면 같이 슬퍼할 수 있지만 그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 않는가? (여담: 배 아파하는 사촌도 나쁘지만 사촌이 배 아파할 것을 알면서 논 샀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촌은 더 나쁠 수도...^^ 내 아들 어디 합격했다, 의사가 됐다,뭐가 됐다 하는 말로 남의 배를 아프게 하지 말지어다!)

 

기쁨의 원인으로 몇 가지를 더 살펴보자.

공자님은 論語 첫머리에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락호아, 인이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라 하셨다. 골수를 쪼개고 들어오는 진리의 빛을 경험하고 이를 되풀이할 때, 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멀리서 올 때, 이런 의연함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진정으로 기쁨이 된다는 뜻이리라.

 

맹자도 君子三樂이라 하여,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불교에서도 인간이 거쳐야 할 영적 발전 단계를 十地라고 하는데, 그 첫 단계가 바로 歡喜地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이자 사상가였던 파스칼이 39세에 죽은 후 그의 양복 안쪽에 꿰매진 천 조각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자기가 16541123일 체험한 특별한 종교경험을 적어놓았다. 십자가와 거기서 나오는 빛을 그린 그림 밑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당신은 철학자나 학자들의 하느님이 아니옵니다.

확실성, 기쁨, 확신, 정서, 평화, 기쁨

이 세상은 당신을 몰라도 나는 당신을 아나이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나의 하느님이여, 당신이 나를 떠나시렵니까?

(하략)

 

(여담: 나도 77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이라는 구절을 인용한 시를 하나 써서

Christian Science Monitor 신문에 냈는데, 신문에 게재되고 25불인가 30불 받은 적이 있다. 말하자면 등단시인’? )

 

사실 파스칼이 가졌던 그 기쁨이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 싶은 기쁨과 같은 성질의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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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쁨

 

성경 마태복음13: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고 했다.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을 때 기쁨이 차올라, 거기에 요즘 말로 올인한다는 이야기다. 숨겨진 보물이 뭔가. ‘하늘 나라’, 더 정확하게 하느님의 나라. 내 속에 숨겨진 하느님의 나라! 내 속에 있는 하느님의 임재. 나의 가장 나다운 부분. 곧 나의 참나. 큰나. 眞我. 大我. 이것을 찾을 때 진정으로 기뻐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진리를 발견하여 기뻐한다는 것은 세계종교의 기본 핵심에 속한다.

 

우리의 눈이 뜨이어, 깨달음을 얻어, 의식의 변화를 통해, ‘특수인식능력의 활성화를 거쳐, 내 속에 있는 신성, 불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바로 나의 참나임(侍天主, 人乃天)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이웃, 나아가 온 우주가 하나로 어울려 있음(interdependance, interrelatedness, 상호의존, 상호연관)을 깨닫는 것이다. "새로운 우주 공통체"의 발견이다.

 

이런 것을 확신할 때 소외감(alienation)”이나 나그네 됨(estrangement)”을 느낄 필요가 없다.

 

(여담: 죄를 그리스어로 hamartia라 하는데, ‘missing the target’이라는 뜻. 존재의 근원인 절대자에게서 떨어져 있는 상태. 따라서 죄를 없애는 속죄하나 되는 것’, 영어로 at-one-ment. 골프는 이렇게 소외된 내가 나의 근원과 하나되는 과정을 가장 실천적으로 깨닫게 하는 께임이라 할 수 있다! ^^)

 

2. 쉬지말고 기도하라

 

그런데 이런 깨달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로 기도. 종교철학자 Ferre나는 기도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하는 재치있는 말을 했지만, 사실 기도가 없는 종교는 없다. (기도에 대한 좋은 책으로 Richard Foster, Prayer가 있다. 한국말로 번역됨)

 

우리는 기도라고 하면 무엇보다 비는 것이라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나 무엇을 비는 탄원기도(petitionary prayer)가 기도의 다가 아니다.

이런 것을 강조하고 기도만 하면 뭐든 성취된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 신학을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라 한다. 한국에서 한창 유행하던 <야베스의 기도>

라는 것이 이런 것. 이것 때문에 기독교인 중 더러 절에 가서 땅밟기를 하기도...)

 

이런 기도도 필요하다. 나의 한계성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더 큰 힘, 불가피한 사정에 나를 맡긴다는 뜻이면 좋다. 그러나 이런 기도 덕에 뭔가 나의 이기적인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닥 믿는 것은 위험. : 리차드 도킨스가 실험한 기도 효과. 모든 영국인들이 만수무강을 비는 영국 왕실의 평균 수명이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더 긴가? 암에 걸린 목사를 위해 온 교인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데 그의 치유/사망 가능성이 다른 사람과 다른가?

 

기도에는 이 외에서 감사기도, 찬양기도, 중보기도 등등이 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것은 a. ‘예수의 기도’, b. ‘관상기도혹은 명상/참선기도

예수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하는 기도를 하루에 3천번, 6천번, 2천번 하다가 나중에는 저절로 끊임없이하게 되는 기도형식이다. 어느 러시아 젊은이가 이 기도를 실천하며 시베리아 평원을 횡단하는 순례의 이야기. 이때 얻은 무한한 기쁨에 대한 이야기는 오강남 편역, <기도 -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수의 기도>(대한기독교서회, 2003) 참조.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는 보통말로 고치면 명상이라 할 수 있다. ‘명상이라고 하면 동양 종교에서나 하는 이상스런 행위라 생각하기 쉽지만, 성경에도 나온다. 시편12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묵상이 바로 영어로 meditation이다. 율법은 형법, 민법 따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원리, 진리.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하면 참선이라 할 수도 있다. 아무튼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觀照, 返照를 의미한다. 불교 위파샤나 운동에서 말하는 mindfulness, 마음 다함, 마음챙김이라 할 수도 있다. 외계(outer space)를 탐색하는 외적 우주인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 보는 내적 우주인(inner astronaut)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할 때 우리는 우리의 영적 눈이 뜨여 우리 속에 있는 보물을 찾는 기쁨을 얻게 되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게 된다. 폴 틸리히가 말하는 궁극관심(ultimate concern)’이다.

 

3. 범사에 감사하라.

 

이런 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우리 주변, 우주의 모든 것의 여여함’ ‘정말 그러함實相을 알고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영어로 appreciation이라는 말은 뭐의 진가를 알고 그것을 고마워한다는 말인데, 우리의 눈이 뜨이어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다른 차원의 reality를 발견할 때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나가면서

 

이렇게 보면 기쁨, 기도, 감사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유기적 관계를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뜻은 이런 세 가지 일이 함께 이루어져,

우리의 삶이 신나는 삶, 풍요로운 삶, 의연하고 의젓하고 당당하고 늠름하고 떳떳한 자유인의 삶이 되라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모두의 삶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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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대체적 개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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