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암유록(格菴遺錄)의 진실규명(事眞實糾明) ♣...《"해월유록(海月遺錄)에서》

by ㅁㄴㅇ posted Aug 30, 2012 Likes 0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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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암유록(格菴遺錄)의 진실규명(事眞實糾明) ♣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www.myungs.co.kr

2006/07/15 22:16 신비의 세계 jsm0123.egloos.com/8652647 0 comments

격암유록의 시비는 2000년도 천부교와 MBC 방송과 소송관계에서 불거저 나옴으로 해서
각광 받기 시작했다. 이 MBC와 천부교간 손해배상 상고심공판에서 피고인 MBC가 비기인
격암유록에 근거하여 박태선 장로가 하나님이라 고 주장하고 있다는 반박에 대하여
천부교 측에선 전 세계가 공히 인정하는 성서상의 예언에 입각하여 박태선 장로가 하나님이
틀림없다는 주장 이였고, 상고심 손해배상소송 과정에서 MBC가 패소한일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격암유록이란 책자가 세인에게 빛을 보게된다.

그러나 1957년경부터 정감록에 심취하였다가 입교한 교인들을 책패라고 불렀는데
소사 신앙촌 내에서 한자 파자(破字)를 가지고 돌아다니던
허무맹랑한 책자로서 폐기지시를 한바 있었다.


「격암유록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의 저본」 최중헌의 논문에서
게재된 필사자 이용세씨 주장을 옮겨보면

“1944 년 초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지주 이영부(李永富) 씨가 무슨 고서 한권을 가지고 와서
자기는 봐도 모르겠으니 한번 봐 달라고 하기에 그 책을 받아 가지고 살펴본즉
자기도 역시 모르겠더라 란 것이다.
그런데 그때 느낌이 아무래도 무슨 중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책인 듯싶은 데
책이 모두 헐어서 찟겨져 있기도 하고 누더기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민망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아끼는 마음에서 한지를 한 권 사다가 당신 손으로 엮어서 직접 필사를
하기 시작하여 끝마친 날이 1944년(甲申年) 윤4월 병신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용세 할아버지는 이책이 격암유록인지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사실 별 관심도 없이 필사를해서 궤짝속에 넣어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 후에 가까운 친구인 김길환(金吉煥).김경환, 차연철씨등의 친구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앞으로 또 난리가 날 텐데 이때 잘못하면 모두 죽는다고 하는 말에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자세히 보니 그책은 류반계(柳磻溪)선생의 아들 초창(蕉窓)이 쓴 초창록(蕉窓錄) 필사본이었다.
그 내용은 한번 살펴본즉 즉 삼재팔난(三災八難)의 재앙이 앞으로 닥쳐올 터인데
이때 이 난을 피해 살아가는 방법을 아들이 물으니,
아버지 류반계(柳磻溪)선생이 격암공(格菴公)의 유록(遺錄)에 자세히 밝혀져 있으니,
그대로만 따라가면 되는데 무엇이 걱정할 것이 있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땅을 팔아 가지고 격암유록(格菴遺錄)이라는 책을 구하려고 전국방방곡곡을 다 해 맸다.
그런데 그런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가 1947∼8년쯤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친구인 김길환씨가 전라도에 어떤 교단을 가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가서 보니
일심교(一心敎 : 갱정유도)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교단인데, 들어가서 교주라는 사람을 쳐다보니까
그야말로 망지불이인군(望之不似人君)이었다.

그래서 이도은(본명 이용세, 1907년 ~ 1998년)옹은 실망을 하고 점심도 얻어먹기 싫어서 그대로 자리를 털고 나와
차를 타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김길환(金吉煥)씨는 그 집에서 한달 버티고 있었단다.
하루는 누워서 쌓여있는 책 더미들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헌책 한 권을 빼 가지고 간다온다는 말없이 와 버렸다.

그런데 그 책이 하필이면 격암유록 이더란 것이다. 이옹은 반가웠다.
그 동안 이 책을 구 하기 위해 남조선 일대를 다 헤멨고
48,000평의 땅 중 에 절반인 20,000평을 팔아 여비로 모두 탕진하는 등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이제 격암유록은 구 했는데, 그 후에 6.25난리를 겪고 난 후 이 책의 내용을 해본 즉,
꼭 소사 범박동, 소래산, 노고산이 있는 신앙촌, 박태선(朴泰善)씨가 있는 곳으로 가야 살 것 만 같았다.
그래서 김길환(金吉煥)씨가 먼저 범박동 신앙촌으로 가서 입교를 하고 그 책을 가지고
이옹을 데리고 가려고 온것이 1959년이었다 한다. 그래서 이옹도 같이 따라가서 보니까
신앙촌은 직접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밖에서 6개월 간 대기 생활을 한 다음에 입촌 절차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옹은 다시 고향에 내려와 전답과 가대(家垈) 일체를 사놓고 이사 준비를 마친 다음
1960년 10월경 가솔10식구를 데리고 다시 내려가서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니까.
궤짝 속에서 한지에 기록된 필사고본(筆寫古本)이 한 권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까
1944년 서울의 땅주인 이영부(李永富)씨가 갖다 주어
당신손으로 직접 배껴 쓴 책인데 이것이 격암유록(格菴遺錄)이더란 것이다.

이책을 다시 김길환(金吉煥)씨가 일심교에서 가져온 격암유록과 대조를 헤보니
한글자도 틀림없는 똑같은 책이었다
.

그때 궤짝 속에 필사해 두었던 책을 당시 믿고 믿었던 박태선 (朴泰善)씨가
혹세무민 (惑世誣民)의 소지가 있는책이라고 불태우라는 명령을 내려 막불 태우기 직전에,
당신이 이 책을 구하는데 힘들었던 과거의 정성이 너무 아까워서 ,
박태선씨 몰래 1977년 다시 당신 손으로, 또 일부는 조금은 타인의 손을 빌려서 재필하여놓고 ,
보존 방법을 생각하다가 아주 영구보존방법을 생각하고 국립도서관에 기증(寄贈) 한책이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격암유록 필사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1944년에 당신이 필사했던 책은 1977년 박태선 씨의 명령에 따라 불태워 졌으며,
그때그대로 재필한 것이 현재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고

당시 김길환(金吉煥)씨가 일심교(一心敎 : 갱정유도)에서 가져왔던 필사본은 김옹이 작고하고
그 아들이 작고하고 동생이 작고하는 등 김씨 집안에 우환(憂患)이 계속 되다 보니까,
김옹의 부인이 옹의 소장품 일체를 모두 소각시켰을 때 모두 함께 소각되었다고 한다.

이상이 이용세씨의 격암유록(格菴遺錄)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증언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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