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때 내게 누가있었을까
교인들이 있었다고 위로받고 싶을때 옆에 성도들이 있었다고 앞날이 아득하여 조언을 구할때 목사님이 있었다고 삶의 나락에 빠졌을때 주의 형제들이 있어 나를 살렸노라
그래서 나는 부모 형제보다 교회 성도들이 더좋고 더 정감이 가고 더 의지가 되며 그렇게 살아다고 그런 간증이 스스럼없이 나와야하는데?????????
어느순간 극심한 어려움이 닥쳐왔을때 정작 가장 큰 도움이 필요 할 때에는 교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교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십일금은 감사헌금은 당연히 드리면서 보이는 부모형제에게 그 10분의 1도 못한 나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정작 가장 어려움이 닥칠때 형제는 금전적으로 마음적으로 싸들고 오지만 교회는 방관할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더란 말이죠
가령 1년동안 드린 십일금만이라도 되돌려 주었다면 아마도 쉽게 일어설수 있는 형편이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건 어리석은 생각일까?
그래서 조금 덜 헌신해야겠는데 신앙이 뭔지 수십년 생활화한 십일조와 헌금은 바뀌지 않으니 아직도 내게 큰 도움이 되신 형제들의 도움엔 감사할줄모르고 교회에만 정직??한 십일조와 헌금은 빠진적이 없으니 내 자신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모래위의 발자국 이야기는 감동스러운데
정작 내게 어려움이 있을때 주께서 나를 업으셨는지
하늘 가보면 알려나.
불랙홀이 생각나는건 참 아이러니하지요.
모든교인들에게 빨아들이기는 하는데 내어놓는건 없으니
초대교회는 분명 집사를 임명한 동기가 어려운 고아와 과부들에게 골고루 공평하게 분배하는 일을 위한 것이 시초였는데
어쩌다 어려운 이웃에게 돌아가야 할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돌아가야할 갑자기 생활이 곤핍하여진 형제에게 돌아가야할 자금은 하나도 없이 불랙홀에 빨려간것처럼 흔적도 없으니 참 묘하고 묘하도다 그리고 그런 삶을 아무런 불평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꼬박꼬박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고 윽박질러 위협하는 강단의 소리에 드리는 나자신이 참 한심하다.
오늘은 형님께 감사 전화라도 해야겠다.
블랙홀이란 표현은 어떻게 생각해 내셨는지
내가 찿고있던 단어네요.
교인들이 어려울때 교회가 도와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간증 많이 들어요.
한때는 그 반항으로 저는 몇해 추석이나 설에 목사님께 드리던 선물들을
어려운 성도들로 옮겼어요.
그런데 마음이 겁이좀났죠. 좋은건 먼저 목사님 드려야 된다는
나이드신 집사님 말씀이 생각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