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홀로되신 누님 한분이 계신다.
신문기자 였던 남편을 잃고 어린 다섯자녀 와
남겨놓은 가난으로 참으로 힘겨운 삶을 사셨다.
그 시절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큰 딸아이 가 방황하다가
겷국 가출 하기를 시작했고
눈물의 긴 시간들이
누님 을 매마르게 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누님집에 갔더니
마침 집 나갔던 아이가 붙들려왔고
그 아이의 긴 머리채를 한 손으로 감아쥔 누님은
" 야 동생아, 저 설합 열고 가위좀 갖다주라 , 오늘 이넌 의 머리 짜르고
나도 그만 죽을란다, 뭣 하노 ! 가위 달라는데.."
엉겹결 에도 그랬겠지만
실은 그렇게 해 버리는것이 옳은 방법 같았다
홀 어미 마음을 저렇게도 아프게 한다는 말인가?
가위를 찾아 건냈고
그리고 아이의 그 검고 윤기 흐르던 긴 머리 는
가위와 함께 마당에 던저졌고
누님은 한없이 우셨다.
세월이 지나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날 그 낡은 가위는 겷고 조카 아이의 머리를
짜르는 도구가 아니였음을 문덕 문덕 깨닭곤 하였다.
~그것은 삼촌 인 너가 저 어린것 혼자서 감당 할수없는
외롭고 그 힘들었던것 누나 대신 좀 도와 달라 ~ 는
그 간절하고도 절박한 부탁이 아니었겠는가 ?
예수께서 탕자의 비유를 꺼집어 내시면서
큰 아들 몫에는 아비의 당위적 요구가 포함 되어 있다고 말씀 하신다.
잔치가 " 돌아온자" 에 대한 용서와 연민의 표시 이기도 했지만
더 깊은 뜻은 언젠가는 분명히
다른먹이 와 시장 창기 를 찾아 배교로
떠날자 에 대한 마치 유월절 만찬의 떡잡은 손처럼
아비의 슬픈 붙듬 이었고 또 이런 사실에 관하여
아비는 큰 아들에게
" 다만 제 몫에 대한 평가 비평 보다는 같은 동류 형제로서의
부채 감당 을 너도 인정해 달라 " 는 것과
더 나아가
이런 "낡아질 자 "에 대하여 같은 연민의 정으로 아비 대신
해야 될것이 있다는 간곡한 청 이요 엄숙한 질문이
이 잔치의 본질이 아니였을까 ?
현제 이미 다른 양식을 쫓아 배교 한자나
머물어서 아비의 재산으로 송두리채 중앙 소비주의 로 만들어 놓고
제도 수위권에 버투고 앉아 형제 신앙인들 의
굴종 만을 요구하는 저 기독 둘째 아들들 의 횡포를 바라보면서
또 그런것을 야유하면서
떠난 배교자 를 동경하며 충동질 하는
저 신앙 얼바리 들을 보면서
판단의 지성으로
가치적 명령과 그런 가치적 당위를 가지고
당당히 나설만한 형님은 이 교회안에 있는가 ?
아비의 잔치를 깊게 인식하고
실증적 삶으로 증언하면서
이 시대 신앙 지성 선비로서 의
안식일 교회 형님은 정말 존재 하고 있는가 ?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형님이란 탈을 벗고
야곱의 팟죽 그릇에 그만 코를 처박고 죽자 ,
몇주전
집안 결혼잔치에 갔드니
한 50 후반의 후줄그레한 낯선 여자 가
겁많은 눈빛으로 머뭇머뭇 내 곁으로 닥아와서
손을 꼭잡고,
" 성술이 삼촌, 나 00 야요 "
하면서 눈물을 글썽 였다.
40수년이 지난후에 우리는 그렇게 만나서 한동안 말을잊고
멍하니 벅수처럼 그렇게
세월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