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행여 불혹을 넘어 지천명에 다가서는 사내의 ‘옛사랑’을 떠올리게 해 들판을 서성이다 그 길 찾아가게 하기도 할 터. 사랑만 그러겠는가. 우정도, 추억도 기억 속에서 곱게 피어나는 계절이다.

분명 그 남자도 그랬을 것이다. 9월을 며칠 앞둔 그는 유달리 옛 생각에 젖은 아침을 맞이했을지도 모르겠다. 2010년 이후 단체문자 2통 이외에는 연락 한번 제대로 못한 사이라도, 불쑥 용기를 내게 만들 만큼 바람의 온도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는 결국 전화기를 들었다. 


   
이틀 후, 그 통화는 9월 첫째 주 한국을 뜨겁게 달군 ‘스캔들’이 되었다.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은 버디무비를 상상하며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은 금태섭 변호사에게 그 내용은 호러무비였다는 것. 

전직 검사로서 수많은 범죄를 다뤘을 정 전 공보위원이, 협박은 말을 한 사람의 의도가 아니라 듣는 사람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겠지만 그날따라 유달랐을 바람 탓이었으리라.

섭한 마음에 정 전 위원은 우정을 증명하느라 분주했다. 옛 사진을 찾으랴, 문자를 뒤적이랴, 또 기억을 더듬느라. 20년도 더 된 대학 시절 사진을 ‘친구 태섭이’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렇게 과거 기억 복원에 성공했던 정 전 위원은 정작 최신 기억은 살리지 못했다.

출근길에 직접 운전을 하며 금 변호사와 통화를 했다고 밝혔지만, 자신을 태웠다는 택시 기사가 등장하면서 그는 점차 말을 잃어갔다. 택시 기사가 협박이라고 여겨지는 대화 내용을 들었다고 증언을 한 것. 당황했던 탓일까. 그 보도가 나온 날, 정 전 위원이 언론사 인터뷰를 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고 다음 날, 그는 입을 열었다. “택시를 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우정과 협박 사이’를 궁금해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정 전 위원의 얕은 기억력을 탓하며 ‘애매모호한 인정’으로 그 정황을 애써 짐작할 뿐이다.

그러니까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팩트’를 좇아보자면, 정 전 위원은 먼저 직접 운전을 했다고 했다가 다시 택시를 타기도 했다고 밝혔으니…. 두 가지 경우가 있을 때는, 역사의 판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