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과 서신 정도의 구분
영감은 뭔가?
영감은 성령의 감동을 말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그 저자라는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면 화잇의 글이 아래 영감설 가운데 어디 속하는지
물어봅시자
1. 기계적 영감, 구수 영감, 축자적 영감설
2. 직관 영감, 조명 영감, 신비적 영감설
3. 자연적
영감설
4. 부분적 영감설
5. 바르트(신정통주의) 영감설
6. 목적 영감설
7. 역동적 영감, 유기적
영감설
화잇의 글을 두 가지로 대별하는데
그 하나는 영감의 글이며 또 하나는 자신의 글입니다
서신은 철저하게 자신의
글이요 생애의 이야기들입니다
대총회 정신 빠진(?) 인간들이나 화잇 출판위원회의 일원들이
짜깁기 책을 만들어서 화잇의 영감을 현저하게
훼손했습니다
개나 쇠나 화잇 들먹이면 유식한 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가 고기를 끊겠다 하는 이야기가
영감의 책인가요?
그건 개인의 결심일 뿐입니다
그가 고기를 끊겠다 끊었다 하면서 간혹 먹었기에 내가 영감이 아니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글로 인간성을 평가하고 신앙의 측도를 제는 것을 반대합니다
지나침은 언제나 모자람보다 못합니다
화잇의 글이
초자연적 기록입니까?
그가 쓴 수많은 편지들 원고들이 모두 영감의 책입니까?
개인이 어려워서 도움을 요청할 때 그들을 권면한 글도
영감의 글입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포수가 주는 사슴고기를 얻어다가 맛있게 먹었다 하는 말도
영감으로 여기나
봅니다
남이야 고기를 먹건 채소를 먹건
건강의 위해서라면 권면으로 마쳐야 합니다
하늘 갈 사람의 식탁에 고기 없어야
한다는 논리는
논리가 아닌 권면일 뿐입니다.
그가 고기를 끊기 위해서 기절하고 수 없이 울고 했던 것을
우리는 개선장군의
독백으로 생각합니다만
죄송하지만 그것은 영감도 아니요 인간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건 교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게 하늘
갈 사람들이 지지고 볶는 이론이라면
영 아니올시다. 입니다.
화잇의 글이 정경이 될 수 있습니까?
비정경이란 말로 비껴
갈 내용인가요?
그의 개인적인 견해까지 묻어서 비정경으로 환원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뭐라고 하실까요?
3500여년동안 성경은
수 없이 첨삭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첨삭된 성경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런 성경보다 우위에 놓고 있는 우리 일부들이 지켜야 한다고
우기는 그 여인의 글을
하나님은 정말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야 하실까요?
왜 그 정경처럼 생각하는 책을
남편인 제임스까지 하늘로서 온 기별이라고 한 책을
부랴부랴 수거 폐기하는 소동을 왜 했을까요?
남이 쓴 글을 따옴표도 없이
버젓이 대쟁투에 올렸을까요?(지금은 바꿨지만)
왜 우리는 이런 문제를 간과하고 넘어갈까요?
그분의 선지성이 훼손될까봐서 쉬쉬하는
것일까요?
왜 “화잇 라이”라는 책이 나왔을까요?
그런 책을 발간하면 재림교회와 등을 돌려야 하고
천국 갈까 못 갈까하는 고민
속에서 살아야하는데
왜 그런 엄청난 부담을 안고 책을 쓰는 사람이 나올까요?
문제는 화잇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도 실수가 있고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그 시대에만 적응되는 기별도 있을 수 있는데
오늘의 우리가 시대적
상항을 궤변으로 널어놓고 있습니다
그 시대 그 개인에게 적용되는 기별이 어떻게 오늘처럼 다양하고 다변화된 시대에
일률적으로 적용된다고
우기는가요?
화잇을 만능 Pen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도 인간이고 그래서 잔소리도 듣기 싫어했고
미운 넘 미워하기도 한
분이라는 것
베틀클릭의 잔소리 장이들을 보기도 싫어했다는 것 기억하십시오
그런 인간적인 분을 우리는 자주 신격화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재림교회입니까? 아니면 화잇교회입니까?
우리끼리는 화잇 선지자 하면서
그가 쓴 글을 다른 책에 인용할
때는
종교저술가라고 적습니다
그것도 재림교회의 유수한 서적에서 그럽니다
남에게는 종교 저술가요 우리끼리는
선지자인가요?
나도 그의 선지성을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중의 어떤 분처럼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글자마다 영감이 들었다고 믿지
않습니다
나처럼 믿으면 안 된다 하시겠지요만
나는 나처럼만 믿어도 된다고 여기고 믿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분이 자신은 선지자가
아니라 했는데 말끝마다 선지자 운운하는 분들 보면
어디가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선지자와 선지성은 같은 단어가 아님도 아셔야
합니다
요즘 예수가 결혼했다 라는 신문지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 파피루스가 진짜라면 시대의 소망도
다시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쓸 저자가 없는데 어쩌지요?
그래서 그 파피루스 조각이 가짜거나 시대를 벗어난 야담
정도로 여길 뿐입니다
많은 사본에 없는 것을 혼자만 기록한 사도 요한의 복음서가 으스스하기도 합니다
소아시아 반도의 작은 종교회의가
만든 66권에 대한 두려움도 옵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비정경이라면서 모든 글에 영감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시는
우리 중의 몇
분들에게서 나는 십자군의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 이러지 맙시다
로산 님, 잘 읽었습니다. 장로님의 문제의식에 다 공감하지는 않지만, 장로님께서 얼마나 치열하게 진리를 갈구하고 교회를 사랑하시는 줄 잘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