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하 목사님께 몇 가지
내가 전부터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 참고 있었습니다
이젠
초교파라시니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이 물음은 님을 어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변증의 기회를 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목회의 부름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하여
교단과 관련 목사님에게 매우 서운한 감정을 쏟아 내신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게시판에서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나 집사님들이
대부분 님의 전작을 알고 있다는 것인데
목사님은 억울하다고 항변하시니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첫째 님이 부름을 받지 못한 것이
1. 대학 생활 때 여자 문제로 음주하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2. 모 교회에서
학생전도사로 있을 때 일어난 사건으로라고 생각하십니까?
3. 대학 교수들이 반대의견을 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 아버님과 같이
가서 무릎꿇고 사과하셨다는데 그 일이 목사님과 해결되면 대학에서도
해결된다고 여겼기에 그러셨습니까?
두 번째
목사님이
일부 성공하셨을 때 교단 복귀를 원했는데
그 당시 J합회장이 전 재산 가져와야 한다고 해서
거부한 것이 맞습니까?
세
번째
내가 선교 100주년 행사의 하나로 님을 교단으로 복귀하고자 할 때
내 진심을 믿었었습니까?
아니면 님의 말처럼 “일개
시골교회 장로가 무슨 힘이 있어서”라고
생각했습니까?
네 번째
님은 내가 복귀하게 만들어 놓은 수순을 믿지
않았습니까?
내가 연합회장님의 전권을 맡아 이 일을 한다는 것을 님의 둘째 형님 목사님에게서
들은 적은 없습니까?
다섯
번째
내가 제안한 복귀에 대하여 교단이 재산을 요구한 적 있었습니까?
그리고 복귀하지 않겠다고 한 일에 대하여 교단이 어떤 조건을
내기에 그랬습니까?
여섯 번째
중국 연길 백산호텔에서 만났을 때
“불러만 주신다면 백의종군하겠다”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까?
박진하 목사님께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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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장로님 이제 재발 그만하세요
꼬리잡기 시합하십니까
죄송하지만 이런것이 이전투구입니다
지겹지도 않으세요
제발 안성분도 장로님도 이제 제발 그만하세요
서로에게 득이 없고 보는 이에게도 도무지 덕이 되지 않습니다
표현이 그렇지만 신경질이 날라고 합니다
존경하시는 분이라 더 안타까워서 그럽니다
안성분도 더 이상 댓글다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세요 머뭇거리지 마시고요
유명한 말도 모르나요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아버지같은 분에게 한번 고개숙이면 어디가 덧납니까
아이고 속에 천불이 나네
이럴때 뭘 마셔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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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댓글 잘 달고
글 마디마다 끊어지지 않게 글 쓰던 박진하님이
이 밑에 쓴 글 보세요
할 말 없답니다
인간의 한계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내가 다시 글을 쓸 겁니다
천불 날 때는 콜라가 최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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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서 천불이 날때는
속이 시원해지는 쇠주가 최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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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여기서 쇠주 이야기 할 수는 없지요
담배도 한 대 거하게 물고 깊이 빨면 좋다던데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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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님은
살아온 세월도 상당한 줄 아는데
이런 글을 써서 뭘 하겠다는 건지
싸우는 꼴이
전혀 어른 스럽지 못하군요
어른과 아이와 싸우면
어른이 욕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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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절대로 싸우는 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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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싸우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내가 제보다 훨씬 낫다'라는 자만심이 있습니다.
지는게 이기는 것인데 도무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싸우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제일 바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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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답변을 꼭 들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분의 명예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은 명예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건 싸움이 절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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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
자기함정에 빠질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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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는 중요한 문제죠.
결코 이전투구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글을 주욱 읽어보니
자꾸 박진하목사님이 피해자라는 생각에만 몰두하시는데
보는 이에 입장에 따라서는 그 분이 도리어 가해자일 수도 있는 거죠.
쉽게 말해 박진하목사님의 목회가
현행 안식교교단에게 피해를 준 건 없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안식교 간판도 못 걸고
뉴스타트 용어도 못 쓴다고
자신만 순결하다고 자신만 피해자라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박진하목사님이 정말 백지상태에서 목회를 출발하셨을까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박진하목사님이 안성에서 목회를 할 때
그 터전과 인원과 목회적 소양은
모두 안식교에서 나온 거 아닌가요?
누구누구는 분명 안식교를 나와
박진하목사님 밑으로 들어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스스로 초교파라고 하지만
교리연구나 교회지남, 과정책 쓰는 게 모두 안식교랑 똑같으니
거기서 일반교인들에게 생기는 혼선과 혼란은 누구의 몫일까요?
그런 입장에서 가깝게는 안성에 있는 안식교
멀게는 한국에 있는 안식교교단 전체에 일정 부분 피해가 있는 거 아닌가요?
결국 이건 안식교-초교파의 교리나 철학 구분의 문제이기에 앞서
박진하목사님의 독립목회의 여부가 하나의 쟁점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나요?
당연히 안식교단의 입장에서는 박진하목사님의 존재 자체가 부담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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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균님께는 드릴 말씀이 전혀 없고
님의 진실치 못한 글에는 한마디 합니다.
예, 정말 백지 상태에서 목회 출발했습니다.
가진 땅 한 평 없었고 가진 성도 한 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내가 교회 개척할 때 단 한사람도 안식일 교회에 다니는 사람 없었습니다.
내 목회 초기 터전, 인원 모두 안식일교회에서 나온 것 전혀 없습니다.
목회적 소양이오? ㅎㅎㅎ
그것이야 내가 가진 개인적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내 개인적 목회 소양까지 안식일 교회 자산이란 말인가요?
내가 죽도록 고생하여 개혁 시킨 여러 분들이
안성의 안식일교회로는 많이 갔어도
그 안식일 교인들 중 단 한사람도 우리 교회 오질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 교인들에게 접급하여 많이 빼 내 갔지만
나는 그런 짓 죽어도 못하는 성미입니다.
이전에 안식일 교회 교인이었으나
목사와 싸우거나 교회에 감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교회를 쉬고 있었던 분들은 서너명 합류 했으나
그 후에 모두 다 본 교회들로 다시 돌아 갔습니다.
나로 인해 안식일 교회가 입은 피해 사례가 무엇일까요?
단 한가지라도 한 번 말해 보시지요.
오히려 유익 본 것 엄청날텐데요?
안식일 교회와 목회자들과 그 성도들로 인해
내가 입은 사례는 필설로 묘사 불가능한 것이며
이곳에 다 말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을 참 많습니다....
어제 안성 안식일 교회 한 장로님과 모합회 출판부 차장님이
전화 한 통 없이 갑자기 내 사무실로 오셨더군요
그분들말고도 다른 문서 전도인들 여럿이 그렇게도 가끔 옵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그들이 내미는 책들 사 드립니다....
그 장로님께 내가 성경 공부 시켜 침례 주고 신앙을 개혁시킨
아무개 장로, 아무개 집사, 아무개 누구 등 등... 쭉 안부 물었고
그들 모두 교회 잘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궁금하면 안성 안식일 교회 아무 때나 가서
나로 인해 재림교인 되신 분들 손들어 보라고 해 보세요
지금은 여럿이 이사도 가고해서 줄어 들긴 했지만.....
안식일 교회 과정책 교회 지남 가져다 쓰는게 무슨 안식교에 피해가 있죠?
조계사의 스님이 달라고 해도 보내 줘야 하지 않나요?
복음이 담긴 책자들 그냥 얻어 가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돈 내고 사오는데....
무슨 혼선이 있고 무슨 혼란이 있다는 것인가요?
모합회 20년간 책 팔아 줘서 오히려 좋지 않나요?
만약 그것이 혼선이 있고 혼란이 있었다면
벌써 합회 차원에서 막았을 것입니다.
아마 내가 교회 초기부터 안식일 교단과 담을 쌓고
교회 지남과 과정책을 가져다 우리 교인들을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우리 교인들 중 많은 분들이 저 안성 안식일 교회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에게 전도 받아 재림성도가 되어 우리 교회를 다니는데
매달 나누어 주는 교회 지남을 보고 교과 과정책을 공부하다 보니
우리 교회는 한국 교단에 소속이 안 된 교회이고 저 교단은 드넓고
자녀들 삼육 교육은 시켜야 하겠고 등 등....
그들이 당연히 교단에 속하지 않는 독립교회보다는 저 교단에 속한
교회에 나가는 것이 자녀 교육 등을 봐서라도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지 않았겠습니까?
나는 내가 뻔히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개척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내 교인이 어디 있습니까?..... 같은 재림교회로 가는 것인데 말입니다......
님은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아는 것처럼
여론 몰이를 하지 말기 바랍니다.
님의 글 쓰는 내용으로 봐서는 님도 분명히 재림교회 성도일텐데...
혹은 목사?....
이런 거짓 글 올리고도 기도할 수 있고 예배 볼 수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내가 핏대를 세우며 나서는 것이 아니고
님이 지금 내개 핏대를 세우며
그리스도인 답지 못한 행위를 하고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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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미국에서 대선배 되신 어떤 목사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격려와 함께 이런 글들에 절대 상대하지 말라고 해 주셨는데....
그 말씀을 잊고 또 이렇게 한 글 드리게 되어 그 목사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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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로산의 질문에는 답변을 달아야 할 거 같은데.
그래야 박목사 당신이 가해잔지 피해잔지 와꾸가 그려질 거 아니오?
기다리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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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이 담넘어가듯 어물쩡 넘어가지말고 확실한 답을하던지 당신이 잘 하는 고소드립을 치던지 하란말이요.
대답은 안하고 뻘소리는!! 기름에 빠진 구렁이처럼 느글거려서 원!! 콜라나 한병 빨아야 되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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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님, 사랑이다님
해도해도 너무한다 생각이 들지 않나요?
왜 자꾸 아픈상처를 후벼파나요?
그래야 적성이 풀리시나요?
사랑은 입으로만 외치는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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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시합에서
상대가 부상을 당하면 부상 당한 곳을 집요하게 공격해 기필코 승리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상대가 부상을 당한 곳을 때리지 않는 선수가 있습니다.
승리가 권투시합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 진대
상대의 아픈 곳을 공격하는 것이 좋은 모습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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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절대로 아픈 상처가 아니니까
그분이 자주 언급하는 겁니다
자랑으로 영광으로 언급하는 겁니다
그리도 모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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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합회 20년간 책 팔아 줘서 오히려 좋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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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합회 그 책 팔아서 떼 부자됐겠습니다
부정적일 경우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책을 그 교회가 발행하려면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진다는 것도 기억 하셔야 합니다
판권관계도 복잡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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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산님
왜 아픈상처가 아니겠습니까?
아픈상처지만 그래도 그것을 딛고 일어나서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시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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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아픈 상처는 그럼 누가 꿰매줍니까?
재림교회 목사 교수는 나쁜 넘이고
당한 사람은 의인일 수 없습니다
내가 다시 올린 윗 글에 댓글 다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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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밀양이란 영화 보셨습니까? 스스로 용서 받아 버린자가 얼마나 주변사람에게 상처주는지?? 그건 상처를 딛고 일어선 것이 아니라 자기 합리화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의 작금 행동(적반하장)이 그쪽에(자기합리화로 스스로 용서받은자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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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잘못 독해하신 듯 하군요.
물론 저의 읽기 방식이지만 은밀하게 비추는 햇빛은 어느 곳에서도 비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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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한 부분은 전도연이 자신의 아이를 죽인자를 교도소에 면회간 장면인데여. 진짜 그영화 보시고 말씀 하시는 건가??
독해 방식이 참 특이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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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봤어요
조금 됐네요
여러 장면이 기억나지 않고
고통 속의 전도연만 기억나네요
내가 그 영화를 다운 받아 있었는데
관람했다고 지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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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님
전도연이 살인자를 면회간 것은 영화의 중반이고 전도연의 그 이후의 반응은 영화의 후반을 이룹니다.
하나님을 저주하고 목사를 유혹하고....
마지막 장면의 머리를 감는 장면이었는데 빛이 그 수쳇간을 비추면서 따스하게 퍼쳐나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살인자 스스로 용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전도연이 자신이 용서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나
모두 용서는 아니지요.
물론 용서일 수도 있지만 온 땅에 이미 하나임의 용서는 있었던 것이지요.
영화 피에타를 보셨는지요.
용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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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에서 용서가 그냥 이루어 졌나요?? 서로 상대의 상처를 진정으로 알게 되고 공감 했을때 용서가 이루어 지죠. 때론 진정한 용서는 죽음만큼 힘들기도 하답니다.
사이코패스는 용서 할수도 용서 받을 수도 없지요. 이해없는 용서는 빈 껍대기일 뿐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본인들에게도 무의미한 일이죠.
ps.피에타는 권해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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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생각 다 옳습니다
줄거리 다시 보십시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고향 밀양을 향해 신애(전도연 분)가 아들 준이를 데리고 떠납니다 그런데 시골 국도에서 차가 고장을 일으킵니다 우여곡절 끝에 카센타 사장 종찬(송강호분)이 와서 차를 몰고 가는 것으로 영화 밀양은 시작됩니다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는 애인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신애는 아마 많이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밀양에서 신애는 피아노 학원을 시작합니다 전문적인 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내려 왔다는 카센타 사장 종찬의 구라에 지역에서는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지역 유지 회장 집에 가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신애는 실력의 짧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곡을 소화하지 못하고 끝까지 연주하지 못함) 끝임 없이 신애 주변을 맴도는 종찬은 카센타 사장이지만 39살에 장가도 못간 전형적인 노총각입니다 신애의 등장으로 갑자기 바빠지고 분주해진 사람이지만 여전히 주변에서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봅니다 서서히 지역에서 안면도 넓히고 안정을 찾아가던 신애가 어느날 동네 아줌마들과 노래방에서 놀다가 늦게 들어갔는데 아들 준이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어서 유괴범의 전화, 아들을 살리고 싶으면 돈을 달라는........사실 신애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신애는 종찬과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땅 있으면 소개 해 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은행에 돈을 두는 것 보다는 땅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자기에게는 많은 돈이 있는것처럼 공공연히 떠들고 다닙니다 그런 신애의 모습은 누가 봐도 여유자금이 넉넉한, 돈 주체하기가 어려운 그런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신애에게는 고작 87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아마 신애는 누구에겐지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자기를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아들을 납치한 범인은 매몰차게 신애가 가진 돈을 받고도 돈을 더 요구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얘기하는 신애에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아들의 시체였습니다 남편의 배신의 아픔을 억지로 잊고자 찾아온 밀양에서 신애는 더 큰 인생의 아픔을 떠 안은 것입니다 말이 남편의 고향이지 사실은 이방인의 땅이고 낯설은 곳에서 만난 시련을 어떻게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때 다가온 사람이 바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집사였습니다 약국 집사는 신애씨같은 사람이 안정을 얻고 치유를 얻는 방법은 약국에서 파는 약으로는 안된다면서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싸매시는 주님을 만나야 함을 애써 권합니다
그러나 신애는 부인합니다 신의 세계, 영혼을 쉬게 하고 안식을 주는 영적인 세상을 그는 부인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견딜수 없는 가슴에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약국 주인이 소개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기도회에 나가서 오열합니다 가슴 밑에서 저밀어 오르는 한과 응어리를 쏟고 거짓말처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합니다 원인도 영문도 모른채 종찬도 덩달아 신애와 함께 교회를 출입합니다 일 하다가도 성경책을 챙겨서 교회로 나가고 신애가 참여하는 노방 찬양전도대에서 활약(?)하는 종찬을 보면서 친구들은 여자 때문에 교회 다닌다고 비웃고 재밌어 합니다 교회에 몰입한 신애는 어느 순간 아들을 죽인 웅변학원 원장을 면회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하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교회 주변에서는 신애의 그 넓은 마음은 예수님의 사랑을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신애의 믿음의 깊이가 깊어서라고 칭찬하고 평가합니다 마침내 교도소에 가서 면회를 신청한 신애가 아들을 죽인 원수를 대면합니다 떨리는 사지를 주체하느라 애를 먹던 신애가 어렵고 힘들게 입을 엽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당신을 용서하기 위해 왔다
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용서를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할, 할 수만 있으면 고개를 땅에 쳐 박고라도 감사를 표해야 할 범인은 너무나도 태평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이미 자기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마치 이제는 신애의 용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듯이.....사람을 죽인 자기를 찾아오셔서, 죄인 중의 죄인인 자기를 주님께서는 용서해 주셔서 요즘은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신애로서는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합니다 용서를 해야 할 자기를 팽개치고 신애의 분신이요 생명이었던 아들을 죽인 그 원수를 신애의 동의와 의사와 상관없이 용서해 버린 하나님이, 정작 가장 큰 상처를 준 신애에게는 일언반구 사죄와 용서를 구한적 없던 범인이 자기는 이미 죄 용서를 받았다는 언어도단적인 행태를 대하고 분노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피해자인 자기와 한마디 상의없이 악한 범인에게 어떻게 천국을 약속할 수 있는지......그때부터 신애는 신을 부인하고 신에 도전하는 행위를 시작합니다 약국 장로를 꼬드겨 유혹하는 장면, 연합 집회에 나타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노래를 틀어대는 모습, 자기를 위해 철야기도회로 모이는 집에 돌멩이를 던지는 행위, 하나같이 신에 대해 도전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계속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을 정확히 보라는 듯이....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동맥을 끊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정작 죽음이 도달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려달라고 거리로 나가는 신애의 모습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입니다 이청준씨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꾸민 이 이야기의 논점은 이 영화가 기독교적이냐 반기독교적이냐를 논하기 전에 인생살이에 찾아오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고뇌하고 그 짐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 영화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빌미로 자신의 잘못과 허물까지 교묘하게 정당화 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출처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동맥을 끊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정작 죽음이 도달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려달라고 거리로 나가는 신애의 모습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입니다 이청준씨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꾸민 이 이야기의 논점은 이 영화가 기독교적이냐 반기독교적이냐를 논하기 전에 인생살이에 찾아오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고뇌하고 그 짐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 영화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빌미로 자신의 잘못과 허물까지 교묘하게 정당화 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나칩니다.
한 사람에 대한 집착이 너무 지나칩니다.
그 집착이란 어떤 것인지 각자가 알 것입니다.
그냥 그 사람을 놔 두면 안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