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어디선가 들었다’는 것인지, 혹은 ‘어디선가 봤다’는 것인지 기묘한 말투로 제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설”의 약발도 거의 떨어져 갈 무렵.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를 깜짝 방문해 “백배 천배 응징”을 외치며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냈다. 여기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마저 “남북정상회담 대화 내용을 밝히라”며 정쟁에 가세했다.

이에 북한이 임진각에서 탈북자 단체의 전단살포에 무력 응징을 천명하면서 남북한 군대는 포격전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닫는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경기 북부 일원에 긴장이 고조되자 주민이 대피하고 임진각에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해역이 아닌 육지에서 조성된 남북의 군사적 긴장 중에 가장 강도가 높은 수준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략적으로 제기된 NLL 논란이 위험한 이유는 한반도의 실제적인 위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에 북한군은 단순히 말로 위협을 가한 것이 아니라 전방 포병 진지의 갱도가 열리고 사격준비태세로 돌입했다. 북한의 동향이 단순한 무력시위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교전의 조짐이었기 때문에 우리 군은 최고의 경계 및 전투준비태세로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전개된다면 북한은 손쉽게 우리 군의 대비 역량을 소진시키고, 군에 피로를 누적시킨다. 그런데 이런 소모적 군사적 긴장이 우리 안보에 있어 실제로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 선거를 앞 둔 보수안보세력의 정략의 산물이라는 점이 역설적이다. 즉 안보를 말하면 말할수록 안보가 어려워지는 것은 우리의 안보논리에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장사꾼들이 확산시킨 가짜 안보 논리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국민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이런 식의 ‘북풍 몰이’ 또는 ‘종북 논란’이 판을 칠 이유가 없다.

북방한계선은 남북 간의 불가침 해상경계선이다. 이 경계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동어로를 통해 평화적으로 수역을 관리하자는 것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기본 취지였다. 당시에 우리 내부에서조차 논란이 된 것은 해상경계선을 재조정하자는 문제가 아니라 공동어로구역을 정하느냐, 마느냐, 정한다면 남북 간에 어떤 원칙으로 정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지난 18일 서해 최북단 연평도 연평부대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부내 내 포병중대에서 K-9 자주포를 둘러보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연평도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연합뉴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자칭 보수안보세력은 이러한 논의 자체를 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며 “북한 어선이 NLL에서 조업하면 우리가 영해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렇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개방은 북한이 영토개념을 포기한 것인가? 제한적으로 상대방에게 영토를 개방함으로써 얻는 실익이 더 많고 평화가 정착된다면 이보다 더 큰 안보란 없다.

북한이 우리 구역에 한 발자국만 들어와도 경계선이 무너지고 국가가 망할 것처럼 입에 거품을 무는 그들은 연평도와 백령도로 달려가 “목숨을 걸고 경계선을 지키자”고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라. 지난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북방한계선을 경계선이라고 말한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북방한계선이 이렇게 논란이 되도록 방치한 주범은 1977년에 영해법을 제정하면서 서북해역을 영해에서 빼버린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서북해역을 지킬 의사도 능력도 없었던 박 전 대통령은 영해법을 선포하고 나서 서북 도서의 안전이 걱정됐는지 북한 특수부대의 섬 상륙에 대비하여 기뢰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 그가 한 조치의 전부였다. 최근 그 당시 설치한 기뢰 중 미수거 된 일부가 천안함 사건의 원인이 됐을지 모른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서북해역의 안전문제가 쟁점이 되면 우리는 그 문제의 뿌리를 찾기 위해 박 대통령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시절이 우리나라 서북해역의 안전문제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시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서북도서에 해병대를 배치하면서 유사시 ‘옥쇄작전’, 즉 후방의 지원은 없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런 작전개념은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

그들이 언제부터 북방한계선을 목숨으로 지켰다는 것인지도 어리둥절하지만, 정작 북방한계선을 방어한다는 개념이 최초로 성안되고 적용된 정권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1999년의 제1연평해전이 바로 그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자신감이 축적되자 서북해역을 군사적으로 방어한다는 최초의 인식과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서해 평화협력구상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안보세력은 이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편리한 기억상실증이다. 육지의 군사분계선(MDL)과 해상의 북방한계선(MDL)이 모두 뚫리고 사람이 죽고 주민이 대피하도록 상황을 악화시켜 놓고 그걸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유체이탈화법도 여전하다. 군에서 총 한방 쏜 적이 없는 국군통수권자가 “목숨 걸고”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저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