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10일 22일이 실수였던 이유는
날짜를 잘 못 잡았기 때문이 아니다.
날짜뿐 아니라
미래를 어떤 달력이나 도표에 담아낼 수 있다고 하는 청사진적 발상 그 자체가
실수였다.
그 미래의 우환을 피하여 극락세계에 가겠다고
안식일을 부적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미래를 청사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발상이 문제였다.
다니엘, 요한 계시록도 그럼 실수였냐고
누군가 아우성치겠지.
실수였다.
그 두 책의 주목적이
달력신앙 편람이라면.
다니엘서의 저자가
요한 계시록의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든,
이상한 달력, 청사진적 미래를
왜, 어떻게 역설했든,
우리는
그 두 책을
무당 미래를 점치며 날짜 잡아
이러쿵저러쿵 굿하는 책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재림이 되었든, 지성소가 되었든, 또 다른 무엇이 되었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온 힘을 다해 부르짖는 몸부림의 절규로 읽어야 한다.
그야말로
출구 성명서다.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던
당시 그들의 처절한 정치, 사회적 상황으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절규하며 읽어 보라.
수천 년이 흐르도록
이루어질 기미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청사진적 그림에
안식일 마저 요상하게 끼워 넣어 부적처럼 집착하지 말고
출구 성명서로,
미래의 청사진이 아닌 현재의 출애굽 성명서로
그렇게 한번 읽어 보라.
아무 계획 없이 일단,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는 현대판 출애굽기로
한번 읽어 보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빼고
(그건 어차피 그들이 빼앗으면 안 되는 남의 땅이었다!
그 우라질 것들이 지금도 그들의 땅을 빼앗고 있다!)
그냥
"이건 아니다!!!"로
한번 읽어 보라.
어쩌면 성경에서 가장 재미없는 그 두 책
정말 화끈한 열기로 그대의 영혼을 사로잡을는지 모른다.
어릴 적
<시대의 소망>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그토록 흐느꼈던 것은
미래가 그리워서가 아니었다.
이 누리를 싸잡아 막말하며 기어들어와
겁 없이 백씨 할머니 탈을 쓰고 된장 타령하는
장독귀신 할망구야
뭔 말인지 알아듣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