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것 아니다 다른 이들도 나처럼 잊어주거나 용서하지도 않았다-2-

by 로산 posted Oct 29, 2012 Likes 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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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 것 아니다 다른 이들도 나처럼 잊어주거나 용서하지도 않았다-2-


4000명을 먹이고 5000명을 먹이고
그것 만 있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그 많은 것을 유대국민들 보고 듣고 느꼈을 것이다
그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 당시 노랑 신문을 타고 유대 온 곳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그 신문에는 뻥 튀긴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밉다고 줄인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덕을 톡톡히 본 국민들이 빌라도 법정에서 왜 그리도 악을 행했을까?
그 전날이던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고 외치던 그 무리가
하나 밖에 없는 옷을 벗어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열광하던 그 무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고 외치던 그 무리가
그가 왕이 되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세계가 탄생한다고 떠들던 그 무리가
돌변해서 십자가에 못을 박자고 소리쳤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사랑이 변하면 증오가 된다더니 그 말 진리였다
문제는 그들 그렇게 얻어먹고 자유롭게 소리 질렀는데
그 주인을 배반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시대 태어나지 않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약간의 세월이 흘렀다
주님은 하늘로 가시고 남은 제자들이 선생의 일을 맡았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분이 구주다 라고 할 때
그들은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하루에 3000명씩 주님께로 돌아왔다
그것을 우리는 초대교회의 성령의 은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얼마를 지나고 교회가 조직되고 7집사를 선택했다
그 집사 중에 하나인 스데반이 바리새인들을 꾸짖자
그들은 그를 돌로 쳐 죽였다

스데반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늘이 열리는 것 봤다
“보아라, 내가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대했다
행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달려들”었다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단다 그분이
내가 지금 보고 있다 그분을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바로 그분이시다
얼마나 놀랐을까?
내가 보고 있다는데 무슨 말을 할까?
저 미친 넘 보긴 뭘 봐 우리가 죽였는데 했을 것이다
큰 소리로 그 입을 막으려 했는데 잘 안 됐다
그가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요즘 같은 마이크나 스피크도 없었고 육성으로 말했기에
다수가 한 사람을 제압하는 것은 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귀를 막았다
돌은 손에 든 사람이 어떻게 귀를 막을까?
한 손에 돌을 들었는데 한쪽 귀만 막는다고 안 들릴까?
그들 가운데는 떡을 얻어먹은 사람은 없었을까?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없었을까?
그렇게 미웠을까?
요즘 같으면 검찰이나 경찰에 고발 하면 될 것인데
저들은 사형(私刑)을 집행했는데
그 사형에서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 준 사람이 바로 나중에 바울이 된 사울이었다
그를 잡아서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사울은 태연히 그들의 작업하기 쉽게 벗은 옷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저런 넘은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해
저런 넘은 돌로 쳐도 아무런 죄가 안 돼
우리끼리 해 치우자
자 거치장스런 옷을 벗어라 내가 봐줄게
그런 주모자 앞에서 저들은 사형으로 같은 시민을 돌로 생매장 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직 유대인의 이름으로
오직 율법사의 이름으로
그런데 그 무리 가운데 3000명 5000명 우리가 어찌할꼬 하던 녀석들은 없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거룩한 법이
그렇게 완전하다는 법이
그렇게 인간을 처리하는 기준이 됐다
이젠 복음에 대한 도전이다
죽고 싶어?
그러면 예수 믿어
그게 기독교 역사의 시작이다
율법으로는 절대 변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점찍는 순간이다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변질한 교회가 피비린내를 풍길 수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중세기는 험했고 셀 수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리고 오늘도 계속한다
복음이 교리란 이름으로 피를 부른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 치고 있다
떡도 생선도 얻어먹었던 무리가 만나도 얻어먹었던 후손의 무리가
그리고 그들을 대신한다는 영적인 아브라함의 무리가
새로운 대안의 십자가를 만들고 있다
변한다고? 아니다 절대로 안 변한다
그것은 기독교 역사가 증명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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