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나비 님의 글을 읽고 어디 가서 훔쳐온 김수영 산문 한 조각--내가 내 신앙 공동체에 식상하는 이유-시가 없는 숫자의 신학

by 김원일 posted Oct 31, 2012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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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시가 골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회복이다.

오늘 날 우리들은 인간의 상실이라는 가장 큰 비극으로 통일되어 있고,

이 비참의 통일을 영광의 통일로 이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이다.

그는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산다.

여기에 시의 새로움이 있고, 또 그 새로움이 문제되어야 한다.

시의 언어의 서술이나 시의 언어의 작용은

이 새로움이라는 면에서 같은 감동의 차원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현실이 담겨 있느냐 아니냐의 기준도,

진정한 난해시냐 가짜 난해시냐의 기준도

이 새로움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



김수영의 윗 글, 구글 도떼기 시장에서 훔쳐왔다.



시를 잃은 인간

시를 잃은 생활

시를 잃은 신앙

시를 잃은 신학

시를 잃은 신자


우리의 신학은 숫자의 신학이다: 7, 2300, 1844, 144000


시가 마르다.

시가 고프다.



우리의 신학은 숫자의 신학이다: 7, 2300, 1844, 144000


이보다 더 처참한 몰골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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