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시가 골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회복이다.
오늘 날 우리들은 인간의 상실이라는 가장 큰 비극으로 통일되어 있고,
이 비참의 통일을 영광의 통일로 이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이다.
그는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산다.
여기에 시의 새로움이 있고, 또 그 새로움이 문제되어야 한다.
시의 언어의 서술이나 시의 언어의 작용은
이 새로움이라는 면에서 같은 감동의 차원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현실이 담겨 있느냐 아니냐의 기준도,
진정한 난해시냐 가짜 난해시냐의 기준도
이 새로움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
김수영의 윗 글, 구글 도떼기 시장에서 훔쳐왔다.
시를 잃은 인간
시를 잃은 생활
시를 잃은 신앙
시를 잃은 신학
시를 잃은 신자
우리의 신학은 숫자의 신학이다: 7, 2300, 1844, 144000
시가 마르다.
시가 고프다.
우리의 신학은 숫자의 신학이다: 7, 2300, 1844, 144000
이보다 더 처참한 몰골이 또 있을까.
그렇네요.....깊이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