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

by 김주영 posted Oct 31, 2012 Likes 0 Replie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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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신계훈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강의를 들은 적 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보고

죽지 않고 살아남자 풀려나 

나중에 뭍으로 와서 에베소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죽기 전에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되풀이 했다고.

그리고 에베소에서 쓴 것이 요한복음이라고.


이런 감동적이고 전통적인 이해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비평적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을 요한이 직접 썼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 교인들이 은혜스럽게 받아들이는

신게훈 목사님의 설명대로라면

참으로 새겨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묵시록이 끝이 아니라

복음이 끝이라는 말이다. 



신약은 

게시록의 피바다와 우주 전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신비한 가르침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재림이라는 사건이 아닌

내림이라는 경험이 궁극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 라는 뺏지 아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라는 새 언약의 뺏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이해에 의하면

성경은 요한의 계시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요한의 복음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3장의 해석에 목을 매지 마시고

요한복음 13장을 알고 실천하기에 목을 매시기 바라고


요한계시록 14장을 자랑스럽게 뻐기기 보다

요한복음 14장의 예수님의 오심을 사모하시기 바란다. 


-----


나에게 계시록은

총천연색 만화같은 책이다. 

그림이 많다는 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제발 이것 가지고 또 씹지 말아 주시길^^)


그러나 그 모든 그림 중에

가장 감명깊은 장면은


저 원수는

머리 일곱개 달리고 뿔이 열이 달리고

여의주를 움켜 쥐고  화염을 내 뿜는 거대한 용의 모습으로 나와서

천하를 호령하고 성도들을 갈구지만 


이쪽 편의 주인공은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약하디 약한 어린 양인데

결국 그 어린 양이

그 무시무시 징글징글 파워풀한 용을 꺾고 이길 것이며

그 편에 선 사람들은 이긴다고 하는


궁극의 통쾌함,  뼈저린 감동

절대적 권선징악과 해피 엔딩이다. 


그래서 나는 계시록의 모든 잔인한 장면들은

만화 보는 것처럼 넘어갈 수 있다.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

어린양이시기 때문이다. 


-----


계시록을 정감록 풀듯 풀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우라이야 스미스가 

자신의 세대에 끝날 이 세상에서 벌어지던

19세기 그의 사건들에 

계시록의 상징들을 대입했다. 


13장에 이르러 

그는 얼마나 신났을 것인가?

미국이 짱짱해지지 

미국에 카톨릭이 살아나기 시작하지

일요일 휴업령이 의회에 상정되지

강신술이 등장하지...



그 이전의 종교걔혁자들은

자신들의 세대에 대해 그렇게 했다. 


역사주의라는 말도 따라서 상대적이다. 


게시록이 어려운가

난해한가

만화같은가


좀더 분명하고 직접적인 말씀

요한이 전한 복음서가 있다. 


똑같은 사람이 썼다면

어떻게 이런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가?


무엇이 더 비중 있는 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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