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란 어린 시절의 우리시골에선
집집마다 돼지를 키웠다.
할아버지의생일 잔치를 위해 우리집도 돼지를
일년에 한마리씩 키웠다.
돼지를 우리에 가둬어두고
일주일에 한번씩 돼지우리를
청소하는 일을 내가 했다.
청소할때 돼지가 우리를 탈출해서 동네로 나가면 동네친구들과
돼지를 잡기위해서 힘들었던 추억이 있다.^^
돼지가 한번 집을 나가면
동네가 시끌벅절 하다.~~
동네 잔치에는 마을공터 큰정자나무밑 에서 어른들이 정으로 소를 잡았고.
집안잔치 에는 보통 돼지를 집에서 잡았다,
먼저 돼지의 네발을 묶고 칼로 멱을 딴다.
돼지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만 소용이 없다.
돼지 멱따는 소리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멱딴 부위에 함지박을 받치고 선지피를 받는다.
그피로 순대와 선지국을 만든다.
피가 빠지면서 돼지는 서서히 죽어간다.
돼지가 완전히 죽으면 뜨거운 물을 사용 하여 털을 벗기고 .
배을 갈라 돼지간을 꺼네서
어른들은 그간을 짤라 그냥 소금에 찍어 먹는다.
나도 먹었다.
비릿하고 물컹한 느낌만 기억난다.
가축 도살장이 생기기전
이렇게 매년마다 내가 키운 돼지의 도살을 어른들을 도우며서
아무럽지 않게 보아왔다.
부정한 짐승 돼지.
사람의 음식이 돼기 위해 냄새나고 더럽고.똥오즘으로 뒤덥인 좁은우리 에서 짧은 생애를 살다간 돼지.
모든것을 아낌없이 주고 가지만
돼지를 만지는것도 부정 하다고 성경은 말한다 .
그러나
내가 돼지를 키울때 보면 비교적 돼지는 깨끗한 짐승 인것 같다.
우리 안에 가두워 키울때 보면 자기 자는곳 .응가 하는곳을 확실히 구별 한다.
사람도 이렇게 좁은 우리안에 가두워두면 돼지보다 더 깨끗 할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우리교회 에서는 위생적으로 돼지가 깨끗 하지 않다고 한다.
그럴수 있다.
그러나.
어찌 돼지뿐 이랴.
왜
성경에서 돼지를 부정 하다고 했을까 .
맞다.
무당들이 긋할때 올린 제사상에 웃는 돼지 머리..
옛날에는 손쉽게 구할수있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을까.
그 제물이 집에서 키운
웃는 돼지들이 아니였을까....
이방신 들에게 제물로 올린 웃는 돼지머리.
하나님이 보시기에 쉼히 가증 하였스리라.
박희관 생각~ ~
돼지는 초식동물들 (소 양) 과는 달리 잡식이고 일반적으로 더럽게 여겨지는 짐승이었지요.
그래서 성경이 금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먹을게 있고 안먹을게 있지 이런 생각입니다.
그 고기 자체가 더럽고 병을 일으켜서 안된다는 생각은 19세기 켈록이 가르치던 얘기였습니다
(영화 Road to Wellville 에 보면 켈록이 돼지고기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잘 나옵니다. '세균 기생충이 우글거리고...')
그 당시의 논리를 가지고 무슨 무슨 감염성 질환 기생충 질환 어쩌고 하는 것은 오늘 이시대에는 안맞지요.
레위기의 부정은 제사상의 부정이었습니다. 말씀하신 고사상의 돼지머리...
그래서 만지기만 해도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레위기 11장의 율법의 일부만 따릅니다. 만지기만해도 부정하다는 조항은 따르지 않지요.
그래서 페페로니를 걷어 내고 피자를 먹기도 하고, 젓가락으로 새우를 집어 내고 나머지 샐러드를 먹기도 하고
새끼 돼지나 고양이를 해부실습 하고 나서 저녁에 교회에 가고 그러지요.
제사상의 부정에 관한 한
복음서의 예수님이 말씀하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희를 부정하게 못한다" 는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