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를 이겨내기- 2

by 잔나비 posted Nov 09, 2012 Likes 0 Replies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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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래의 빛이 현재를 어둡게 만든다는 모순.

 


첫 사랑의 추억과 같은, 달콤 씁스름한 '종말론' 신앙의 기억들로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제 가족 이야기가 모든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도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저희 가족을 sda로 인도하신 제 어머니께서는

어릴 적부터 영의 세계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녀시절부터 교회는 못 나가도 항상 기도는 하셨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서는 믿음을 하나 가지긴 가져야겠다고 고민하시다가,

때마침 sda의 예언 전도회에 참석해 침례를 받으시고 재림신앙을 하기로 결심을 하셨습니다.

 

 

 

당시 1980 년대에는, 수 년 내에 예수님이 오실 것이라고 장담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목사님들 뿐 만 아니라 장로님, 집사님들도 다들 못 박아 이야기 하시곤 했지요.

얘가 대학가기 전에, 2000년이 되기 전에”, 뭐 이런 식으로요.

30대 이상이면 대부분 그러한 분위기들,,.. 기억하실 겁니다.

뭔가 희망에 찬 것 같으면서도, 또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랄까?

과잉된 감정들과 과잉된 행동들이 난무했었던 강렬한 시대였죠.

 

 

 

열정이 많으신 저희 어머니께서는 동요하셨습니다.

같은 교인들 중 재산 좀 있으신 분들은 시골에 땅을 사서 들어갈 채비를,

몇몇 분들은 휴직을 하시고 친척들을 찾아다니면서 전도를 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재를 털어 전도회를 열고 전도지를 분급하셨지요.

가난했던 저희 어머니께서는 이에 질세라 버스 안에서나 길거리에서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십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일요일은 짐승의 표입니다.”

안식일 지켜 하나님의 인을 받으세요를 목이 터져라 외치셨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저희 어머니가 진심으로 하셨다는 것을 인정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힘이겠지요.

 

 

 

저의 아버지께서는 당시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매우 싫어하셔서 박해하셨기에,

어머니는 특별한 방법을 취할 수 없으셨지만, 늘 안절부절 하셨습니다.

심지어, 여차하면 네 아버지도 버리고 하늘나라에 가야할지 모른다는 식의...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얘기를 진지하게 해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당시 어머니의 현실을 지탱해준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게 살지만, 곧 영원한 본향에 가서 보상 받게 될 거다.”

 

 

 

그 당시 어머니의 고투, 어머니의 믿음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없는 형편에 그래도 삼육 교육시키신다고 아버지에게 욕 때론......

돈 벌어가면서, 신앙 생활하면서....

구원과 천국을 얻으시려고 얼마나 정신없으셨을까?....

그런 생각에...요즘도 가끔 어머니 눈을 깊이 들여다보면 울컥 합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그 예수님과 재림에 대한 첫 사랑을 가슴속 깊이 고이 간직하고 계십니다.

제게 그런 어머니를 정죄할 권리가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수년 전에 어떤 친구의 소개로 시한부 종말론으로 유명했던

다미 선교회에 소속이었던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놀라운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당시 그 확신과 그 열정이 그립고...”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인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먹고 살기 위해 그저 사는 삶과 비교가 안 된다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마치 깨어나기 싫은 꿈을 꾸고 있는 듯,

첫 사랑의 향기에 아직도 취해계신 듯.

그분은 그 당시 예수님을 기다리던 공동체의 흥분과 환희를

가슴 속에서, 그의 유전자(뇌세포?) 속에서는 전혀 지우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실패했고, 공동체는 와해되고, 사회는 냉정하게 손가락질 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저 구름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재림운동과 대실망이라고 부르는 1844년의 열정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들도 똑같이 재림에 대한 기대로 상기되어 있었고

현실 세계에서 그들의 발을 거의 떼다 시피 했었습니다.

그들, 바로 우리 선배들의 경험이 과연 다미 선교회의 경험과 크게 다를까요?

아닙니다. 저는 전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들의 재림에 대한 기대와 흥분은

다미 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과 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정말 확실한 예언해석을 가졌다고 자부했지만,,..

자부한 만큼 더 큰 실망을 경험했습니다.

처절한 실망과 좌절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달콤한 꿈은 여지없이 깨어나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으로 인한 일인데, 누구를 탓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출구)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당시 상황을 모면케해 줄 출구전략들이었습니다.

 

 

 

2000년이 넘어서면서 재림은 신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고

그렇게 열성이 좋았던 저희 어머니께서는 날라리(?) 신자가 되셨습니다.

교회를 가끔 씩 빼먹기도 하시고, 전도는 물론 거의 안하시고.

어쩔 땐 안식일에 멀리 여행도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누구랑요? 그 당시 같이 전도하러 다니시던 집사님들이랑요^^

이분들이 타락했다고 누가 정죄/저주할 수 있겠습니까?

그전에 2000전 전에는 반드시 재림한다고 호언장담하던 분들부터 뭐라 해야죠.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이 열성 신도들이.

당시 그렇게 재림을 가르치던 목사님들이...

결국은 자기 자녀들 먼저 취직 시키고, 시집 장가 잘 보내려고 혈안되는 모습과,

당시 시골 생활하러 들어갔던 분들의 가슴 아픈 실패 이야기들을 들으시고는,

드디어 그 달콤 씁쓰름했던 꿈에서 깨어 눈을 뜨신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의 재림교회 문제가 마치 성도들이 기도, 전도, 헌신 등

그런 것들 게을리 해서 생긴 것처럼 이야기하는 지도자 분들 보면 정말 어이가 없어집니다.

 

 

 

헌데, 저희 어머니께서 이렇게 인간적이고, 세속적(?)으로 변하자,

아이러니 하게도 그때서야 저희 아버지께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종종 예전에 너희 엄마 신앙할 때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아니?”

이렇게 놀리시곤 하시지요^^

지금은 아버지께서 성경을 더 많이 읽으십니다.

아버지에게는 재림 운동한다고 집안일보단 신앙에 우선을 두던 저의 어머니의 모습이

뭔가 과도하게 몰입된 어두움에 있었다라고 판단되었던 것이고,

지금처럼 현실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나는 것처럼 생각되셨나 봅니다.

 

 

 

사람이 한 번 극도의 쾌락의 맛을 보게 되면,

그 뒤로는 그 최고치에 기준이 맞춰지게 된다고 합니다.

너무 일찍 성(sex) 경험을 하게 되면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이유도 그렇고,

마약 중독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첫 사랑이 아무리 아름다웠다고 해도,

실패한 그 사랑만을 평생 그리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매우 치명적인 경험위에 세워진 교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경험은, 종종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양질의

희락과 희망, 확신과 기쁨을 줄 수도 있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그런 경험은 실패와 좌절로 끝이 났습니다.

아니, 전부 실패로 돌아간 운동들이었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합니다.

책임지기 힘든 과도한 의미 부여고 과도한 상징화였던 거죠.

 

 

 

미래에 좋은 세상이 올 것을 믿는 믿음. 나쁘지 않습니다.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기대가 주는 행복감 때문에

현실 세계의 책임과 사명을 너무나 쉽게 져버리지는 않았던가요?

또한 그 영광스러운 미래를 우리만 독점하려고만 하지 않았던가요?

우리는 심각하게 자문해봐야 할 것입니다.

 

 

 

재림교회 신학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저는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림운동과 1844년의 대실망.

그것은 시한부 종말 운동이었음이 분명했고,

결국은 실패한 운동이었음을 깨끗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을 자꾸 덮으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무리한 해석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전히 그러한 종말론적 추동으로 교회를 확장시키려고 한다면,

과거의 역사를 차이 없이(발전 없이) 그저 반복하게 될 뿐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 SDA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이 거대한 뿌리를 과감하게 잘라내야 새로운 싹이 뜰 틈이 생깁니다.

빛은 저기 저 넘어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나의 손을 잡은, 나와 마주보고 밥을 먹고 있는

바로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미래의 빛만을 좇다가

현재는 나와 그 사람 사이에 어두움이 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왔습니다.

 

 

 

저는 확실한 재림과 천국행의 소망을 가지면서도

아버지는 유황불 떨어지고, 나머지 가족들만 천국에 가면 어떡하나...

고민 때문에 머리 아팠던 그 당시의 과잉된 양가감정들 보다.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 과일 물려주며, 고기 구워먹으며 껄껄거리면서 웃을 수 있는

지금의 행복이 훨씬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여전히, 행복을 되찾아 주신 분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버린 것도 아니고, 성경을 폐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신앙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가고 있는 중이지요.

이것 보다 더 큰 의미를 추구해야 된다고 한다면, 이제는 먼저 의심해 보려고 합니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과잉 가치, 과잉 의미에의 몰입들이 아닌가..?

이런 것들이 큰 쾌락과 희망을 주는 것은 맞지만, 실수는 한번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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