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을 생각한다; 나는 성경보다는 이것을 더 믿는다.

by 강철호 posted Nov 11, 2012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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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라 하는 얘기는 최소한 내게는 설득력이 없다.  오직 성경이기 때문에 믿어야 하고 이에 바탕을 두어 모든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에 식상한다. 나의 가문에 족보가 있다. 이 족보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조상들의 관직도 적혀있고 근사한 활동상황도 적혀있다. 족보이기 때문에 믿어야 하는가? 만약 족보가 기록된 당시의 정부 기록이 나온다면 그리고 그 기록에 기술된 바가 족보와 다르다면 나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


성경의 기록과 상치되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고 치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나는 당연히 고고학적 증거를 우선적으로 택한다.


나는 이집트의 역사를 접하기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상상력이 날개를 단다. 인간이 세운 최초의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나아가서 그리스 문명이 이의 영향을 받았다. 찬란한 5천년 역사라고 자랑하는 한국의 역사는 이집트의 역사 앞에서는 역사라고 말하기도 창피하다.


이집트는 BCE 3,500 년 문명을 시작해서 (그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인 증거가 확실한 때가 BCE 3,000년 경까지이다.)  그 때 부터 피라밋을 만들고 히에로그리픽 상형문자를 만들었는데 이 피라밋과 문자는 3,000년 이상 전승되어 내려오며 인류에게 너무도 귀중한 역사유산을 남겨주고 있다. 이집트는 3,500 년 동안 최소한 32개 왕조가 흥망했다고 한다. 어떤 주장에는 이의 3배쯤 되는 왕조가 있었으리라 한다.


이집트 역사중에서도 나를 흥분하게 하는 시기는 18대 왕조이다. 18대 왕조에 아멘호텝 3세라는 왕이 있었다. 당시의 힘있는 신 아문을 섬기는 왕이었다. 그의 부인중 한 명의 이름은 티예 혹은 티라고 하는 외국 여자이다. 그 이방여자는 셈족이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유야라고 한다. 적지 않은 히에로그리픽 기록,  두상, 태블리 편지들이 이를 증거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넣어서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본다면 유야는 요셉의 이집트식 이름이다. 요셉의 첫음 요와 야웨가 합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멘호텝 3세는 BCE 1,370년 경 이집트가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때의 왕이었다.  이렇게 상상해 보면 무리일까? 아멘호텝 3세 혹은 그의 아버지는 요셉 덕분에 이집트와 중근동에서 엄청난 부를 쌓고 요셉은 이집트의 중요 인물이 된다.  이집트의 권력자가 된 요셉은 딸을 아멘호텝 3세에게 시집보내고 파라오의 장인이 된다.  만약 이 상상이 맞는다면 창세기 45장 6절이 쉽게 설명된다.

  1.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2.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요셉은 겁에 질려있는 형들에게 자신이 파라오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만약 파라오의 장인이 아니었다면 어찌 감히 이런 무엄한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나 장인이 아니고 이 말을 했다면 파라오보다 힘이 더 있는 세력자라는 주장일 수 밖에 없고 반역자로 처형대상이다.


아멘호텝 3세의 왕위를 잇는 사람이 아멘호텝 4세 였고 그 사람은 바로 티예의 아들이다. 아멘호텝 4세는 왕이 되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를 했다. 그 때까지 자신들이 섬기던 강력한 신 아문을 믿는 믿음을 파괴하고 아텐이라는 다른 신을 섬기기 시작한다. 아문은 그의 조상들이 대대로 섬기던 신이었고 이집트를 통치하던 정치적 기반이었다. 그런 신앙체계를 하루 아침에 바꾸겠다는 그의 시도는 혁명중에서도 엄청난 혁명이다. 자신의 왕위계승을 반대하던 세력이 아문을 믿는 세력이었기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신을 도입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종교위에 세워진 파라오의 권위가 손상되고 따라서 자신이 파멸할 가능성이 있는 무모한 도-박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까지 바꾸었다. :"아문" 신을 믿는다는 이름 아문호텝4 세 에서  "아텐"을 믿는 다는 의미의 아켄아텐으로 바꾸었을 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아들 이름도 투탕카텐이라 지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이집트의 중심지였고 번영의 중심지였던 수도 테베를 버리고 "아텐" 신을 위해 새로이 만든 도시 아마르나로 수도를 옮긴다. 그리고  이전 까지 이집트를 지배하던 수 많은 신들, 그리고 그 중의 가장 강한 신인 "아문"까지를 부정하고 새로운 신 "아텐"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선언한다. 그 파장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케나텐이 그의 신 "아텐"을 찬양한 시에서 아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잘 나타나있다. 그 시는 우리가 잘 아는 시편의 시와 분위기가 다르지 않다. 언제 시간이 나면 번역해 드리겠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엄청난 일을 하도록 했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아케나텐은 그의 외 할아버지 요셉의 영향을 받아 유일신 사상을 가지지 않았을까?  요셉의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고조 할아버지 데라는 우르라는 문명도시를 과감히 버리고 가나안 지방으로 이주하려던 사람들이다. 무엇이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가족 전체가 삶의 근거를 옮기는 일은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성경의 기록만으로 보자면 질병, 기근, 전쟁등과 같은 피치못할 사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혹시 새로운 종교, 새로운 신을 찾아 고향을 과감히 등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도달해서 정착했고, 소돔과 고모라와의 전쟁중에 "멜기세덱"이라는 왕이요 대 제사장을 만난다. 살렘의 왕 즉, 평화의 왕이라는 뜻일까?  만약, 아브라함이 추구했던 신이 강권과 폭압의 신이 아니라 평화와 인류애를 가르치는 신이었다면, 이 사상이 요셉에게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을 것이고, 그의 외손자 아키나텐에게로 전해지지 않았을까?


아키나텐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 네퍼티티를 자신의 정부인으로 맞는다. 그 사이에서 딸이 여섯 태어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정작 아들은 없어서 아키나텐의 뒤는 네퍼티티가 낳은 자식이 아닌 다른 아들이 잇는다 (그의 아들 투탕카텐은 네퍼티티의 딸, 즉 이복 누이와 결혼을 하니 네퍼티티는 투탕카문의 의붓 어머니이자 장모가 된다). 아키나텐이 죽은 후 9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투탕카텐은 정치적인 힘이 있을 수 없고 결국은 구 시대의 정치세력에 굴복하고 만다. 그의 아버지가 꿈꾸었던 창조와, 자비와, 평등의 신인 아텐을 버리고 다시 "아문"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이름도 투탕카문으로 바꾼다.


소설 한 번 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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