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반죽--지금은 민초 반죽의 시간 (수정)

by 김원일 posted Nov 11, 2012 Likes 0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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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반죽의 시간입니다.

분분 흩날리는 밀가루에 물을 한 모금 두어 모금 서너 모금 부어가면서 개어

한 덩어리로 뭉쳐야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부르튼 발뒤꿈치만 같은 덩어리가 밀크로션을 바른 아이 얼굴처럼 매끈해질 때까지 이기고 치대야 하는 시간이지요.

여무지게 주물러야 하는........

......고루고루 평평하지도, 그렇다고 둥글지도 않은 게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잡아당겨 늘여놓은 것만 같아요.

아무리 잘 썰어도 고르지 못한,

굵기와 길이가 제각각인 국숫발들이 뽑아져나오겠는걸요.

어떻게 반죽을 이 모양, 이 꼴로밖에 못 밀었을까,

반성과 함께 허탈감까지 밀려듭니다.


김숨의 소설 <국수>에서



이 누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있는가.

없다.
이는 물론 내 생각일 뿐이기는 하지만.

존재 이유는 있다.
필명이 보호하는 익명성.
비교적 자유로운 대화.

뭐, 또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으로 넉넉하다.

그리고는 반죽이다.


저 소설가의 말처럼,


분분 흩날리는 삶의 먼지에
(삶과 신앙의 먼지에라고 썼다가 지웠다.
삶이 곧 신앙이고 신앙이 곧 삶이라는 전제가 통할 것 같아서.)

분분 흩날리는 삶의 먼지에

포도주든, 소주든, 맥주든, 식혜든, 수정과든, 스포츠 음료수든, 소금물이든, 꿀물이든,

단물이든, 쓴 물이든, 신물이든, 짠물이든, 싱거운 물이든,

끓는 물이든, 얼음물이든, 미지근한 물이든,
수돗물이든, 병에 든 물이든,
갈증을 적시는 물이든, 구역질 나는 물이든,

똥물이든, 오줌물이든,

목욕물이든,  세숫물이든,

침례 물이든, 세례 물이든,
샘물이든, 우물물이든,

구정물이든, 약수터 물이든,
실개천 물이든, 강물이든, 바닷물이든,

빗물이든, 눈 녹은 물이든,

호수 물이든, 폭포물이든,

구름이든, 안개든,

슬픈 눈물이든, 기쁜 눈물이든,


한 모금 두어 모금 서너 모금 부어가면서 개어
한 덩어리로 뭉쳐야 하는 시간이다.


아니, 어쩌면 꼭 한 덩어리로 뭉쳐야 할 필요마저 없을지 모른다.

어쨌든 반죽의 시간이다.


부르튼 발뒤꿈치만 같은 덩어리가 밀크로션을 바른 아이 얼굴처럼 매끈해질 때까지,

아니, 그렇게 매끈해질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어쨌든 반죽의 시간이다.


이기고 치대야 하는 반죽의 시간이다.

여무지게 주물러야 하는.


고루고루 평평하지도,

그렇다고 둥글지도 않은 게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잡아당겨 늘여놓은 것만 같은,
아무리 잘 썰어도 고르지 못한,
굵기와 길이가 제각각인 국숫발들이 뽑아져나올 것 같은,

어떻게 반죽을 이 모양, 이 꼴로밖에 못 밀었을까,
반성과 함께 허탈감까지 밀려들지도 모를,


그러나 지금은

반죽의 시간이다.


기막힌 민초철학이,

감동을 주는 민초신앙이

생성될지도 모르는,


아니면

있던 철학, 있던 신학, 있던 신앙마저 소멸될지도 모르는,


그러나 지금은

반죽의 시간이다.


곰팡이 난 빵 던져버리고
이제는 반죽의 시간이다.


꼭 무엇을 만들어내겠다는 목적 없이

그저 반죽의 시간이다.


이것저것 넣고 빼는

이것저것 빼고 넣는


반죽의 시간이다.


영혼스런, soulful한 반죽이면

더없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반죽의 시간이다.



어떻게 반죽을 이 모양, 이 꼴로밖에 못 밀었을까,
반성과 함께 허탈감까지 밀려들지도 모를,


그러나 지금은

반죽의 시간이다.



분분 흩날리는 삶의 먼지에

이것저것 넣다 빼며

여무지게 주물르는


반.죽.의.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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