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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1 / 성령강림절 스물여섯 번째 주일

 

사랑으로 묶었다 3

아브라함 이야기 8

창세기 22:1-13


 

곽건용 목사

[지난번에도 그랬듯, "뗑깡"은 퍼오면서 붙인 말이고 설교자가 쓴 말은 아니다. 설교자인 곽건용 목사는 나의 이런 "뗑깡"을^^ 좋아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밝히는 게 옳을 것 같아서...^^]



우상숭배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도 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맞는 답이 뭔지는 모르지만 어떤 대답이 틀렸다는 것은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옳은 답이 무엇인지 모르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럭저럭 살아가는 걸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옳은 답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틀린 답이 무엇인지는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길을 피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거기에 전혀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문제 되지 않겠지만 신앙인에게 하나님이 누구인가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누군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알 수 없는 분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것은 뭔지 압니다. 이것을 ‘부정신학’(Apopathic Theology, negative theology)이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무엇 무엇은 아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신학이 부정신학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사는 게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사는 걸까요? 우리는 이것도 정확하게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사는 게 아닌지는 압니다. 그것들을 찾아내고 확인해서 하나씩 지워나가는 방법이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 사는 길을 찾는 방법이 아닐까요? 이것도 일종의 ‘부정신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르지 않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우상숭배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졌고 시대에 따라서도 달라졌습니다. 우상숭배를 그저 신상에게 절하는 것 정도로 간단하게 봐서는 안 됩니다.

 

우상숭배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변함에 따라 바뀌었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생각은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 다릅니다. 따라서 무엇이 우상숭배인지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같은 종교 안에서라도 지역과 문화의 다름에 따라서, 그리고 시대의 다름에 따라서 우상숭배에 대한 생각도 다릅니다. 한 문화권에서는 우상숭배로 여겨지는 행위가 다른 문화권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이 우상숭배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짐에 따라서 달라졌다고 말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우상숭배에 대한 생각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우상숭배에 대한 생각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지배한다는 얘기입니다.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부정신학을 떠올리면 이 얘기도 이해할만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하나님이 누군지 알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 아닌지를 알 수 있을 뿐이라면 우상숭배가 무엇인가를 이해함에 따라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우상숭배의 역사는 뒤집어서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왔는가에 대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크게 봐서 우상숭배를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른 방법으로 예배한다고 해도 야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아무리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예언자라 할지라도 야훼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믿으라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야훼 아닌 다른 신의 이름으로 예언해도 그는 거짓 예언자라고 했습니다(신명기 18:20).

 

둘째는 하나님을 그릇된 방법으로 섬기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십계명의 둘째 계명을 어기는 것은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예배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형상을 만들지도 않고 거기 절하지도 않으며 섬기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야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걸 어기면 우상숭배라는 겁니다.

 

성경은 우상숭배를 ‘배신’(betrayal)이라는 말로 규정합니다. 십계명 중 둘째 계명은 “나 야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출애굽기 20:4-6)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쩨쩨하게 질투나 하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본문이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결혼한 부부의 관계’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이고 이스라엘은 아내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는 결혼한 아내가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것과 비교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배신당한 남편인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증오를 느끼고 질투를 느끼는 것은 신실한 부부관계를 기대하는 보통 남편에게 자연스러운 게 아닙니까. 아내가 부부관계를 깨뜨렸는데도 ‘쿨하게’ 인정하고 제 길 가는 게 옳습니까. 그러니까 ‘질투하는 하나님’은 일종의 은유(metaphor)라는 얘기입니다.

 

 

우상의 공장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상숭배가 달리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하나님 대신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여겼던 데서부터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릇된 생각을 맘속에 갖는 것을 우상숭배로 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사상을 잘 표현한 사람은 중세 유대교 철학자인 마이모니데스(Maimonides)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사람처럼 여기고 사람이 갖고 있는 외모나 성격을 하나님에게 투사하는 것(projection)을 우상숭배로 봤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추상화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의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에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영적인 하나님을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묘사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얘기입니다.

 

이후로 우상숭배는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나 다른 신의 신전에서 예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게 됐습니다. 형상에다 대고 절하는 것에 국한되지도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맘속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우상의 공장이 사람의 마음이 된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내면화’라고 부를만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사야 44장에는 우상을 제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조롱하는 글이 있습니다. 좀 길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모두 허망한 자들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우상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이런 우상을 신이라고 증언하는 자들은 눈이 먼 자들이요, 무지한 자들이니 마침내 수치만 당할 뿐이다. 아무런 유익도 없는 신상을 만들고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드는 자가 누구냐? 그런 무리는 모두 수치를 당할 것이다.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다. 그들을 모두 불러 모아 법정에 세워라. 그들은 두려워 떨며 수치만 당할 것이다. 철공은 그의 힘센 팔로 연장을 벼리고 숯불에 달구어 메로 쳐서 모양을 만든다. 이렇게 일을 하고 나면 별 수 없이 시장하여 힘이 빠진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갈증으로 지친다. 목공은 줄을 늘여 나무를 재고 석필로 줄을 긋고 대패질을 하고 걸음쇠로 줄을 긋는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따라 우상을 만들어 신전에 놓는다. 그는 용도에 따라서 백향목을 찍어 오기도 하고 삼나무와 상수리나무를 베어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저절로 튼튼하게 자란 것이지 그들이 키운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머금고 자라는 것이지 그들이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나무는 사람들에게 땔감에 지나지 않는다. 목공 자신도 그것으로 몸을 따스하게 하고 불을 피워 빵을 굽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서 그것에게 절하며 그것으로 우상을 만들어서 그 앞에 엎드린다! 우상을 만드는 것과 꼭 같은 나무 반 토막으로는 불을 피우고 그 불덩이 위에 고기를 구워 먹고 그것으로 배를 불리며 또 몸을 따스하게 하며 ', 불을 보니 따뜻하다' 하고 말한다. 불을 때고 남은 토막으로는 신상 곧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숭배하고 그것에게 기도하며 '나의 신이시여,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하고 빈다(9-17).

 

우상숭배가 내면화된 이후론 이런 비판이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이해된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궁극적이지 않은 것을 궁극적이라고 착각하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모든 종류의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정의됐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신약성서에 이미 드러나 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우상에 대한 개념은 이미 내면화되고 영성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탐욕’을 우상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에 탐욕에다 대고 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탐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탐욕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 숨겨진 우상이 있음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어? 이것이 우상이었네!’라고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기, 도둑질, 위선, 탐욕 등등 부정적인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데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것들 섬기는 일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작 우리가 조심해야 할 우상은 ‘좋은 가치’를 섬기는 일입니다. 좋은 가치가 단순히 좋은 가치이기를 넘어서서 우상이 되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상에 절대 빠져들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좋은 가치라고 여기는 것들도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 열망, 가족, 재물, 성공, 권력, 영광, 신앙의 확신 등등이 우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에겐 궁극적이지 않은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궁극적이지 않은 걸 궁극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힘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저는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직면했던 시험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궁극적인 것이 아닌데 궁극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직면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나이 1백 살에 얻은 아들, 이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달라고 해서 억지로 얻은 아들이 아닙니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먼저 약속했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주신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이 태어남으로써 야훼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평안한 나날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하나님은 그 아들을 자기에게 번제로 바치라고 명했습니다. 그는 고민하고 번민해야 했습니다. 우선 아들을 바치라는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임에 분명한지 확인해야 했을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들을 바치라는 목소리가 야훼 하나님의 목소리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그는 확인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아야 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을 번민에 빠뜨리고 괴롭게 한 점은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야훼가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버지로서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일도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는 깨달아야 했습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이런 참담한 일을 저질러야 했는지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아들이 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까지도 그는 답을 얻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대답은 막연한 희망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아들을 줄로 묶고 칼을 치켜들었을 때였을까요? 이 시험은 결국은 ‘우상을 택할 것이냐 하나님을 택할 것이냐?’의 시험이었음을 깨달은 순간이 바로 그때였을까요. 그가 마지막 순간에 깨달은 진실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겐 우상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시험은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택할 것인가 하는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를 더 사랑하니, 아니면 네 아들을 더 사랑하니?’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가 우상이 아닌 당신, 곧 야훼 하나님을 택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우상 찾아내기

 

아케다 얘기는 이만큼만 하겠습니다. 현대는 우상에 무감각한 시대입니다. 비기독교인들 얘기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도 우상에 매우 무감각합니다. 우상을 섬기면서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우상에 휘둘리고 사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안에 있는 우상 찾아내기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공감이 가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여러분 안에 모셔두고 있는 우상을 이 방법으로 찾아내기 바랍니다.

 

첫째로, “관심을 끄는 다른 일이 없을 때 자연스럽게 생각이 쏠리는 대상이 바로 마음속에 숨겨진 우상일 수 있다.”라는 윌리엄 템플 대주교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 없이 마음에 편안할 때 여러분의 마음속엔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능력을 키워나갈 생각, 더 돈을 더 벌 생각, 자녀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생각……. 그런 것들이 우상일 가능성, 또는 우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둘째로, 여러분이 갖고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살피라고 했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마태 6:21)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데 돈을 쓰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아 붓는 대상이 바로 우상일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20대 중후반 신학교 다닐 때는 정말 지식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때는 전도사 봉급만으로는 읽고 싶은 책을 다 살 수 없어서 정말 사고 싶은 책이 있을 때는 누님에게 전화해서 돈을 보내달라고 해서 책을 사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20년 전에 제가 미국에 오지 않았습니까. 제 책을 다 갖고 올 수 없어서 한 2천 권 쯤 되는 책들을 시립도서관에 기증하려고 문의했더니 도서관 측에선 헌책은 받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책이야 결국은 헌책이 되게 되어 있는데,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여간 받지 않겠다니 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고물상이 와서 책들의 무게를 달아서 갖고 갔습니다. ‘폐지’ 취급을 당한 것입니다. 그렇게 딴 데 돈 안 쓰고 사 모은 책들을 말입니다. 그럼 저는 그 책들을 다 읽었을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 중 한 3분의 1이나 읽었을까요. 그때는 책이 제게 우상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그래도 책을 샀으니 뭐 그런대로......’ 아닙니다. 좋은 가치가 얼마든지 우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는 앞에서 했습니다.

 

셋째로, 여러분이 드린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했을 때 얻지 못하고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여러분의 반응을 잘 살펴보면 여러분이 뭘 숭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간절히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절망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우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분이 얻기를 원했던 것은, 아브라함의 경우와 비교하면, ‘하나님의 약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아닐 겁니다. 그걸 얻지 못했다고 해서 격렬하게 분노하거나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우상입니다.

 

이것으로써 창세기 22장 아케다에 대한 설교는 마치겠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인 다음 주일에는 아브라함에 대한 마지막 설교를 감사절 메시지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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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 2012.11.16 18:04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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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매 2012.11.16 18:40



    " 그러나 그(아브라함)는 이삭이 죽임을 당하면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머뭇거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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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일 2012.11.16 18:51

    그래서 나는 곽목사의 설교가 할매의 해석보다 좋다. ^^


    "그가 마지막 순간에 깨달은 진실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겐 우상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시험은 하나님을 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을 택할 것인가 하는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를 더 사랑하니, 아니면 네 아들을 더 사랑하니?’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가 우상이 아닌 당신, 곧 야훼 하나님을 택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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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블 2012.11.16 19:10

    김원일 교수님! 다시한번 태클을 걸어 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더사랑하는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지를 시험한것으로 보는것은 성경을 너무 소극적으로 보는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성경을 볼때 큰들에서의 이해가 필요 합니다.

     

    우선 이해의 대상이 하나님입니다.

     

    제가 볼때는 아브라함을 통해 온 우주에 영원히 알리고자하는 하나님의 차원에서 볼수 있는 철학적 사고의 멧세지가 있다고 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신을 이해할수 없다는것과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을 인간을 위해 죽이고자 하는 계획을 알리기 위한 멧세지로 보는데 무슨 누구를 더사랑하고 하는 어린에들수준 같은 이야기로.......

     

    신의 이야기 그 너머를 보셔야 됩니다.

     

    누구든지 볼수 있는 그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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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5 아프냐, 너도 사람이었구나 2 로산 2010.12.29 1687
14984 근하신년 11 1.5세 2010.12.29 1568
14983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 이젠 알쏭달쏭하다 로산 2010.12.29 1488
14982 엄마 아부지는 와 안 오는 기고? 12 유재춘 2010.12.29 1560
14981 인어공주(부산 해운대에서) rain 2010.12.30 1479
14980 안식교 자녀들 세뇌교육 시키기.. 1 김 성 진 2010.12.30 1644
14979 초록빛의 살아가는 이야기 4 초록빛 2010.12.30 1474
14978 예수와의 첫 만남...예수는 그렇게 찾아온다... 14 정은 2010.12.30 1445
14977 지금까지가 아니고 지금부터입니다 8 잠 수 2010.12.30 1458
14976 아는 만큼 고민한다...진화론 4 고뇌자 2010.12.30 1507
14975 새해에 함께 들어보는 음악 - 베에토벤 제 9 번 교향곡 잠 수 2010.12.30 6902
14974 흑마늘의 놀라운 효과와 만드는 방법( 간단히 가정에서 만들수 있음) 3 새마음 2010.12.30 2462
14973 성경의 창조론과 현대 과학적 진화론과의 충돌 2 바이블 2010.12.30 1728
14972 2011년을 맞이하며... 1 1.5세 2010.12.30 1352
14971 진화론이 몽땅 틀렸다 해도 (조회수 35 이후 수정) 김원일 2010.12.30 1365
14970 정명훈의 할렐루야에 침을 뱉으며 (1.5세 님께 사과 드리며). (조회수 5 이후 수정) 11 김원일 2010.12.30 2199
14969 노아 홍수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바이블 2010.12.30 1300
14968 성경 창세기 일장과 이장의 내용이 과학적이냐. 바이블 2010.12.30 1823
14967 지구의 종말을 내 의견으로 살아가지 않기 1 로산 2010.12.30 1117
14966 용서에 관하여 6 노을 2010.12.3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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