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의 역사: "타락"이전, 창세기 2장에서 시작되었다. 몇 주 전 학생들에게 했던 말 (남자 성기 크기에 관한 논평)

by 김원일 posted Nov 22, 2012 Likes 0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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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추악한 범죄, 끔찍한 죄악이다.

어디서 시작했는가?
"타락"이전, 창세기 2장
이브의 모습을 처음 목격한 아담의 탄성에서 시작했다.

내 뼈 중의 뼈, 내 살 중의 살.


기막힌 표현이고, 온 영혼에 불 지피는 탄성이다.
아니, 타오르는 영혼의 불길이 내뿜는 언어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경 구절 중 하나다.

영혼이 육체에 녹아들고
육체가 영혼에 녹아드는
짜릿한 시구詩句 아닌가.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아담의 외침이 문제가 아니라
이브의 침묵이 문제다.

왜 이브는 침묵하는가.
아니,
우리는 이브가 침묵했는지
아니면 이브도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가.

모른다.


왜 모르는가.
텍스트가 침묵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텍스트가 이브를 함구하게 해서 모른다.

이브가 스스로 함구한 것 아니고?

스스로 함구했다면,
아니, 우리가 그렇게 가정한다면,
그 가정은 어디서 오는가?

여자는 저럴 때 스스로 함구한다는 가정에서 온다.
그 가정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정말 스스로 함구했을까?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오로지 텍스트가 이브의 입을 봉했다는 것이다.

이브가 스스로 함구했다면
텍스트는 말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설명조차 필요 없을 만큼
이브는, 모든 여자는
원래 함구하는 존재다.
특히 사랑, 성, 이런 분야에서.

바로 이런 확실한 가정이 있어서,
그래서 텍스트는 그녀의 함구를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브는 함구했다.
텍스트의 가정이다.

이 가정은
이브는 함구해야 했다,
이브는 함구해야 한다,
이렇게 이어진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텍스트는 이브에게
"닥쳐! (Shut up!)" 한 거다.

힘의 불균형은
아담과 이브가 첫 대면 했을 때 이미 이렇게 형성되었다.



다 아는 대로
강간은 성범죄라기보다
폭력범죄다.

강간범은
정확하게 말하면
폭력범이다.

성욕을 이용한 폭력범죄다.

이브에게 내린 창세기 2장의 함구령은
폭력범죄다.

성과 사랑, 성과 영혼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융합된 모습의 미학이,
참된 인간관계의 저러한 기똥찬 시적 표현이
결국 힘의 불균형에서 오는 폭력적 맥락 속으로 익사해버리고
강간이라는 성적 폭력 범죄의 시조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아니한가.


강간의 시초는 곧
인위적 힘의 불균형이기 때문이다.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불균형이기 때문이다.

아니, 인위적 힘의 불균형이 창출해내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남자 성기 size를 놓고 우리는 농담 주고받는다.
크기에 상관없이 사랑 표현에 충실할 수 있는 물건인데
언제부터인지 남자들은
그 물건의 크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저 아래 올라온 몇 개의 농담처럼
그 물건에, 그 물건 크기에 집착하는 남정네들의 초라한 모습을 비웃는 여자,

그 입에서 나오는 풍자적 일갈,
신선하고, 우리의 웃음 신경을 자극하고, 그래서 우리는 웃는다.

문제는 그런 농담이 여기 올라온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 농담에 우리가 웃는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여자 성기나 그 size에 대한 농담이 여기 올라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여자 성기나 그 size"라는 위의 표현에
"남자 성기나 그 크기"라는 표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거부감과 뒤따르는 눈살 찌푸림을
쓰는 누리꾼, 읽는 누리꾼 모두 체험한다.

왜일까.

이 또한 힘의 불균형, 그 이면의 한 현상이다.

창세기 2장에서 시작했다.


여자 성기 놓고 이러쿵저러쿵 농지거리하자는 말 아니다.


그저,
성차별이라는 거울 속 우리 모습을
한 번 들여다보자는 말이다.


창세기 2장,
그러니까 뱀이 흙을 먹는지 안 먹는지
그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벌써

차별, 주변화, 힘의 불균형, 이 지긋지긋한 태곳적 이야기가
This disgusting ancient story of discrimination, marginalization, and power imbalance

시작되었다는 말이고,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자는 얘기다.


혹시 오해할까 봐 하는 말인데
내가 무슨 대단한 여성 운동가여서 이런 말 하는 거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배우는 한 남자의 고백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여성잔혹사는 곧 삶 전반에 걸쳐 체험되는 강간의 역사이고,

강간의 역사는 곧 힘의 불균형 역사이며,

힘의 불균형 역사는 성서의 텍스를 포함한다.


나는

그 역사, 그 텍스트를 먹으며 살아왔고

이제 그 역사, 그 텍스트를 토해내면서 위 세척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면 정확하다.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기막힌 표현이고, 온 영혼에 불 지피는 탄성이다.
아니, 타오르는 영혼의 불길이 내뿜는 언어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경 구절 중 하나다.

영혼이 육체에 녹아들고
육체가 영혼에 녹아드는
짜릿한 시구詩句 아닌가.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강간.
추악한 범죄, 끔찍한 죄악이다.






(써놓고 보니, 채빈 님의 "라스베이가스..." e-book 선전 2호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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