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는 합리를 항상 이긴다.. 우린 그래서 종교인들이지 않는가???

by 김 성 진 posted Nov 24, 2012 Likes 0 Replies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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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로로맨 wrote:

저는 안식교인들에게만 정부가 특별대우 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차별이지요.

일요일 교인들이 일요일 시험 날짜를 바꿔달라고 했을때 국가에서는 기각 시켰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때 논리가 매우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나 안식일 교인들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입니다.

 

 

알겠습니다..

대답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안식교인들이 비토요일로 시험 날짜를 바꿔달라는것이

비윤리적이란 말은 아닌걸로 알아듣겠습니다..

 

결국엔 국가 사정상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일요교인들이 비일요일로 시험날짜를 바꿔달라고 했을때 국가가 기각 시켰기에

똑같은 룰을 안식교인들에게도 적용시켜야 한다는 합리성이 강한 논리를 피우시는것 같네요..

 

그러니까 국가 헌법이 내린 시험날짜에 대한 결정을

합리적인 이유로 동의하신다는 말씀이군요..

 

소수 종교인들을 위해 정부입장에선

돈도 많이 들고, 인력, 시간 등등도 많이 소비되고..

 

결국엔 그러한 낭비들은

사회전체의 이익을 봐서는 불합리적인 것이고..

 

, 님의 결론은

현재 한국사회로 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시험날짜를 변경시키거나 시험일을 추가하는것은

합리적이지가 않다는 겁니다..

 

 

 

======

 

 

 

인간의 권리라는게

어려운겁니다..

 

예를 들자면 병원 응급실로 찿아오는 환자는

돈이 없어도 의료치료를 받을수 있는 권리가 있느냐 라는 거지요..

 

자본주의를 외치는 미국에선

이게 딜레마가 아닐수 없습니다..

 

결국엔 권리가 있다는 판정을 내립니다..

 

그래서 미국에선

돈이 있던 없던 응급실로 오는 환자는

무조건 치료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응급환자가 아닌 경우엔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암이 걸린 돈없는 환자를

무조건 치료해줘야 하는 의무감이 병원에겐 없습니다..

 

암환자도 사실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응급환자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

 

 

어쨋든 다행입니다..

 

케로로맨님은 윤리성이 아닌 합리성이란 이유로

안식일교인들을 위해 비토요일에 시험을 보게 하면 안된다고 믿고 계시니 말이지요..

 

그리고 맞는 말입니다..

 

안식교인들이나 일요교인들이 종교적인 이유때문에 시험날짜를 변경시켜 달라는것은

합리적이지 않을수는 있어도 비윤리적이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합리성은

쉽게 바뀔수 있는 개념입니다..

 

물론 윤리성도 시대가 바뀌고 관습이 바뀌면서 변할수는 있지만

합리성이 바뀌는것 만큼은 쉽게 바꿔지지 않습니다..

 

사회의 합리성을 바꾸기 위해선 소수들이 여기저기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며

소수들이 바꾸고자 하는 문제에대해 관심없어 하는 대다수들을

문화나 정치적인 방면을 포함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교육을 시키면서

소수를 위한 법이 만들어지고 다수만을 위한 법이 없어질수 밖에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면 됩니다..

 

즉, 한 시대에는 비합리적이었지만

다른 시대에와서는 합리적일수 있다는 거지요..

 

물론 쉽지는 않지만

어렵지만도 않습니다..

 

그리고 비합리적인것을 합리적으로 가능케 할수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윤리, 도덕, 도리 와 같은 것들이지요..

 

민주주의의 근본에는 바로

소수의 권리를 보장시키는것이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가 되고파하는 한국에서

비토요일이나 비일요일에도 시험을 볼수있게 해야 한다고

안식교인이나 일요일교인들이 꾸준히 법의 문을 두드리며 국민들을 설득시키면서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나간다면

문제에 대한 현재 한국법이 바뀌어지는것은 그다지 어렵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예제도 폐지나 동성애 합법결혼과 같은 소수권리 문제들이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해결되었고 해결되어 가는것을 본다면

한국에서 토요일이나 일요일, 혹은 주중에  소수들을 위해 국가시험을 보게 해주는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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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제가 케로로맨님에게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쉽사리 바뀔수 있는 합리성에 올인을 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어딘가에 올인을 하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쉽게 바꿔질수 없는 윤리성에 올인을 하시라고 권장해 드리고 십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겁니다..

 

흑인들과 같은 소수민족들의 권리를 반대하던 사람들의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 케로로맨님이 시험날자 문제에 적용시키는 것처럼

미국 그당시 시대 (노예시대 혹은 60년대까지의 흑인차별시대) 로 봐서는 아주아주 합리적인 이유였습니다..

 

만약 흑인들과같은 소수민족들에게도 백인들이 누리는 똑같은 권리를 준다면

많은 금전적인 손실을 비롯한 사회적인 chaos 생길것이라는 합리적인 이유였지요..

 

하지만 결국엔 소수들의 설득력있는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노예해방과 흑인들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결실을 얻습니다..

 

, 소수민족권리에 대한 문제는

사회적인 chaos 피하기 위한 다수들에겐 합리적인 문제였지만

인간답게 살기 원하던 소수들에겐 윤리적인 문제였던 거지요..

 

그래서 결국엔 소수들의 윤리성이

다수들의 합리성을 이긴겁니다..

 

여지껏 결실을 얻었던 소수들의 인권권리보장 대부분은

소수들의 윤리성과 다수들의 합리성의 대립에서

결국엔 윤리가 합리를 누르면서 이루어지게 된겁니다..

 

이렇게 윤리성으로 이루어진 노예제도폐지나 소수민족권리가

합리성으로인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의 비율이,

합리성으로 지켜져왔던 노예제도나 소수민족학대가

윤리성으로인해 폐지되는 비율보다 아주아주 작을것이란것을 케로로맨님도 인정하시리라 믿습니다..

 

, 민주주의 사회에서 만큼은

윤리적인 노예제도의 폐지가 합리적인 노예제도의 부활보단

훨씬 쉬운것이고 오래갈수 밖에 없는 것이란 겁니다..

 

저는 그래서 합리보단 윤리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올인을 하기 위해 둘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저는 왠만하면 윤리를 고릅니다..

 

 

========

 

 

위에 노예제도에 대한 예를 들었지만

사실 시험요일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시험요일 문제는 케로로맨님에겐 비합리적인 문제뿐이지만

안식교인이나 일요교인들에겐 비윤리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만큼은

윤리는 합리를 항상 이길수 밖에 없습니다..

 

목적달성을 위해

윤리성을 가진 소수들이 꾸준히 노력을 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안식교인들이나 일요교인들 역시 꾸준히 법의 문을 두드리며

사회의 분위기 조성을 위한 노력을 계속 한다면

한국의 시험요일법도 언젠가는 바뀌게 될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역사가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리고 현실이 그렇게 가르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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