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이야기--치유 담론적 접근을 선호하고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by 김원일 posted Nov 25, 2012 Likes 0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크리틱] 밀크초콜릿과 다크초콜릿 / 오길영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구조와 주체의 관계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이 난제를 현대사상과 비평이론은 아직 말끔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구조주의의 등장 이후 주체의 삶을 조건짓는 시스템, 특히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사유하지 않는 주체담론이 공허하다는 것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예컨대 치유담론의 주장과는 달리 학벌주의는 개인의 노력으로 쉽게 해결되기 힘든 구조의 문제이다.


엠비 정권에서 엄청난 사회적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치유(healing) 담론이 호소력을 지니는 건 일면 당연하다. 시민들은 지금 아프다. 종교인이나 교수가 내놓는 치유 관련 저서가 베스트셀러의 상당수를 점유하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의 고통지수를 드러낸다. 그러나 다수의 치유담론서들은 시스템의 문제는 외면한 채 모든 걸 주체의 탓,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나이브한 조언에 그치고 있다. ‘내 탓이로소이다’라는 말은 종교담론으로서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고통과 상처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듣기는 좋으나 실질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는 ‘말씀’은 비유컨대 입에는 다나 몸에는 해로운 밀크초콜릿이다. 우리에게는 ‘구체적 상황의 구체적 분석’으로 나아가는, 입에는 쓰나 몸에는 이로운 다크초콜릿의 치유담론이 필요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말랑말랑한, 듣기 좋으나 공허한 위로가 아니라, 개인들이 놓여 있는 상황의 엄혹함, 그 안에서 고통받는 젊은이들의 상황을 직시하면서 ‘현실은 시궁창’(‘현시창’)이라고 일갈하는 태도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아닐까. “너무 많은 이들이 청춘을 위로하고 치유한다고 나서는 세상이다. 나는 스물네 건의 사연을 내보이며 이래도 세상이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넬 수 있겠냐고 반문하려 한다. 이것은 철수와 영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나 혼자 잘살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이 미래에 대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사회는 ‘나쁜 사회’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임지선, <현시창>)


좋은 문학에서 현실의 직시와 비판, 그리고 위로와 치유는 깊은 차원에서 연결된다.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무엇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지 그 원인을 깊이 천착할 때만이 제대로 된 치유의 길이 열린다는 진실을 본격문학은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명쾌하게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을 나눌 수는 없지만, 굳이 나눔의 기준을 말하라면 밀크초콜릿과 다크초콜릿의 비유를 다시 들겠다. 대중문학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달콤한 이야기만을 한다. 본격문학은 대중이 들어야 하는 씁쓸하지만 냉철한 이야기를 쓴다. 이런 시처럼.


“구름이 물방울들, 발 없는 영혼들의 몽유병이라는 거/ 청춘의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 청춘이 끝난 뒤에도 고통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 어떤 싸움이 끝난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는 거.”(진은영, <지난해의 비밀> 부분) 본격문학은 현실을 호도하지 않는다. 사랑도 달콤하지만은 않다. 사랑은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너와 나 사이/ 무사영화에 나오는 장검처럼/ 길고 빛나는/ 연애담은 없었다. 단 한번도/ 로맨스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살구나무숲에 무심코 떨어뜨린/ 에메랄드 반지처럼/ 어떤 이웃청년도 우리가 분실한 손가락을 찾아주지 않았다.”(진은영, <영화처럼> 부분)


이 시대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치유의 방도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진은영 시집 <훔쳐가는 노래>와 임지선의 <현시창>이 현실적인 위로가 되리라 믿는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한겨레신문


(참고로, 나는 치유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 치유담론을 선호하고 지향하는 나머지 사회 전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담론 없는 치유담론을 거부할뿐이다.  퍼온이)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