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도중에 여기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하나 퍼 왔습니다 -조금 깁니다 바쁘신 분은 안 읽으셔도 됩니다

by 로산 posted Dec 03, 2012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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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도중에 여기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하나 퍼 왔습니다


1. 교황 요한 23세(1958-1963)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비오 9세(1846-1878) 이후 교황들은 100년 동안 과거의 권위를 지키려는 '방어정책'으로 일관하였고,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대량교회이탈로 드러나게 되었다.

비오 9세(1846-1878)-레오 13세(1878-1903)-비오 10세(1903-1914)-베네딕도 15세(1914-1922)-비오 11세(1922-1939)-비오 12세(1939-1958)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직시한 사람들이 개혁적인 신학자들이었다.

독일의 예수회신부였던 칼 라너(1904-1984)와 프랑스의 도미니코회신부였던 이브 콩가르(1904-1998)가 대표적 신학자였다. 

이들은 교회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으로 교회의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지만 당시 교황들은 오히려 이들을 의심의 눈으로 보고 더러는 경고장으로 응수하였다.

마침내 이들의 의견을 수용한 분이 교황 요한 23세(1958-1963)였고 요한 23세가 개최한 교회회의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였다. 

요한 23세는 이들을 모두 공의회 신학자로 불렀다. 바로 이들이 공의회를 이끌었던 주역들이었다.

사실 2000년 가톨릭교회 역사 안에서 신학자들이 출현했던 시기는 그리 많지 않다. 대체로 세 번, 첫 번째는 초기 교회의 교리들이 정리되던 시기의 

수많은 교부들로, 대체로 400년 전후의 시기다. 이 시기의 대표자는 두말할 것 없이 아오스딩(354-430)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뒤 800년 후인 1200년 전후 중세 신학의 전성기에 출현했던 학자군의 시기. 이시기의 대표자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이다. 

그 뒤 또 약 800년 후경인 1900년 중반 수많은 거장들이 다시 출현한다. 칼 아담을 필두로 로마노 과르디니, 앙뤼 드뤼박, 이브 콩가르로부터 

지금 교황이신 요셉 라칭거에 이르기까지, 이시기의 대표자는 아무래도 칼 라너(1904-1984)라 할 수 있겠다.


1958년 11월 4일, 요한 23세가 교황으로 착좌했다.

그 이전의 교황들이 풍기는 이미지는 폐쇄적이고 비밀스럽고 보수적인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군주이미지'였다.

하지만 요한 23세는 서민적이고 개방적이었다. 전임교황들이 주로 귀족출신이었던데 비해 가난한 농부집안출신의 요한23세는 천성이 서민적이고 소탈했다.

1959년, 요한 23세는 교황에 착좌한지 3달 만에 전격적으로 세계공의회의 소집을 공포했다. 전 세계 교회 안팍의 놀라움은 컸다. 

가톨릭 2000년 역사 안에 그때까지 전부 20번의 세계공의회가 개최되었다. 공의회가 개최되기 위해서는 이단의 출현이나 중대한 사안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의회의 필요성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교회가 계속 가라앉고 있어도 교회의 고위성직자들도 느끼지를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개혁적인 신학자들의 냉철한 분석과 전망을 토대로 교황 요한 23세는 이대로 있다가는 교회가 망한다는 절박한 상황을 정확하게 읽었다. 

사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적절한 처방을 내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할 때 요한 23세는 혜안을 지닌 

이 시대의 예언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 요한 23세에 현대교회의 가장 큰 공로와 감사가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혀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모토가 '현대세계에로의 적응(Aggiornamento)'이었다.


2.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공의회가 한번 소집되면 엄청나다. 4000여명의 추기경과 주교들, 더 많은 신학자들, 수도회 대표들, 평신도 대표들이 대거 참석하고, 

다른 그리스도교파 대표들도 초대된다. 이 많은 인원이 몇 년 동안 회의를 계속한다고 생각해 보면 보통 일이 아니다.

공의회를 준비하기 위한 준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당시 교황청 검사성성(지금의 신앙교리성성)장관이었던 오타비아니추기경이 임명되었다.

당시 교황청과 이태리의 많은 고위성직자들이 보수적이었는데, 특히 오타비아니추기경과 시칠리 팔레르모 교구장 루피니추기경, 제노바의 시리추기경, 

공의회 사무국장 펠리치추기경, 검사성성의 파렌테대주교 등 대표적이다. 이분들은 공의회 이전에는 개혁적 신학자들의 저작들을 심사하여 단죄하였고, 

공의회기간에는 강경발언으로 교황청의 보수주의를 이끌었던 대표자들이었다.

오타비아니추기경은 전 세계 교구로부터 공의회에서 다루면 좋을 의제들을 제안 받는데, 전 세계에서 2000여개의 안건이 제안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공의회 개최 전까지 헌장의 초안을 작성하였다.

이렇게 준비를 마친 다음 1962년 10월 11일, "그리스도 당신만을, 우리는 당신만을 원하나이다."는 교황 요한 23세의 개막연설로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오타비아니추기경 주도로 작성된 공의회초안들은 개혁적인 진영에서 볼 때 너무 보수적이라고 처음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프랑스의 리에나르추기경, 독일의 프링스추기경, 네덜란드의 알프링크추기경, 로마의 베아추기경, 오스트리아의 쾨니히추기경, 

벨기에의 수에넨스추기경 등은 공의회초안이 변화된 세상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구태만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아예 이 초안들을 폐기하고 초안자체를 새로 작성해야한다고 제안하였다. 특히 미국의 리터추기경은 '이 초안은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노예적인 공포심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치워버려라'는 강한 표현을 써가며 초안을 내버리고 다시 만들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보수진영의 루피니 추기경은 초안을 칭찬하며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신학위원회에서 승인된 것인데 무슨 권한으로 토론도 해보지 않고

폐기하려하느냐고 반문하고, 새 초안을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공의회를 끝없이 끌고 갈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검사성성 차관 파렌테 대주교 역시 초안을 옹호하고 나섰다.

양측의 격렬한 논쟁 끝에 결국 교황 요한 23세가 중재에 나서게 되었다. 투표에 붙인 결과 초안자체가 폐기되고 

새로운 초안이 작성되어 본회의에 다시 상정되었다.


공의회문헌

공의회는 4번의 회기를 거치면서 치열한 격론과 타협의 오랜 과정을 통해 현대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공의회문헌에 담았다.

계시헌장, 전례헌장, 교회헌장, 사목헌장 등 4개의 헌장과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문으로 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문헌은 현대 가톨릭교회의 시금석이 되었다. 

이 가운데 으뜸은 교회헌장이다.


3.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주요정신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급격한 세상변화에 따른 거듭된 교회개혁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0년 교회역사를 돌아보면서 복음정신을 이 시대에 재조명하였다.

공의회의 주요한 정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현대세계에로의 적응(Aggiornamento) : 세상의 변화에 무관심하고 전통만을 고집함으로써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고

립되었던 폐쇄적 태도를 바꾸어, 세상변화에 잘 적응하여 현대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정신.

2) 대화와 자성 : 교회가 세상에 대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던 태도를 바꾸어, 세상을 구원의 협력자로 보고 대화하고 협력하려는 정신.

나아가 교회 스스로 자만하던 태도를 버리고 역사 안에서 교회의 과오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쇄신하려는 정신.

3) 연대성(공동체성) : 모든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시스템을 개선하여 구성원들이 서로 함께 힘을 합쳐 공동체를 운영하려는 정신.

4) 교회 밖에서의 구원가능성 : 가톨릭교회에서 세례 받은 사람만 구원되고 가톨릭교회에서 세례 받지 않은 모든 사람은 멸망된다는

플로렌스공의회(1439-1445)의 결정을 버리고, 가톨릭교회 밖에서의 구원가능성을 인정하는 정신.

5)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 : 갈라진 그리스도교 형제들인 정교회와 개신교(성공회 포함), 나아가 곱트교회와 야고보교회 등과의 반목을 버리고 

일치를 이루려는 정신.

6) 종교의 자유 : 가톨릭만이 유일한 종교라는 확신을 버리고 세상의 다양한 종교와 사상들도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정신.

7) 타종교와의 화해와 협력 : 세상의 다양한 종교가 인류의 행복을 증진하는데 유익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류구원을 위해 타종교와 서로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정신.

8) 전례거행에서의 공동체중심 : 전례를 거행함에 있어 집전자 1인 중심이던 것을 공동체의 모든 참여자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정신.

9) 평신도사도직 : 평신도가 단순히 사목의 대상이 아니라 사제와 수도자와 함께 인류구원을 위한 고유한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적극적 역할을 촉구하는 정신.

10) 사목의 개념 확대 : 사목이라는 말이 사제가 인간구원을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뜻하던 데서, 사제와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 모두가 

인간구원을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되어 함께 협력하려는 정신.

11) 권위주의 철폐 : 성직자들이 권위주의를 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봉사자로서의 자세를 갖추는 정신.

12) 성모마리아에 대한 올바른 이해 : 과도한 성모신심을 자제하고 올바른 성모신심을 가지는 정신.

4. 공의회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서 공의회는 교회를 

'인류구원을 위한 성사'로 종합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야 정치와 종교의 혼합으로 왜곡되었던 교회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시 낙관주의가 도래했다. 

교황과 공의회를 주도했던 추기경, 주교, 신학자들은 새로운 희망에 젖어 있었다. 교회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가톨릭교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는 많은 혼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일치 대신에 분열이 찾아오게 되었고, 개방이라는 구호아래 저마다 

자기 준거점에 따라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면서, '진보와 보수'니, '좌파와 우파'니 하는 각자의 관점으로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의회 이후의 노선은 뚜렷이 세 가지 경향을 띠고 있다.

첫째, 진보(개방)주의 :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과거의 왜곡을 딛고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기에는 벌써 부족하다. 

새로운 공의회를 하더라도 교회가 더 변화되어야 한다 : 예컨대, 사제독신제도의 폐지, 여성사제서품허용, 인공피임허용, 재혼한 이혼자에 대한 성사허용, 

주교 임기제 및 주교선임제도개선 등등.

둘째, 보수(전통)주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섣부른 개방을 함으로써 교회 전통을 붕괴시키고 오히려 교회를 세상풍조와 뒤섞이게 하였다.

과거교회의 전통을 더욱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길이다.

셋째, 중도노선 : 전통을 유지하면서 현대세계의 요구를 수용하고 적응해나가려는 노선.

오늘날 인간의 정신적 가치가 현저히 퇴조하고 물질세계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더구나 60년대 말부터 정신사조를 지배해온 

포스트 모더니즘은 강력하게 인간 삶의 형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개인과 자유가 오늘의 코드다.

이 와중에 가치체계의 혼란은 신앙 자체와 교회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교회 내의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통해 제시되는 가치체계와 세상이 내어놓는 

가치체계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을 겪고 있다. 교회는 오늘날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공의회 이후의 혼란을 독일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율리우스 되프너 추기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공의회 이후의 교회는 

하나의 거대한 건축 공사장과 같다. 교회는 건축 공사장, 그러나 설계도를 잃어버린 공사장, 그래서 각자가 자기 생각대로 계속 작업해 나가는 

공사장과 같다."

이러한 혼란된 상황은 가톨릭 내부에 잠재해 있던 여러 긍정적인 힘이 개방을 통해 일시에 분출되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지만, 

갑작스런 개방의 여파, 무분별한 개방, 여과되지 않은 개방, 절제되지 않은 개방, 저마다 자기 준거점에 따른 개방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교회의 올바른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말할 수 있게 된다.

5. 개혁과 혁신의 마인드

변화와 개혁은 이시대의 가장 강력한 아이콘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개인이나 기업과 같은 조직 할 것 없이 걱정이 많다. 변화의 트렌드를 재빨리 읽고 적극 대처하기 위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개혁과 혁신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현대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한 분기점이 되었다. 두터운 보수적 풍토의 가톨릭교회가 놀랍게도 요한 23세와 같은 

개혁적 수장을 만났고, 요한 23세는 개혁적 학자들을 아울러 과거교회를 돌아보고 현대교회를 분석하여 미래교회를 전망하였으니

공의회는 이 시대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큰 은총이었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는 라틴어 격언은 우리에게도 꼭 맞는 격언이다. 

오늘날 교회가 처한 현실도 결코 녹록치 않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교회가 처한 환경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낡고 굳은 경직성과 폐쇄적인 사고를 버려야 하겠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겠다. 

그렇기에 뛰어난 경영인들은 늘 개혁과 혁신의 마인드를 가진다. 그들은 늘 위기의식을 가지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면서 

적절한 대비책을 강구한다.

교회는 '영적인 동시에 세상 안에 있는 조직'이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교회의 리더들도 세상변화에 대한 안목과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는 역량을 

반드시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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