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대한 내 견해-캐로로맨님-5-
지난 안식일에 우리 교회는 성만찬 예식을 행했습니다
물론 나는 화체설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캐로로맨님과의 대화에서 화체설을 주장하신 것에 대한 내 견해를 올립니다
재림교회 자체가 화체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몸으로 변했다는 떡과 피로 변했다는 포도주의 원리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성공회도 화체설을 믿지 않았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주님의 현존은 성찬례 전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지
빵과 포도주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성만찬을 통하여 빵과 포도주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우리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 사건이지 “변화한다”라는 확정적인 진술로 풀이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의 깊은 신비요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빵과 포도주를 아무렇게나 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교리적인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성공회와 천주교는 이 문제를 가지고 큰 논란을 겪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1971년 성공회-로마가톨릭 국제 위원회는 성찬례 교리에 대한 합의 선언을 마련했습니다.
이 진술 속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실체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성찬례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핵심은 그리스도의 현존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실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최근 슈넨베르그와 같은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의
“의미변화”(transsignification)과 목적변화(transfinalisation)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다시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이해가 이후 물질적 이해로
오해받기 시작했고 바로 거기에 “타락한 화체설”이 등장했던 것이라는 겁니다.
즉 성체가 어떤 주술적인 힘을 가진 것처럼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로마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의 움직임이었던 트렌트 회의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어떤 해명도 없이 개신교의 성찬례 이해를 반대하는 입장으로서만
이 내용을 고수했던 것이지요
앞에서 언급한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의 합의문서도
이러한 오해를 풀어보면서, 핵심적인 문제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성찬례 전체를 통해서,
성찬례에 참여한 공동체의 코이노니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재림교회 가 가진 만찬의 의미를 적지요(교리28 중에서 발췌)
성만찬은 예수를 주와 구주로 믿는 믿음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그분의 몸과 피의 상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고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이러한 성만찬에 참여하신다.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기쁨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성만찬 예식의 준비에는 자기 성찰, 회개, 고백이 포함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정결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와 같은 겸손으로
기꺼이 서로 섬기려는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 가운데서 우리의 마음이 연합되도록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셨다.
성만찬 예식에는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이 참여할 수 있다.-기본 신조, 16.
성만찬의 의미.
성만찬은 옛 언약 시대의 유월절 축제를 대체했다. 유월절은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을 때 성취되었다. 돌아가시기 전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대체물,
즉 새 언약 아래있는 영적 이스라엘의 큰 축제를 제정하셨다.
그같이하여 성만찬의 상징물의 대부분의 뿌리는 유월절 의식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 죄로부터의 구출에 대한 기념
2. 그리스도와의 단체적 교제
3. 재림에 대한 고대
(계속)
지난 안식일에 우리 교회는 성만찬 예식을 행했습니다
물론 나는 화체설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캐로로맨님과의 대화에서 화체설을 주장하신 것에 대한 내 견해를 올립니다
재림교회 자체가 화체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몸으로 변했다는 떡과 피로 변했다는 포도주의 원리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성공회도 화체설을 믿지 않았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주님의 현존은 성찬례 전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지
빵과 포도주로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성만찬을 통하여 빵과 포도주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우리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 사건이지 “변화한다”라는 확정적인 진술로 풀이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의 깊은 신비요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빵과 포도주를 아무렇게나 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교리적인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성공회와 천주교는 이 문제를 가지고 큰 논란을 겪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1971년 성공회-로마가톨릭 국제 위원회는 성찬례 교리에 대한 합의 선언을 마련했습니다.
이 진술 속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실체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성찬례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핵심은 그리스도의 현존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실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최근 슈넨베르그와 같은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의
“의미변화”(transsignification)과 목적변화(transfinalisation)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다시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이해가 이후 물질적 이해로
오해받기 시작했고 바로 거기에 “타락한 화체설”이 등장했던 것이라는 겁니다.
즉 성체가 어떤 주술적인 힘을 가진 것처럼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로마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의 움직임이었던 트렌트 회의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어떤 해명도 없이 개신교의 성찬례 이해를 반대하는 입장으로서만
이 내용을 고수했던 것이지요
앞에서 언급한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 위원회의 합의문서도
이러한 오해를 풀어보면서, 핵심적인 문제는 그리스도의 현존이 성찬례 전체를 통해서,
성찬례에 참여한 공동체의 코이노니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재림교회 가 가진 만찬의 의미를 적지요(교리28 중에서 발췌)
성만찬은 예수를 주와 구주로 믿는 믿음을 나타내는 의식으로,
그분의 몸과 피의 상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만나시고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이러한 성만찬에 참여하신다.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기쁨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성만찬 예식의 준비에는 자기 성찰, 회개, 고백이 포함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정결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와 같은 겸손으로
기꺼이 서로 섬기려는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 가운데서 우리의 마음이 연합되도록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셨다.
성만찬 예식에는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이 참여할 수 있다.-기본 신조, 16.
성만찬의 의미.
성만찬은 옛 언약 시대의 유월절 축제를 대체했다. 유월절은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을 때 성취되었다. 돌아가시기 전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대체물,
즉 새 언약 아래있는 영적 이스라엘의 큰 축제를 제정하셨다.
그같이하여 성만찬의 상징물의 대부분의 뿌리는 유월절 의식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 죄로부터의 구출에 대한 기념
2. 그리스도와의 단체적 교제
3. 재림에 대한 고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