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가 읽고 회개했으면 하는 글

by 김원일 posted Dec 08, 2012 Likes 0 Replie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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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사회적 상상력의 실종 / 오길영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많지는 않지만 비평에도 고전이 있다. 시간의 퇴화작용을 견뎌내고 지금도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글. 예컨대 김우창의 <나와 우리>. ‘문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한 고찰’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글은 사회적 상상력이 사라져버린 한국문학계에 여전히 울림이 크다. 김우창에 따르면 한 사회에서 인간다움에 관한 물음이 사라질 때 문화와 교양은 위축되고, 사람들은 생존경쟁의 불안과 비명횡사의 공포에 떨고, 삶은 야비해진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이다.


개인을 추상화시키고 전체적인 시각을 강조하는 거대담론과는 달리 문학은 인간다움이 살아있는 사회의 모습을 우선 ‘나’의 입장에서 탐구한다. 문학에서 전체적 진실은 미리 주어지지 않으며, 개별 주체가 느끼는 진실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탐구는 ‘나’와 얽혀 있는 다른 존재들, 곧 당신과 우리로 열려 있는 탐구이다. 문학은 사회의 전체성을 구체적인 개인적 실존과의 함수관계에서 천착한다. ‘나’와 당신이 맺는 “전체성의 회복은 밖으로부터의 강제가 아니라 실존적 결속을 통한 안으로부터의 호소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김우창) ‘나’에서 우리로 이어지는 “실존적 결속”의 표현이 사회적 상상력이다.


한국문학은 내면성의 외딴방에 갇혀 있다. 내면성의 탐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한 명민한 시인의 말대로 ‘나’의 내면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의 내면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기 상처만 정색하고 들여다본다고 병이 낫지는 않아요. 남의 상처나 삶에 한눈팔고 정신을 빼앗기는 일이 필요해요. 무슨 대단한 대의나 윤리의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단은 자신을 위해서 말이에요. 그러면 자기로부터 충분히 멀리 갈 수 있어요.”(진은영) 삶과 문학이 깊어지려면, 그래서 고립된 내면성으로부터 충분히 멀리 가려면 “남의 상처나 삶에 한눈팔고 정신을 빼앗”겨야 한다. ‘나’의 내면은 언제나 다른 이의 존재와 얽혀 있으므로.


좋은 문학에서 내면성과 사회성은 대립되지 않는다. 내면성의 탐구는 깊은 사회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이 점이 좋은 문학에서 발견되는 사회적 연대의 철학적 기초이다. 문학은 개별적인 삶의 진실에서 출발하되, 개별적 진실은 궁극적으로 그것을 둘러싼 어떤 외부나 테두리와 맞물려 있다는 복합적 인식, ‘나’만의 내면을 넘어서려는 인식을 아우른다. 그렇게 ‘나’와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문학에서 종종 언급되는 자기성찰이나 진정성의 개념은 협애한 내면의 주관성이 아니라 ‘나’와 외부의 배치관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형상화하려는 관심을 가리킨다.


한 작가가 원로나 거장이 되어간다는 것은 ‘나’와 우리가 맺는 관계에 대한 관심이 예리해지고, 내면성과 외부의 배치관계를 조감하는 사회적 상상력이 깊고 넓어진다는 뜻이다. 원로는 세속을 초월한 도사, 내면의 외딴방에 갇힌 수도승이 아니다. 그는 세상을 초월하는 게 아니라 더욱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이치를 탐구한다. 원로에게 초월, 깨달음, 화해는 없다. “차분함과 성숙함이 기대되는 곳에서 우리는 털을 곤두서게 하고 까다롭고 가차없는,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도전을 발견한다.”(에드워드 사이드)


한국문학에는 이런 도전을 감행하는 원로가 누가 있을까? 씁쓸한 대답은 자신이 젊은 시절에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깊어진 사회적 상상력으로 풀기는커녕 허울뿐인 “차분함과 성숙함”으로 초월해버린 한 시인의 초라한 모습이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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