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A의 정치관은 무엇인가

by edchun posted Dec 15, 2012 Likes 0 Replie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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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4 04:00

전용근*조회 수:144

 

제목을 올려 놓고 보니 정치학이나 신학, 사회학 전문가도 아닌 주제에 

논평(?)한다는 것이 좀 쑥스럽다.

허나 내 평생에 정치에 관한 관심은 누구 못지 않게 보고, 듣고 있었으니

내가 나서는 것은 '귀동냥 수준'이라 하겠다.

지난주에 한 편을 올렸으나 

아무래도 보충하여야 할 주제일 것 같아서

우리 크리스천의 입장에서  

"어떠한 정치관을,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나"이다.
 
우리는 왜 투표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나 스스로 오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울러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우리의 국가관은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성 어거스틴의 말처럼
"너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너희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라."
이 엄청난 정의가 무엇을 말하여 주는 것일까?
"국가와 종교의 분리"의 올바른 정의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영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고 행동하여야 하는지...
대총회 web page의 what we believe 항목에서 다음과 같은 정의를 살펴본다.
"종교와 국가의 적절한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의 생애를 통하여
예증하여 주셨다.
SDA는 이러한 관점에서 양심의 자유를 복음전파의 사명으로 따르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믿고 실천하는 종교의 믿음뿐만 아니라,
믿기를 거절할 수 있는 자유, 신조를 바꿀 수 있는 자유,
신앙에 따라 종교기관을 설립하거나 운영할 수 있는 자유 등을 포함한다.
SDA는 조직된 국가의 합법적 역할을 인정하고
국가가 제정한 법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런 법의 집행이 성경의 절대적인 것과 상충하는 경우에는
사람이 제정한 법보다는 하나님을 순종한다."
 
"정치 참정권(participation in government)"
 
SDA는 인간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알고 있다.
애굽에서 총리로 일하였던 요셉,
바벨론에서 최고의 관직에 오른 다니엘
이들을 통하여 이 나라들이 풍요하고 안정된 혜택이 주어진 것을 안다.
아울러 SDA는 다른 종파와 일반사회 조직들과 연합하여
노예제도 퇴치와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힘써왔다.
교회의 세계적 성장으로 재림신자들이
도처에서 국가의 리더들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시민 리더들로 하여금 
우리의 신앙을 추구(advance)하도록 하거나
답습(inhabit)하도록 강요하면 안 된다.
이들은 시민의 의무를 도모토록 할 것이며,
선한 양심으로 투표에 참여(Participation)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유익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야 한다.
어떠한 정치논리를 목적으로 강단에 서거나
그것을 발간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높은 수준으로 현대판 다니엘과 같이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도우실 것이다."
대략 이것이 "우리 교회의 정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씀하신 것이 최종의 답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실제로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겠다.
^^ 크리스천으로서 민주시민의 의무와 책임은 무엇인가? ^^
하나님의 사랑을 신앙의 기본으로 하는 크리스천으로서
일반시민의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의 기준보다 더 높은 수준의
민주시민(citizenship)을 실천하는 태도와 행동은 당연하다.
민주 국가에서 지도자를 선출하거나,
중요한 국가 헌법을 개정코자 하는 발의가 선포되면,
당연히 모든 면을 잘 살펴 보아야 한다.
특히 이번 대선은 우리나라 국정의 총책임자를 선출하는 중요한 행사로써
후보들의 공약과 그들의 됨됨이를 꼼꼼히 챙겨 보아야 한다.
먼저 민주 국가의 최고의 리더로서,
민주 정치를 통하여 경제 활동을 통한 보다 나은 삶과 거주의 자유,
인성에 맞는 직업 교육 및 취업의 기회,
올바른 인성 계발과 적성에 맡는 교육 제도,
튼튼한 국방 안보의 안정,
활발한 문화 예술 활동,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종교 선택 및 선교 활동,
언론과 출판의 자유 등의 다양한 면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후보들의 면모들을 살필 때에는 먼저 
"국민을 올바로 섬길 수 있는 자세와,
민주적 행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질과 경험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 사회는 다양한 사고와 활동이 돌출하는 복합구조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대처 능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이란 최고의 중대사를 
염두에 두고 언급하는 것이다.
아울러 아무리 자유로운 민주 국가라 하더라도,
한 가지 등한시 되는 "평등의 자유와 법과 도덕의 정의"가 지켜지고 있는가?
아무리 자유 국가라 해도,
자유 의지로 결정되는 양심의 활동을 제어받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종교 신앙의 실천"은 한 종교인으로서 목숨보다 주요시 하는 
인생의 결정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로  때때로 우리 크리스천의 활동거지는 때때로 한계의 범주에 
갇히는 결과도 경험하게 된다.
법집행의 정당성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상충되는 상황이 오면
우리 태도는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당연히 신앙의 양심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온 예언의 징조를 살피면서 주지하여야 하는 
"일요일 휴업령" 등의 이슈는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종교 문제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었다.
1960년 JFK가 가톨릭 신자로서 처음으로 대선 후보가 되었을 때에는 
많은 사람이 그가 당선 되면 최초의 가톨릭 신자로서
바티칸의 지시를 따를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답하기를 "종교 신념은 사적인 문제이며,
공적 임무에는 대통령으로서 산아 제한, 이혼, 검열 등의 문제에
외부의 종교적 압력이나 지시에 구애받지 않고,
제 양심에 비추어 국익을 위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 선언하고 당선되었다.
이번 미 대선에서 몰몬신도인 롬니 후보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나왔지만,
큰 이슈가 되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어떤 면에서 우리 한국보다는 민주 국가의 대부로서
후보와 유권자인 미국민들의 민주시민의 역량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지금 한국에 한 후보가 통일교인이거나
sda 출신이었다면 난리 났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대통령 선택의 자질을,
아직도 "한국은 민주화의 진행중"으로 보기 때문에
군사 독재와 유신의 후예를 주저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성서에서 쉽게 상기된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요셉이 애굽에서 발휘한 행정 통치 능력은
재난과 기근에서 구하는 일로 바로와 온 국민에게 칭송을 받았으며,
다니엘의 바벨론에서의 큰 통치자로서의 역할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의 소원인 예루살렘 복귀와 재건에 
기여한 것을 본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구속사적 역사의 하나님의 인도를 깨닫게 되지만,
그들이 보여 준 통치 능력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어디 그들이 그들의 신앙과 종교를 강요하며 따르도록
백성들에게 요구한 적이 있는가?
안식일 준수나 구별된 음식물을 권하였는가?
도리어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면서도,
이방나라 백성에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복의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놀라운 지혜의 발상은 솔로몬의 영광으로도 입증되었다.
하버드 대 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시민의 정체성을 도덕적, 종교적 신념에서 분리하라는 요구는,
정의와 권리를 놓고 담론을 할 때
자유주의자가 공적 이성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선에 관한 특정 견해를 지지하지 말아야 하며,
시민은 정의와 권리를 토론할 때 자신의 신념을 드러낼 경우,
그리고 이들의 주장이 우세해질 경우,
이들은 다른 시민에게 특정한 도덕적,
종교적 교리에 기초한 법을 효과적으로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서로 다른 도덕적 종교적 교리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교리들의 이견의 도덕적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라고
"종교적 정체성을" 분리시킨다.
구약시대에 요셉과 다니엘이 보여 준 좋은 예를 2,500년 전에 보여 준 것이다.
긴 이야기 중에 우리가 쉽게 "우리 신앙과 세상 정치의 관계와 이해"를 
정의(?)하는 요점에 도움이 서로 되었으면 한다.
요사히 선거 시즌에는, 모이면 당연히 정치적인 이야기가 오간다.
"정치와 종교 얘기는 금물"이라는 말도 있지만, 
객관적인 이해와 상식선의 지식을 갖추고,
정치적인 담화를 나눌 수 있다면
민주기독신앙인으로서 일등 시민이 될 수 있겠다.
어떤 이들은 "정치적인 잔말 하지 말고, 기도나 하고 투표에 임하라" 하는데,
아는 것도 없이 무엇을 가지고, 기도에 임하라는지 답답하기도 하다.
후보들의 정책과 구호, 그리고 그들의 소속된 정당의 강령을 살피어
객관된 정보, 예로 tv 토론이나 유인물을 참고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일은,
당연한 민주 시민의 의무이며 권리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목회자가 강단에서 특정한 정책이나 후보를 홍보하는 일은 금기된 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종교와 국가의 실질적인 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말씀을 기본으로 강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목회자들이나 평신도 지도자들 가운데
몇이나 이런 대목을 연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릴 때에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
화잇은 우리 청년들에게도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자질을 양성하여
법조인이나 행정가로서 하나님을 드높이는 일을 장려토록 하라는 내용이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지금보다 큰 안목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장려가 절실히 필요하다.
교회가 온통 종말론의 긴장의 분위기로 기를 죽이지 말고,
민주 시민으로 지역과 국가를 위한 리더 양성의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연방하원 예비선거에 도전한 데이비드 킴의 용단은 칭찬할 만하다.
이번 한국 대선 캠페인에서,
우리 재림교회가 주목할 만한 어느 후보의 공약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양심과 신앙의 이유로 병역 의무를 못하는 자에게
"대체 군복무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군병역 의무의 대책으로, 이에 상당한 일을 마련하겠다는 안이다.
 
나는 1960년대에 한국의 재림청년들이 겪었던 '집총거부'로
부산 육군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으로 고생한 분들을 기억한다.
후에 목회자로 열심히 일하시다가 은퇴하신,
미주의 몇몇분들 L 목사님,  H 목사님, 그 외에 여러 분이 계시다.
이분들은 몽둥이로 온몸을 맞고, 얼음통속에 잠기는 역경을 겪으셨다.
지금 위정자들의 외침을, 50-60년 전의 정치적 상황과 비교한다면
격세지감만 느낄 따름이다.
여기에서 민주화의 결실을 면모할 수 있는 것도 감사히 여겨야 한다.
당시 어디서 누가 감히 '대체 군복무'란 말을 꺼낼 수가 있었겠는가? 
빨갱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민주 시민, 재림신도로서
국민의 다수가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공약으로
우리 종교 활동에 도움이 된다면
이 이상의 바람이 어디에 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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