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좌익 예수쟁이다. "한반도에 전쟁 나면 너 와서 싸울 거야?" 이걸 지금 제정신 가지고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약간 수정)

by 김원일 posted Dec 26, 2012 Likes 0 Replie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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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국제주의자다. 소위 말하는 internationalist이다.  내 나라, 내 민족보다 온 인류를 내 동료로 생각한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인위적 경계선이 적어도 정치적 차원에서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몸담은 이 좁은 미국이라는 사회, 내 시민권이나 여권에 찍혀 있는 도장 등은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데 요구되는 조건 또는 불편함일 뿐, 신의 피조물인 인간 그 본질에 어떤 근본적,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소는 아니다. 이건 "글로벌"이라는 개념이나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품어왔던 생각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몸담은 좁은 사회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특히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내 여권에 도장 찍는 이 나라가 이리저리 주무르는 세계적 현상과 그 현장에 관심 있고, 때에 따라서는 그에 대해 훈수를 둔다.


내가 소속된 좁은 사회 너머에 있는 삶의 공간, 특히 내가 살다가 떠난 조국의 일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말라는 사람들, 당신들의 개념대로 살기 바란다. 그리고 기억해주기 바란다. 당신들의 개념 공간은 나의 개념 공간이 아니다. 그러니 당신들의 논리대로라면, 내 개념 공간에서 비롯하는 이런저런 현상에 대해 당신들은 아무 말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은 내 개념 공간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렇지 아니한가. 당신들의 논리대로라면 말이다.


내가 북조선을 비판하는 말을 해도 당신들은 내가 북조선에 살지 않으니 입을 다물라고 할 것인가. 자신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일관성 있게 입을 열기 바란다.

2. 나는 좌익이다. 내 정치적 이념은 좌익이고, 그래서 나는 소위 red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좌익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라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그들은 우익이다. 한반도를 오래도록 지배해온 무지막지하고 야비한 족속들과는 좀 다른 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나는 종북이 아니다. 옆 동네에서도 여러 번 얘기했지만, 나는 남한의 지배자들을 혐오하듯 북조선의 지배자들을 혐오한다. 나는 과거의 소비에트 러시아와 동구 유럽 나라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나는 마오주의자도, 카스트로의 팬도 아니고, 피를 보지 못해 광분하는 유혈 혁명주의자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그 이데올로기에 목메지도 않는다. 좌익=종북, 좌익/진보=스탈린주의, 이런 유치원 수준의 방정식 안에서 헤매고 있으려면 적어도 나와는 대화하려 하지 말기 바란다. 대화하려면 어디 가서 과외수업 좀 받고 다시 오시라.

3.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면 나는 나가서 싸울 것인가, 몇 누리꾼이 물었다.
싸울 수도 있고 안 싸울 수도 있다. 누가 왜 전쟁을 일으키는가에 물론 달려 있다. 북조선이나 남한의 지배자들을 나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만일 지금 어느 쪽이든 전쟁을 일으킨다면, 지배층이 그 힘의 위치를 유지하려고 일으킨 전쟁일 가능성이 99%이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양쪽 지배층의 역학과 제국주의적 국제 관계의 변증법적 역학에 대한 한 마디 고찰 없이, "너 전쟁 나면 어쩔래?" 따지고 드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전쟁 나서 어느 쪽이든 총 들고 싸우고 싶으면 싸우시라. 안 말린다.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지만, 당신들이 먼저 설정한 가정이니 답한다. 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일으킨 전쟁인 줄은 알고 싸우기 바란다. 무엇보다, 전쟁이 나지 않도록 죽을 힘을 다해 정치적으로 전쟁 방지 활동을, 반전 운동을 하기 바란다,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투표할 때 정신 바짝 차리고 하기 바란다, 진정으로 평화를 염원한다면. 너 죽고 나 죽는 한반도의 초토화 시나리오에 진정으로 전율한다면 말이다. 당신들이 총 수십 개 들고 싸워도 한반도는 초토화한다. 너 죽고 나 죽는다.


"한반도에 전쟁 나면 너 와서 싸울 거야?"

이걸 지금 제정신 가지고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가.

4. 나는 좌익 예수쟁이다. 당신들은 아닌가. 좋다.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좌익이면서 동시에 예수쟁이일 수 있는지, 그에 대해 궁금하거나 유감 있으면, 당신들의 논리대로 말하라.



God bless your sou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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