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도 목사님의 종말론적 카이로스 .

by 박성술 posted Jan 07, 2013 Likes 0 Replies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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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기독종파  속에서

"무엇이  종말인가 ?"  라는   신학적  혼돈에 

방황 하면서도

아직  원시 기독교  의  그  윤리 종말관  을   고수하며   

 그  정체성 을  잃지  않으려는   

안식일 교회  는  

현제   심한  시대적 검증   앓이를  하고  있는듯   합니다.

 

외적으로는     교리성과  밀러 후예들로서    자유롭지  못하고

내적으로는     실행 결질로   인한   상실되어가는   증명  부담과

그것조차   버리려는  

낡은  빈수  신앙인들의   요구와  행정 배회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재림  이천년설 을  넘어  

기옇고  붕괴된   종말론의   다아위니즘  혼란을  혼돈 속에   겪어면서도

그  독자적  원리,  자세,  가치를   잃지않고

믿음하는    눈물겨운    안식일교회   몇몇   노사역자  님  들을    바라보는.

 

그러니까

이런   정확한  대책이  결여된   

이러한  방향의  동일한  종말론에

버려졌던   한   사람으로서  의  마음은  

참으로   착잡하며

 

그렇기 때문에  

현제   김상도  목사님의  

종말론적   카이로스    정보, 판단 , 전달방법에  관하여

조심스레  몇가지   질문을

드릴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존  해야될  이유인   신앙의  가치와

생존  해야될  방법 의   관계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교단 조직의  종말론   교육은

위에  두 질문을   두고도

그  대안적   다양성에  관하여

확고하게   대립했는데

 

그것은  

사회성,  특히 인문교육의  단절과  교파적   분리성에  있었어

얼마나   단호 했는지를

단  한번도   반성없이     이제는  이해관계 앞에 이런  고수 를 허물어저  가면서

그 런   운동을   하면서

그 경직된  실험 요구에  사용되었던   희생물들 에  관하여는

해명이나  또는  실험 신학의   조사 로도   기술  하지  않았다는것은

그것은

얼마나   부끄럽고  무책임한   방관적 실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뿐만아니라

종말론 으로  내 세운  그  기별들이

얼마나   편협되고  도피적인  것인지

우리가  그동안

이런  종말론의    환경,  기아, 미래 에

두려워  하며   도피하며  거절하는    자세를 

취하게   하는동안.

 

우리의   금 밖에서는

종말론적  현상을   솔직히  인식하고

그  원인을   자기 성찰로  부터  관찰 , 조사,  반성하고

그  대안까지   간절히  전달 하려는

이 땅의   양심있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이  종말론 의  기별  전달 방향이    

수정되지  않는한.

숀펜하우어   의  지적 처럼

" 자기 혹은(우리)  만   살아  남는다면  세계는   멸망해도   상관없다 "   란

이기적 의지    존재자로 

고립될수밖에   더  다른길이  우리 에게   있겠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현제   안식일 교회   종말론적   카이로스  는   무엇입니까 ?

재림  입니까 ? 

그렇다면   동류인간의  공동생존 을  위한

그  진정성 이   그  당위성 이

이  공동체의  존재자 로서 의 

이  환멸스런      주아주의  를   넘어서

과연  우리는  무엇를   할수있고  

그  진정성 과   당위성 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덧없는   이슬의   한 목숨  

시골  빈 간섭 에   걸어놓고  인생이란   같은죄몫

어울어 쓰길  거절한다면

이   카이스로  뒤에   닥아올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무슨답 을   할것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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