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동성애자를 옹호하는가?

by Windwalker posted Feb 04, 2013 Likes 0 Replie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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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성애자나 양성애자가 아닙니다.

동성애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조차도 없습니다.

 

동성애 자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죄인이 아니며 더더욱 범죄자가 아닙니다.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자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행복추구권도 있습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닙니다.

 

 

5년전 카스다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역사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학문이 아닙니다.

“어제를 돌이켜보아 오늘의 나를 성찰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차별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그저 한 때 일어났던 이야기로 흘려 넘길 것이 아니라

오늘 나는 또 다른 이름의 차별을 담당하고 있는 주역은 아닌지

객관적으로 고찰(考察)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인 차별 등은 일련의 선상에 있습니다.

이제 많이 개선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개선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896년 미 대법원은 흑인과 백인을 2대의 다른 객차에 분리해 태우는 것은

“분리되긴 하지만 똑같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합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원은 또한 1899년, “인종별로 다른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누군가의 권리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했습니다.

 

소위 짐 크로우법이라고 불리는 이 흑백분리법은

마침내 1960년대 민권운동에 의해 폐지되었습니다.

 

이제 흑백분리법은 “스킨헤드”나 “KKK”단을 제외하고

지지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킹 목사를 비롯한 선구자들이 아니었으면

아시아인들은 아직까지 2등 국민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1872년 미국에서 수전 앤서니(Susan Anthony)는 대통령선거에서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는데, 여성에겐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그 시기,

앤서니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밀어 넣자 ‘여자가 투표했다’는데

격분한 (남자) 시민이 ‘불법 선거’라며 고발장을 냈으며 앤서니는 결국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인구조사에서 여자들은 카운트도 되지도 않았던 시절에는 성적도구나 노동력에 불과했었던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고 생각되었던지

주어지지 않다가 참정권이 인정되었던 것은 미국이 1920년, 프랑스가 1946년이었는데,

이것 또한 남성들의 자비에서 거저 내려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별것도 아닌?) 참정권을 얻기 위해

그 동안 혹독한 반대의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결과입니다.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의 차별 적용에 반대하는 우리의 노력이

설사 일시 좌절을 겪을지라도 20년 또는 30년 후,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결국 달라진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분별하면 차별이 생기고 차별하면 집착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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