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벌 이 없다 는 전제아래
자유로운 성적방관 의 제 2차 집단들은
"기독 적 위선없는 검증으로 부터 면제 되었는가 ?" 란 질문을 두고
그들은 예수가 천만번 부활해도
이 기막힌 향락의 호모성적 행위는 "가치" 가 되어야하고
만일 이 호모적 성향가치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돌을던 바리세인 으로 몰아
너희 숨겨놓은 죄 까지 예수가 만민앞에
엄중히 밝혀 낼것이라는 뜻의 참으로 기발한 공갈까지 덧붗인다.
무섭고 처참한 성사의 위계가 아닐수없다.
한국 안식일교회 신앙 모럴에는
유달리 에로틱한 성적용어를 배제 하는데에는
어쩌면 엄중한 유교 적 "수기치인" 의 실천도덕 교육 영향 도 있겠지만
그런데도
유일하게 프리패스 된것은 "솔로몬 아가서" 인데
신앙인들이 묘한 은혜로 즐겨 낭송하는것은 억압된 성 언어의 구제적
다시말해 안식일교회 신학 출신들의
계색적 모럴 해석 덕분이 아닌가 싶다,
실은 솔로몬은 성적 카사노바에 속한다
그러매도 불구하고 이 the song solomon 의 절절한 구애적 애가 가
왜 알리고리 해석이나 예형. 또는 도덕 문학으로부터
한국 보수 입산파 에 까지 성서 해석으로 합일되게 하는가에는
그 카사노바 솔로몬식 의 간절과 진실이
에로틱한 성적 용어를 넘어
절실한 신의 사랑 으로 성화 되기위한
참 이 있기때문일게다
왼 손으로 내 머리를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네가 내 어미의 젖을먹는
오라비 같았었더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 여길자가 없을것이다.
동류 인간의 성을 형제 피붗이로 본것이다
사랑 임포컴플렉스 를 가리기위해
이렇게 동류. 그것도 아내를 엎어놓고도
업신여길 짓을 할수있다는 현 사실에 긍증의 손을드신
삼천포 어른신의 깊은 성 의 뜻은
나에게는 또 하나의 풀지못할 신앙신학 이 된다
돌을 던 바리세 인 이라고 ???
그렇다
나는 간혹 남의 여자를 놓고 그 육체를 모티브 삼아
흙으로 혹은붓으로 모방 재현하면서
망나니 유대인같은 위선으로 간음하며 잘도 놀아날때가 있다
이런 정서적 방황이 어찌 간음이 아니랴 ?
그렇지만
영겁의 벌이 안식일 교리가 아닐지라도
한 인간으로 이 위선이 허락되지 않는 검증 앞에 서면
나는 정직하고 솔직해 지고싶다
어찌 입이 자유롭다하여 악한것을 선으로 변명 하겠는가 ?
안 그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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