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신고식

by 구름잡기 posted Feb 12, 2013 Likes 0 Replies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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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래글을 올리신 분께서 미천한 내 필명 (구름잡기)을 호명해 주셔서

할 수 없이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읍니다.

제 이름 앞에 부르신 이름들의 주인들은 제가 평소에 이런저런 만남에서

얼굴을 알 뿐 아니라 그 분들의 글이나 사상을 좋아했고 저는 그 가르침을

좀 더 듣기 위해서 이곳에 찾아온 학생이요 아직 출입이 두주가 채 안되는

신입입니다.


기왕에 제 이름을 불러 주셨으니 두주간에 열심히 읽었던 민초들의 작품에

대해서 독후감을 하나 쓰는것으로 인사를 올리려고 합니다.


독후감 제목을,

태도 (attitude), 각도 (angle), 그리고 고도(level) 라고 붙이겠읍니다.


1. 태도(attitude)란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새로운 관점에 대하여 듣고자하고

배우고자하는 마음과 귀를 상대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오른 쪽이냐 왼 쪽이냐를

가르기 전에, 진리냐 비 진리냐를 가르기 전에, 흑과 백을 가르기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기초적 계단입니다. 이것이 잘되면 보수를 끌어안는 진보가 될 수 있고, 진보를

끌어안는 보수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 전체를 끌어안는

재림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민초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어감이 다소 거칠 수 있긴 하지만 이 민초들의 광장에서

직접 느끼는 체감태도(?)는 상당히 염려스런 분위기가 있기도 하였읍니다.

이 태도가 원만하거나 든든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각도나 고도에 결코

들어가 볼 수 없는 분단의 비극이 존재 할 것입니다.

다시 바꾸어 말한다면 민초들이 가꾸며 살아가는 이 동산의 토양이 좀 더

부드럽고 비옥하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에를들면 좌측으로 기울어있는 분들을

좌빨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돤 태도의 문제입니다.


2. 각도 (angle) 는 운동에서는 언제나 힘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라 강조합니다. 모든 논쟁의

대부분은 각도 (different view)의 문제입니다. 사진을 잘 찍는 분들은 이 각도를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하버드의 샌덜박사가 동성애의 각도를 자연법이라는 각도로 끌고가는

탁월함이 그 한 예입니다. 이 민초에서는 각도의 차이 때문에 대화가 어긋나는 모습이 많이

보였읍니다. 예를 들면 동성애를 성서적인 근거를 토대로 알고 싶다는 질문에 윤리적 관점이나

사회적 관점으로 끌고 간다든지 사회적 관점을 아야기 하는데 성서적 관점에서 무조건 죄라고

우긴 다든지 하는 각도의 몰이해가 다소 심각해 보였읍니다. 욥과 욥의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 (인간적 차원의 다른 각도) 이 여기서도 밤낮 쉼이 없이 기왓장으로 상처와 부스러기를 긁어내는  

소위 흠집내기로 치닫는 모습이 더러 보였읍니다. 이곳이 교단의 공식 홈피 (카스다)가 아니고 진보적

자유논쟁을 지향하는 (?) 소수의 동아리 성격의 web site (피난처)인데도 여기까지 와서 재림신앙의

정통과 전통으로 몸부림치는 글들을 올리는 것은 각도가 어긋난 듯이 여겨져서 서글퍼 지기도 했읍니다.

각도는 각자에게 선천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어서 선천성 동성애 만큼이나 고치기 힘든

부분이지만 좋은 태도(기초적 단계)의 도움울 받으면 어느정도 날카로은 각도가 부드러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3. 끝으로 고도 (level) 에 대한 생각입니다. 멀리 보는 사람 그리고 다른 차원의 높이에서  사물을 보는

자 들이 있읍니다. 세르반테스나 갈릴레오가 그런 부류의 사람 입니다. 음악으로 말하면 베토벤이나

모짤트 같은 신동 들입니다. 아마데어스 라는 영화에서는 모짤트의 출현으로 인생이 갑자기 불행해 진

또 다른 신동이 있었읍니다. 살리에르 라고 불리는 그당시 궁중음악의 수장이었읍니다. 자신은 모짤트의

수준에 못미치지만 적어도 평범한 자들이 결코 볼 수 없는 모짤트의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은 가지고 있는

자 였읍니다. 때문에 신이 자신에게 저주를 내렀다는 유명한 독백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각도의 단게 (자신의 인간적인 의에 근거한)에 머무르던 욥 (귀로만 듣던 단계) 에서 창조주의 능력과

구원하는 의 라는  level 로 옮겨간 욥은 "귀로 듣기만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보나이다" 라는

새로운 차원 (영적)의 고백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어쩌면 다른 차원에서 보고있을 접장님과 평소 존경하는 여러분들 앞에서 이리도 어슬프게 행주를 짜는

실례를 범하고 있다는 죄송한 마음이 없잖아 있지만 민초의 발전과 서로의 안식을 위하여 상기의 단계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으로 올렸읍니다.


누구에게나 태도의 발전이 있기를 바라고, 각도의 다름과 차원의 다름에서 오는 괴리를 극복하려 애쓰는

논쟁적 겸손함으로 여기저기 키만큼 자라있는 잡초룰 뽑아내고 오로지 민초들이 함께 눕는 잔디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고 합니다.

 구름잡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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