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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10 / 주현절 다섯째 주일

 

살인하고 도망가 양치기 되다

출애굽기 2:11-25

 

곽건용 목사

 

이집트 사람이 된 모세

 

2월 한 달 동안은 모세의 얘기를 가지고 설교하겠다고 했습니다. 지난주일 했던 첫 번째 설교를 간단히 요약한 다음 오늘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모세는 구약성서라고 하는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입니다. 대하드라마에는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게 마련인데 그 중 모세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인 셈입니다. 그는 드라마 초반에 죽고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지만 죽은 다음에도 그는 직접, 간접으로 등장하여 다른 주인공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의미의 주인공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모세의 출생과 그가 유아시절에 겪은 위기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거기에는 네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이들 덕분에 위기를 넘기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두 사람의 히브리 산파입니다. 그들은 히브리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죽이라는 절대 권력자 파라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살려두었고 나중에 파라오의 추궁을 받자 기지를 발휘합니다. 모세도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내아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들이 파라오의 명령에 불복한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나 징벌을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려는 일을 중히 여기고 그 뜻에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집트 공주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나일 강가에 목욕하러 나갔다가 갈대숲속에 놓여있는 갈대상자를 발견합니다. 그 안에 사내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그는 건져냅니다. 측은지심이 발동했던 것이지요. 그녀는 아기가 히브리인 아기임을 금방 알아봤지만 일단 발동한 측은지심에 이끌려 아기를 살려내 양자로 삼기로 합니다. 여기서 공주가 모세를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겼다’는 대목이 중요합니다. 측은지심은 모든 종교의 사회적 가르침의 바탕입니다. 이는 모든 종교에 해당됩니다. 그러니까 이집트의 공주는 이집트와 히브리인의 차이를 뛰어넘어서 영혼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본적인 감정이자 모든 종교의 바탕인 측은지심에 충실했던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세의 누이입니다. 이 지혜로운 아이는 갈대상자 안의 동생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멀리서 지켜보다가 공주가 동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나서서 생모를 모세의 유모로 추천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집트 공주의 양자가 됩니다.

 

양자에 관한 이집트의 관습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없지만 메소포타미아의 관습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아이를 정식으로 양자로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유모에게 맡겨 유모의 집에서 젖을 뗄 때까지 약 2-3년간 기르게 했습니다. 그 기간이 끝나야 정식으로 아기를 양자로 삼았다는 겁니다. 그 까닭은 높은 유아사망률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어렸을 때 죽는 아기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란 후에야 비로소 양자로 삼았다는 것이지요. 이집트의 관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구약성서 출애굽기는 공주가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서 모세의 친모를 유모로 삼아 기르게 했다는 얘기를 한 다음 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성인이 된 모세로 넘어갑니다. 중간 기간에 대해서 출애굽기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 얘기의 흐름에 큰 갭이 있는 셈입니다. 이 갭을 랍비들이 그대로 놔뒀을 리 없습니다. 많은 랍비들이 흥미로운 얘기를 만들어내서 이 갭을 메웠지만 그것들에 큰 비중을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그 하는 말과 하는 일에 능력이 있었습니다.”라는 사도행전 7 22절은 고려할 만합니다. 이에 따르면 그는 이집트 왕궁에서 고위층만 받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과 행동에서 큰 능력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데 저는 이 문장을 모세가 그렇게 해서 이집트인이 됐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그렇게 교육받은 모세는 뼛속까지 이집트인이 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그는 어디로 보나 이집트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최상류층 이집트인이 말입니다.

 

 

살인자가 되다

 

좌우간 성인이 된 모세가 어느 날 왕궁 밖으로 나가 히브리인들이 사는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가 그 날 처음으로 바깥나들이를 했는지 아니면 전에도 한 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그는 그 날 바깥세상에 나가서 중대한 사건을 겪습니다. 이는 부모에 의해 궁전 안에만 머물러 있던 싯다르타가 처음으로 궁전 밖으로 나갔다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큰 고뇌와 슬픔을 느꼈고 그로 인해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과도 비슷합니다. 모세도 궁전을 나와서 세상으로 나갔을 때 동족 히브리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봤습니다.

 

싯다르타에게나 모세에게나 세상을 직접 보고 경험하는 일이 깨달음의 계기가 됐습니다. 싯다르타는 보리수나무 아래서만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모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에게 깨달음 또는 야훼의 부르심은 미디안 광야 하나님의 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분을 만났던 순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깨달음의 계기는 실제로 세상을 보고 경험한 일이었습니다. 세상 현실이 어떤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거기서 어떻게 사는지, 어떤 고통을 당하며 어떤 고난을 겪는지 보는 것, 바로 이것이 깨달음의 시작이요 신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의 세례’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 두 종류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세례와 세상의 세례가 그것입니다. 신앙의 세례는 우리 모두가 받은 물세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실 분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 말했습니다. 불과 성령의 세례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에 따르면 훗날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았지요. 제가 말하는 세상의 세례는 이와 같은 공식적인 세례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그 안에서 세례를 받고 거듭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모세가 세상으로 나아가서 세상을 보고서, 구체적으로는 동족 히브리인들이 삶을 살아가는 히브리인 구역을 보고 뭘 느꼈을까요? 그들의 비참한 삶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그는 대체 뭘 느꼈을까요? 두세 살 이후로 줄곧 이집트 왕궁에서 살아온 모세에게 동족 히브리인은 누구였을까요? 그들이 고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뭘 의미했을까요? 그들의 고통을 모세도 느꼈을까요? 거기 공감했을까요?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잇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모세의 친모가 그에게 젖을 먹이면서 겨레의식을 교육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출애굽기 어디에도 없습니다. 과연 그의 어머니가 그런 교육을 했을까요?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두세 살 된 아기에게 겨레교육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아기에게 히브리 교육이 웬 말입니까. 따라서 모세에게 대단한 히브리 의식이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사실쯤은 알았겠지만 말입니다. 그렇다 해도 성인이 될 때까지 이집트 왕궁에서 받은 교육이 그의 히브리 의식을 압도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입니다.

 

모세는 동족 히브리인이 이집트인에게 매를 맞는 걸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족을 괴롭히는 이집트인을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읽어보면 사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살인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주도면밀하게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했습니다. 그는 “좌우를 살펴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동족을 괴롭힌 이집트인을 쳐 죽여 시신을 모래 속에 묻었다고 했습니다. 주도면밀하게 살인했을 뿐 아니라 시체를 숨기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과실치사나 우발 살인이 아니라 의도적인 살인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인을 살인한 얘기는 하나의 단순 에피소드 같지만 잘 살펴보면 그렇게 단순한 얘기가 아닙니다. 폭력(violence)과 그에 맞서는 대항폭력(counterviolence)의 얘기니 말입니다. 상대방이 폭력을 행사한다고 그에 맞서서 나도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두고 인류가 벌여온 논쟁은 폭력 그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습니다. 이를 성서는 “악으로 악을 갚는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8-39)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므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대항폭력을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왔습니다.

 

대항폭력은 이미 자행된 폭력을 전제합니다. 폭력이 행해지지 않았다면 대항폭력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대개 첫 폭력은 강자가 휘두르고 이에 대한 대항폭력은 약자의 저항수단입니다. 그런데 폭력에 대해서 비판받는 쪽은 대개의 경우 약자의 대항폭력입니다. 이는 매우 부당합니다. 첫 폭력이 없었더라면 대항폭력이 벌어질 리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폭력과 대항폭력이 행해졌을 때 첫 폭력을 행한 쪽이 왜 그랬는지를 잘 알아보고 그것을 정당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저항폭력 또는 대항폭력도 폭력입니다. 결국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비폭력 무저항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는 매우 고양된 영혼만이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이 방법으로 저항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아서는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이룬 평화는 폭력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으로 성취한 정의는 폭력으로만 유지되니 결국 그 정의는 실종되고 맙니다.

 

모세에게 맞아죽은 이집트인은 히브리인을 그냥 때리기만 했는데 모세는 그를 때려 죽였습니다. 이 경우에는 원초적인 폭력보다 대항폭력의 강도가 더 강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전통일까요,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과 여타 중동국가들에 대해서 모세와 비슷한 짓을 행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저지르는 작은 폭력에 대해서 더 큰 폭력으로 보복을 행하니 말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인을 때려죽인 행동을 범죄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고난당하는 동족을 구출한 영웅적인 거사로 여겼을까요? 어쨌든 모세는 그 이튿날에 히브리인 구역에 다시 갔답니다. 그는 거기에 왜 갔을까요? 범죄자는 자가가 범죄를 저지른 현장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데 그래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는 그 이전에도 동족이 사는 구역에 가곤 했을까요? 그는 이번엔 히브리인 둘이 서로 싸우는 걸 봤다고 했습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을 말리란 속담이 히브리인들에게도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다투는 사람들을 말리려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만 성서가 ‘잘못한 사람’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원어는 ‘라샤’입니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악인’이란 뜻입니다. 그는 모세의 눈에만 악인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악인이었다는 말이니 그의 선악 판단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악인은 모세에게 수긍하지 않고 적반하장 격으로 대들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 당신이 이집트 사람을 죽이더니 이제는 나도 죽일 작정이오?

 

 

도망자가 되다

 

이 말을 들은 모세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을 겁니다. 우선 그는 자기가 저지른 살인이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데 놀랐을 것입니다. 주위를 살펴보고 보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저지른 살인인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가 말입니다. 이에 못지않게 놀라운 일은 동족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죽였다면 자긴 동족에겐 영웅이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란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동족이 그를 영웅으로 여겼다면 이렇게 대했을 리 없지 않습니까. 모세는 그들에게는 여전히 이집트의 왕자였던 것입니다. 하긴 그가 입고 있는 옷이 그걸 웅변했을 터입니다.

 

모세는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던 자기의 살인행위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더욱이 파라오가 이 일을 알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는 파라오를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미디안 땅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그리고 미디안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다만 그게 어딘지 추측할 뿐이고 미디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구약성서가 전하는 단편적인 얘기들을 갖고 추론할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구약성서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입니까!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눈곱만큼 알고 있는 걸 갖고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좋다는 사람들에게서도 흔히 보는 태도입니다. 이 얼마나 큰 착각입니까.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시는 분이고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신비한 분입니다. 신앙인이든 무신론자든 하나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미디안이 어딘지, 미디안 사람들이 누군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곳에 대해 아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미디안 땅은 야훼 하나님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 곳이란 사실입니다. 어느 날 모세가 우물가에 앉아 있는데 훗날 그의 장인이 될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이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그리로 왔습니다. 이때 남자 목동들이 나타나서 여자들을 쫓아버렸습니다. 일종의 폭력을 쓴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여인들을 도와서 양 떼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여인들이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아버지가 딸들에게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그런 사람을 그대로 두고 오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 그를 불러다가 음식을 대접해라.”고 말했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딸을 시집보내기가 어려웠던지 르우엘은 그렇게 해서 자기 집에 온 모세를 딸 십보라와 혼인시켜 사위를 삼았습니다. 나중에 그녀가 아들을 낳자 모세는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라고 탄식하면서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집트의 왕궁에 살던 모세는 어느 날 세상에 나와 보고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세상은 자기가 사는 왕궁과 다르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는 이때 ‘세상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는 동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집트인을 때려 죽였습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섰던 것이지요. 자기에게 가해지지 않은 폭력에 대해서 그는 대항폭력을 행했습니다. 측은지심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불타는 정의감이었을까요? 그는 마땅히 해야 하는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동족 히브리인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모세는 여전히 남이었습니다. 모세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오?”라는 말로 냉대를 받았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모세는 여전히 이집트의 왕자였고 자기까지 죽일 수 있는 두려운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그에게는 또 한 번의 세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집트 왕자의 옷을 벗고 히브리 노예의 옷을 입어야 하는 세례, 곧 진정 낮아져서 받아야 하는 세례 말입니다. 신약성서 히브리서가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을 때 이와 비슷한 뜻이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잠시 죄의 향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받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모욕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장차 받을 상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히브리서 11:24-26).

 

그때까지 철저하게 침묵하던 야훼 하나님이 긴 잠에서 깨어난 때가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모세가 당신 백성들을 이끌고 나올 준비를 갖췄음을 하나님은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야훼 하나님은 드디어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 얘기는 다음 주일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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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1 내각·청와대 인선 마무리 (역대 정부 비교) No Name 2013.02.20 2529
10350 쓰레기 폭로 바이블 2013.02.2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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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46 요즘 내가 쓰는 새로운 계시록 연구 최종오 2013.02.2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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