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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때
매미 소리 자지러지는 저수지 주변을 서성거리며
이유 없이 가슴 설레느라 바빠
기도하지 않았다.
서울삼육초중 출신 ‘토박이들’과
‘비서울삼육계들’이
오랫동안 먹어온 비빔밥처럼
한 뚝배기 속으로 두루뭉술 어우르느라 바빠
기도하지 않았다.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 멍하니 바라보다가도
도르르 땅에 구르는 도토리 한 알에 다시 가슴설레느라 바빠
기도하지 않았다.
결국 다가오고야 말 입시지옥을 겁내면서도
곧 어른이 되어야 하는 부담마저 뒷전으로 돌리고
교복만큼은 절대로 벗지 않을 것처럼 버티며
오기 부리느라 바빠
기도하지 않았다.
원시적 성욕과
딱 그만큼의 원시적 시혼(詩魂)이
칡넝쿨처럼 영혼 속으로 하나 되어 뒤엉켜들고
그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정과 인식의 지평선이
태양처럼 이글이글 떠오를 때
그러나
성性스러움과 성聖스러움은 결코 섞일 수 없다는
잘못된 명제와 가르침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혼동의 폭풍이
우리를 볶아치기 시작했을 때
그때 우리는 그럴 틈이 없어
기도하지 않았다.
얼어붙은 저수지 소나무 숲 훑고 가는
태고의 음향에
또한 귀 기울이느라
우리는 기도하지 않았다.
오얏봉에 오른 우리 입술 사이로 새어나갔던 것은
철모르는 아이들의
재재거리는 말장난이었을 뿐
기도가 아니었다.
그래, 그때 우리는
기도하지 않았다.
이제
어스름한 저녁녘
엘에이 한인타운 뒷골목 노래방
그때 그 가시나들과
엉덩이 흔들면서 춤추며
깨달은 것 하나
그래,
그동안 살아온 나날들이
그리고
그보다는 조금 모자랄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이
그 삶이 바로
하루 한 줄
하루 한 줄
우리의 기도였다.
아멘.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