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부조직개편 지연사태가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최대난관이 되고 있다. 

출항의 기적소리는 울렸는데, 선장의 ‘지시’가 없으니 선원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몰라 선실에서 시간만 죽이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의 한 사무관은 “어디서 일하는 지도 뭘 할지도 모르는데, 무슨 일이 손에 잡히겠나. 지금 방통위원회는 거대한 PC방이 됐다”고 자조했다.
 
  
취임식에서 거수경례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금 중앙정부 조직의 많은 공무원들이 하루종일 사무실의 PC만 쳐다보며 ‘웹서핑’이나 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원하지 않게도 일하지 않고 월급만 타먹는 ‘밥벌레’가 됐다. 국민들은 자신이 낸 ‘혈세’가 비자발적 ‘밥벌레’들의 먹이가 되고 있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무원이나 국민들이나 새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는 것이다.
 
나라를 ‘무정부상태’로 몰아넣은 ‘방송정책권’ 이관 문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의외로 간단한 문제다. 여당은 현 방송통신위원회가 갖고있는 ‘방송정책’의 권한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자는 입장이고 야당은 그대로 두자는 입장이다. 정부와 여당이 내세운 명분은 ‘정보통신강국’이 되기 위해선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이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인 반면, 야당은 정부여당이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정부조직내에 국회의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소위 '독임제' 부처로 방송정책권한을 이관하려한다는 주장이다. 정부여당은 산업적 효율성을 강조한 반면, 야당은 방송의 정치문화적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방송산업은 비즈니스로서의 효율보다는 정치문화적 특수성이 강조돼 왔다. 그래서 인허가 등 규제정책과 기금지원 등 진흥정책에 있어서도 일반 산업부처가 아닌, 별도의 전문적 정부 조직을 두어 관장해 왔다. 다만, 그 정부 조직의 운영 방식은 '독재정부'과 민주정부 시절에 확연히 갈렸다. 독재정권하에서는 방송이 ‘통치수단’이 됐다는 점에서 공보처나 문화부 등 대통령과 장관이 직접 의사결정권을 가진 ‘독임제’ 부처가 관장했던 반면 김대중 정부 이후 민주정부에선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함께 인사권을 통해 운영하는 합의제 독립행정기관이 관장해왔다. 방송위원회가 그랬고, 그 후신인 ‘방송통신위원회’도 그렇다. 이 기조는 국가운영의 효율성을 강조한 보수정권인 MB정권하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왔다. 이런 점에서 정부 여당의 입장은 독재정권의 운영방식으로 회귀한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도 방송의 정치문화적 특수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지상파와 종합편성 등 보도부문의 인허가권 등은 방통위에 두고 유료방송 플랫폼과 비보도PP에 관한 인허가권 등 비보도 방송부문에 관한 정책권한을 가지고 가겠다는 방안을 내놓고 있는 점 역시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방송정책권한을 보도와 비보도 부문으로 나눠 규제하고 진흥한다는 것이 현행 법체계상 맞지 않는다. 규제와 진흥의 근거가 되는 방송법을 ‘보도부문’과 ‘비보도부문’으로 나누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나뉜 적도 없고 나뉘어서도 안된다. 별도의 법안인 'IPTV법'의 존재를 이유로 내세우는 것 같은데 이 역시 맞지 않다. IPTV법을 따로 제정하는 바람에 규제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해 오히려 지난 5년간 IPTV법과 방송법을 통합하자는 논의가 이뤄져왔다. 
 
또한 관할 부처가 다른 사업자 간 분쟁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도 문제도 있다. 지상파사업자 등 종합편성 또는 보도PP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간의 분쟁도 존재해왔다. 케이블TV의 지상파 재송신문제가 대표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가장 큰 과제중의 하나다. 이같은 문제는 어느 기관에서 해결할 것인가. '플랫폼'을 관장하는 기관이면, '플랫폼'편을 들 것이고, '지상파'를 관장하는 기관이면 지상파의 입장을 옹호하는 정책기관 간의 편가르기가 명략관화하다. 이런 식의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단순해 보이지만 앞으로 ‘보도’냐 비보도냐를 따질 규제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이미 과거 방송위 시절 그런 경우가 발생한 적이 있고 관련한 행정지도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런 경우, 어느 기관이 그 문제를 따질 지도 문제다. 일반PP채널에서는 유사 보도 프로그램들도 많다. 앞으로 보도 프로그램과 비보도 프로그램 사이의 경계도 모호해지는 탈장르 프로그램도 생겨날 것이다. 그 어느 기관이 그런 프로그램들에 관한 문제들을 구분해서 규제할 것인가. 보도와 비보도사업자를 따져 규제와 진흥정책을 나누겠다는 것은 규제의 사각지대만 만들어 오히려 정책의 혼선만 초래할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로 방송 플랫폼사업들에 대한 규제 진흥권한을 가져가서 '정보통신강국'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것도 참 허망한 구호다. 방송 플랫폼 사업은 해외시장으로 진출해 대단한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출지향 사업이 아니다. 철저히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내수 산업이다. 한마디로 ‘정보통신강국’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그런 구호는 이미 종합편성채널 도입할 때 이미 국민들이 귀가 따갑게 들었던 소리다. 종편을 출범시킬 때 ‘콘텐츠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선전했지만 지금 이 말은 그냥 '말잔치'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종편의 대부분이 국내정치 프로그램으로 시간이나 때우고 있는 실정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은 1일 김행 대변인을 통해, 임시국회가 끝나는 5일 전까지는 정보조직법 개편안을 반드시 통과시켜달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행 대변인은 “방송 장악기도라는 야당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정보통신기술 강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업무를 통합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원안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김행 대변인을 통해 밝힌 박 대통령의 입장을 살펴보면, 미래부로 이관하겠다는 방통정책의 권한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비중을 두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가적으로 큰 실익도 없는 사안에 대해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고집하고 있으니 오히려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는 것이다. 더욱이 국내 산업적으로는 통신사업자들이 주도하는 ‘유료방송 플랫폼’이 매출이나 수익면에서 방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지상파를 비롯한 방송콘텐츠사업자들의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다. 독임제 부처가 이런 ‘유료방송 플랫폼’에 대한 권한을 쥐겠다는 것은 플랫폼들에 대한 통제 권한을 이용해 종합 및 보도 방송사업자인 지상파방송 사업자나 종편·보도PP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려 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낳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들 플랫폼 사업자들은 채널 편성권을 갖고 있지 않은가. 
 
앞서 지적했듯 따지고 보면, 정부여당 입장에서 국정운영의 총량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본다면 정말 지엽적인 문제다. 반면에 야당이나 방송계 입장에서 보자면 기존의 사회적 합의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여당의 횡포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리는 사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안의 경중에 대한 판단력과 국정운영 파트너로서 야당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하다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원하지 않게 밥벌레로 전락한 공무원들과 실망하고 있는 국민들이 모두들 선장인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상황은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