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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10 / 사순절 넷째 주일

 

두려워서 죽였다!

마가 11:27-33

 

곽건용 목사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 일을 하는가?

 

몇 주 전에 한국의 한 인터넷 신문에서 “한국에는 하나님이 20, 재림예수가 50명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소위 ‘이단’이라고 불리는 소종파의 역사를 다룬 기사인데 이에 따르면 길지 않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스무 명이고 재림예수를 자처한 사람이 쉰 명 정도였다는 얘기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자처하다니, 참 배짱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간 간이 큰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람은 유대인보다 배짱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와는 비교도 안 되게 긴 유대교 역사를 통틀어서 하나님을 자처한 배짱 좋은 사람이 제가 알기로는 없는데 한국 기독교는 그 짧은 기간에 무려 스무 명이나 되니 말입니다. 하긴 유대사회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가만 두지 않았을 테니 그럴 만도 합니다. 이에 비해 한국 에선 그런 사람을 처벌하기는커녕 그저 한 번 웃어버리고 마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교 권력자들에 의해 하나님을 참칭하는 ‘신성모독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내가 바로 하나님이다!”라면서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자처하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일을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양 말하고 행동했다고 해서 그들은 예수께 그런 낙인을 찍었습니다. 유대교에서 이런 행동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도 결국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무엇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몰아붙였을까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복음서에 전해지는 여러 사건들을 자세히 살펴야겠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그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1 27절 이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에 얘기했던 이른바 ‘성전정화사건’ 이후에 벌어진 일을 전합니다. 예수님 일행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성전 뜰을 걷고 있을 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앞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었지만 여기에는 ‘장로들’이 추가됐습니다.) 예수께 와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을 자처하는 자칭 하나님이라면 “권한을 주긴 누가 줬다고 그래, 본래부터 내 권한인데!”라고 당당하게 말했겠지만 유대인에게 이 질문은 대답하기 매우 어려운 질문이었음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혜롭게 응대하셨습니다. 여기서 ‘지혜롭다’라는 말은 질문한 사람을 곤란에 빠뜨려서 재치 있게 슬쩍 대답을 피했다는 뜻이 아니라 질문의 의도를 꿰뚫어보고 질문을 던지게 만든 근본전제를 따져 물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으니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내게 대답해 보아라.

 

 

죄 사함의 제사, 죄 사함의 세례

 

이제 처음 질문한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 장로들이 난처한 입장에 빠졌습니다. 사실 이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서 진지하게 질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져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젠 처지가 바뀌어 자기들이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했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대답하면 무리들이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참 예언자로 믿고 있으니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이니 이를 어찌하겠나 하고 말입니다.

 

이 얘기를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요한은 요단강가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베푼 세례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죄 사함’을 위한 세례였습니다. 곧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참회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다는 징표로 베푼 세례였다는 얘기입니다. 세례는 죄 사함의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죄 사함의 조건은 진정한 회개, 참회였고 세례는 죄를 회개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음을 확인하는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겐 매우 낯익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백하고 참회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다고 믿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요한이 베푼 세례는 누군가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한 것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서 이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생각이고 말도 안 되는, 큰일 날 짓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교에서 죄를 용서받는 절차와 과정이 이것과 크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은 사람은 제물로 바칠 짐승과 함께 성전으로 가야 했습니다. 물론 제물로 바칠 짐승은 성전에서도 구입할 수 있었으므로 돈만 갖고 가도 괜찮았지만 그가 가야 할 곳은 반드시 성전이어야 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도 하나님이 성전에만 머물고 계신다고는 믿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를 드려야 할 곳은 성전이었습니다. 거기서 제사장이 주재하는 제사라는 종교의식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반드시 제사장이 주관하는 제사의식이어야 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죄인이든 아니든 제사장 아닌 평민은 제사를 주재할 수 없었습니다. 제물을 바칠 사람은 제사장의 중재로 자기가 지은 죄를 제물로 바쳐질 짐승으로 옮기고(상징적인 행위를 통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 짐승을 죽여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래야 죄가 용서된다고 믿었습니다. 요약하면 유대교에서 죄를 용서받으려면 몇 가지 필수적인 요소들이 있었는데 장소가 성전이어야 한다는 점,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점, 그리고 제사를 중재할 사제가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세 가지 모두를 무시하거나 부인했습니다. 세례를 베푼 곳은 성전이 아니라 요단강 가였고 제물과 사제 모두가 필요 없었으니 말입니다. 더욱이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의 ‘조건’이 아니라 ‘징표’였다는 점에서 짐승제사와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이런 행위는 유대교 권력자들 눈에는 ‘폭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제는 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대답하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겠지요?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대답하면 그것은 성전, 사제, 짐승제사 모두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니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요한의 세례가 사람에게서 왔다고 대답하면 그를 하나님의 참된 예언자로 믿는 수많은 무리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혹 떼려다 오히려 혹을 붙인 꼴이 된 것입니다.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이랬습니다. 예수님도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심으로써 논쟁은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 제기한 질문, 곧 예수님이 무슨 권한으로, 누구에게 권한을 받아서 그런 일을 하시는지는 여기선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 질문은 훨씬 전에 간접적으로나마 대답된 적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2장이 전하는 중풍병자를 고친 얘기가 그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의 어떤 집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을 때입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 집으로 모여들어서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찼다고 했습니다. 이때 네 사람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에 싣고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병자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없었답니다. 이쯤 되면 웬만하면 포기하겠지요. 하지만 이들은 그러지 않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걷어 내고 구멍을 뚫어서 환자의 침상을 아래로 달아 내렸다는 겁니다. 보통 집요한 사람들이 아니지요. 예수께서는 그들, 그러니까 병자를 달아 내린 네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에게 “아들아,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사건이 그냥 이렇게 끝났다면 헤피 엔딩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런데 율법학자 몇 명이 거기 앉아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할까?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어떻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이런 의문이 안 들겠습니까?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의문이 아닌가 말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율법학자입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예수께서 자기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니 딴죽을 걸만도 하지 않습니까? 이들이 속으로만 이렇게 말했다는 점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당신이 뭐라고 죄를 용서한다는 말인가?”라고 소리쳤어야 하지 않은가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의 속마음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거두어 가지고 걸어가거라.’라고 말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당연히 후자가 더 쉽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거두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병자가 일어나서 곧바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리를 거둬갖고 나갔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는 이런 일을 전혀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했다는 것으로 얘기가 마무리됩니다.

 

 

예수께선 굳이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씀했다

 

이 사건에는 깊이 생각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야 하겠지만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난감합니다. 제게 긴 얘기를 짧게 축약하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하여간 가급적 짧게 얘기해보겠습니다.

 

우선 이 논쟁적인 사건이 벌어진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은 병자를 고치신 후에 예수께서 하신 “아들아,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를 ‘아들’이라고 부르신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걸 갖고 예수께 숨겨둔 아들이 있었네, 없었네 하고 논란을 벌인다면 그건 이 얘기를 ‘막장 드라마’로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를 ‘아들’이라 부른 게 아니라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라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이 이 구절을 문제 삼은 것은 큰 실책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이런 실책을 범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게 큰 실책인 사정은 이렇습니다.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라는 말은 영어로 “your sins are forgiven!”입니다. 이 영어문장은 희랍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렇게 옮기니까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이 문장은 수동형입니다. 성경언어에서 이런 수동형을 ‘하나님의 수동형’(divine passive)이라고 부릅니다. 곧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계명의 영향을 받아서 성경은 가급적이면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문장을 능동형으로 표현하지 않고 수동형을 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동형’은 이런 현상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Your sins are forgiven’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은 ‘God for-gave your sins’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이 말을 “내가 네 죄를 용서한다(I forgive your sins).”라고 알아들었으니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는가 말입니다. 율법전문가들이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입장에 서 있었다면 그들도 똑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바르게 말씀했는데 이들이 공연히 딴죽을 걸었다는 얘기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본래부터 예수님이 그들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문제 제기를 일축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거두어 가지고 걸어가거라.’라고 말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그런데 이 얘기를 잘 살펴보면 예수님은 이들이 제기한 문제의 범위를 넘어서서 죄를 용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며 누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또는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은 말씀을 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죄를 용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 병자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병, 특별히 문둥병이나 중풍이나 태생 소경처럼 나을 수 없는 병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믿었습니다. 곧 의학적, 생물학적인 현상에 종교적, 신학적 의미까지를 부여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병에 걸렸다는 것은 병자가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이 벌을 주셨음을 의미했고 병이 나았다면 죄가 용서되었음을 뜻했다는 얘기입니다. 병의 치료 여부를 사제가 판정했다는 데서도 여기에 중대한 종교적, 신학적 의미가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이런 전제를 갖고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중풍 같은 불치병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의 대표적인 본보기입니다. 이런 사람이 구제를 받으려면 여느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바칠 제물을 가지고 성전으로 가야 했습니다. 거기서 사제의 중재로 제물을 바치는 제사를 드림으로써 죄 사함을 받아야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중풍병자 같이 명백하게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사람은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성전에 접근할 수 없으니 제사를 드릴 수 없고 제사를 드릴 수 없으니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생 그 병을 가지고 온갖 차별과 소외를 감수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 당시 실제 유대사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병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차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말로는 ‘질병’이란 하나의 말로 표현하지만 영어는 ‘disease’와 ‘illness’를 구별합니다. 전자는 몸에 생긴 질병을 가리키고 후자는 그 질병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영향이나 효과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경험하는 대로 병이 생기면 그가 갖고 있던 사회적 관계들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까.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이게 현대사회보다 훨씬 더 심했다는 것입니다. 중풍과 같은 불치병을 하나님의 징벌로 이해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중풍병자에게 있어서 중풍이라는 질병은 disease이면서 동시에 illness였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우리는 왜 예수님이 굳이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거두어 가지고 걸어가거라.”라고 말씀하지 않고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단순히 몸의 질병만을 고쳐주시려 했다면 굳이 죄의 용서 운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그의 병에서 disease illness를 모두 보셨고 그 심각성을 아셨고 그것이 병자를 어떤 고통으로 몰아넣는지를 아셨기 때문에 당연히 논란이 벌어질지 아셨지만 “네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라는 도발적인 선언을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illness의 원인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성전과 제사 중심의 죄 사함의 신학임을 아셨으므로 그것을 무너뜨리려 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오랫동안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주제였던 ‘인자’(son of man)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유대교 권력자들은 이 말을 신성모독으로 봤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인자’가 누굴 가리키든 그 말이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써 오로지 하나님만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신학을 거부하셨다고 봐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는 놀라자빠질 만한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룰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압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다음에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 18: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죄의 용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과 땅이 조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자’가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따져볼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구절들입니다.

 

‘인자’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다음 주일에 얘기하겠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인자 이외에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과 빌라도 법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기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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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 2013.03.14 14:01

     그러잖아도 관심과 의문을 갖고 있던 주제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인자' 에 대한 말씀  기대 만땅 !

  • ?
    김 성 진 2013.03.14 16:53

    혹 제가 그런 말을 중풍환자에게 한다면

    몰매 수준이 아니라 면허빼앗기고 이혼 당하고 혼자 어디선가 손가락 빨며 고독히 살고 있겠죠..


    곽목사님 교회에 꼭  방문해서 직접 설교를 듣는다 하면서도

    거리, 시간, 등등..  장애물이 너무 많네요.. 

  • ?
    곽건용 2013.03.15 11:04

    김 교수님께서 글 머리에 두 분 성함을 올려놓은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두 분 댓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ㅎㅎㅎ


    김주영 님, 어쩌나요. 다음주일에 인자에 대한 얘기는 아주 쪼끔밖에 없는데요.


    김성진 님, 님께서 우리 교회에 언제나 한 번 방문하시나, 하고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ㅋㅋ


    장애물이라...... 그건 건너 뛰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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