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잣대
내가 “사”자 이야기만 나오면 발끈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어떤 집사님이 그러셨어요
“장로님 저기 두 불럭 가면 그 유명한 k 장로님의 자제분들이 살아요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해도 교회에는 안 나온데요
안식교 쪽을 보고는 오줌도 누기 싫데요“
그 장로님은 그 시대 유명한 입산파의 거두였습니다
저들이 지정한 날에 예수 안 오시자
그 동안 고통당한 아이들이 하산을 했는데
학벌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돈이 있습니까?
또 아는 사람에게 기댈 데가 있습니까?
그저 막노동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저들 친구들은
배우고 부모덕으로 교회 잘 다니는데
이 아이들은 먹고 살기에 바빠서 교회도 못 나가는 겁니다
그 아비는 그 때도 재림을 다시 기다리는데
아이들은 재림이란 소리만 들어도 이가 갈리는 겁니다
그 부모가 예언의 신을 해석할 때 그 이야기 아니다 라고
한 마디만 해 줘도 말리는데 기여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펴 낸 country living 역시 그런 차원에서 만들었는데
거기 빠진 사람들이 일요일 휴업령 내리면 입산하라는 구절을
그 당시 곧 일요일 휴업령 내린다는 그 시대적 해석에 젖어서
모두들 아멘 하고 따른 결과였습니다
그 이야기 어디 있냐 하면 대쟁투 하권에 있는 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책 1000만권 전파하기를 해도 그런 구절로 입산하는
그런 바보들은 없나 봅니다
교인들이 잘못 하면 그 길을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데
모두들 그렇게 하는 것이 믿음 좋은 것이라고 부추기니
그런 부모를 둔 자식들이 희생양이 되고 죽어나게 된 겁니다
그런 사상이 지금도 교회를 지배합니까?
그럼요 은근히 부추겨야 하는 시댑니다
그런데 부추기만 하지 아무도 총대를 메지는 않습니다
그 말은 말로서만 유효하다는 표시입니다
그 시대는 그런 것들 부추기고 그래야 믿음 있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 자식들 지금쯤 뭐하고 살아갈까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안식교 욕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은 분들도 간혹 있지만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가르더란 말입니다
한 팀은 백년대계의 계획이 성공해서 교회 안에서 성골로 자리 잡고
산으로 간 팀은 아이들 공부도 못 시켜, 밖으로 나가봤자 적용도 못해
오히려 교회까지 등지게 만들더란 말입니다
그럼 교회가 그런 자녀들을 위해서 뭐 해 준 것 있습니까?
그런 분들 생각이라도 해 줍니까?
그것 그들 책임이라고요?
그리 말해도 되는 겁니까?
그 예언의 신이라는 것이 산으로 좇았는데
그것을 성경 이상으로 여기는 교단에서 그 예언의 신을
글자 그대로 다시 믿고 살아간다면 산으로 가는 사람들에 대한
교단의 책임은 없다고 보십니까?
그 사람들이 잘못 이해해서 그렇다 라고만 말로서 때우는 것으로 마칠 겁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산으로 간 사람들은 그렇게 교회와 담을 쌌는데
도시로 나간 분들은 출세가도를 달리더란 말입니다
그들 자녀들은 교회 쪽을 보고 오줌도 안 둔다는데
성골의 자녀들은 교회 좌변기화장실에서 오줌 누고 있더란 말입니다
예수 오신다고요? 언제 오시는데요?
언제까지 그 타령 하고 있을 겁니까?
그런데 그런 타령하는 분들의 자녀들은 아니 그 자신들은
그 날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요?
육신의 정결과 정신적 이상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이 교단에서
도처에서 사고 나는 소식으로 교인들 이맛살 찌푸리는데
그런 일들 예사로이 보는 집행부가 한심스럽더란 말입니다
인간이 사는 곳은 원래 그런 곳이여 하다가도
재림이란 글자에 얽매이면 이건 아니다 하는 내 맘입니다
왜냐하면 재림은 모든 것을 결정 짓는 잣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는 분들 제법 됩니다
사상이 안 맞아서라면 좋을 건데
외형적 경건으로 잣대질 하는 모습 때문입니다
계명과 증언으로 무장하고 모두가 그렇게 무장하기를 바라고
그리고서는 우리만의 구원에 대한 리그에 만족하는 교단을 보면서
지구 70억 인구에 대한 거부감만 양산하는 교단이
한심해서 그럽니다
나야 이 세상 다 살아서 여한이 없습니다만
남아있는 앞길 창창한 젊은이들이 불쌍해서 그럽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이 아닌 이상한 몸짓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재림가족 후손들을 위해서 무언가는 한 번 내 뱉어 보자는 겁니다
이것 하고 “사”자하고 무슨 관련이냐 하고 물을 분들 계실 겁니다
물론 직접 관련을 없습니다만
그 입산했던 자녀들이 도시에 살았더라면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더라면
저들 중에서도 “사”자 돌림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또한 저들 중에서도 성골이 되고 “사”자 직업인 되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겁니다
그럼 어쩌지? 라고 묻고 싶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정말 지도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증언을 글자 그대로 믿어서 손해 간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개인적인 편지를 침소봉대해서 두들겨 팬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 책임 소재 가운데는 예배시간마다 증언으로 두들기던 목사들도 포함된다는
그런 말을 내가 지금 하고 있습니다
대쟁투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입으로만 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보여 주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성골 때문에 망했다는 역사적 증거를 보시기 바랍니다
백성들은 죽은 조조군사였다는 것도 아시기 바랍니다
공감합니다.
로산님 만일 여력이 있으면
입산 때문에 마음에 피멍이 든 분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 어떨는지요
힘들게 사신다면 힘 닿는데 까지 도와주는 방법은 없을까요?
베트남의 라이따이한이 있습니다.
이들은 월남전 파병으로 베트남여인과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이들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로산님이 올려주신 기사의 예는 우리 재림교회의 '라이따이한'입니다.
그들을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사'자 분들.....
P.S.
그들을 도와준다는 것은 그들을 다시 교회다니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돌봄은 아무 목적 없이 그리고 피해를 당함에 대한 속죄의 차원에서라도
돌봄이 필요 합니다. 다른 돌봄에 앞서서 그런 이들을 먼저 돌봄이 필요하지 않을지요.
( 도르가회에서 도와줄 때 우선적으로 도우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