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기십자가, 존스타운, 그리고 선악과와 구원의 경륜.. 학생님의 글을 읽고.. (수정)

by 김 성 진 posted Mar 29, 2013 Likes 0 Replies 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아래 김주영님글에
학생님이 댓글단 내용을 읽고
그동안 이 토픽에 대해 나름 생각해왔던것들을
대충 정리해본다..
 
학생님의 글은 아직 못 읽어본 분들을 위해
아래에 퍼놓았다..
 
=====
 
구원론, 
선악과, 
하나님, 
예수님, 
십자가, 
아담, 
짐승의 표, 
666, 
유황불, 
심판,
복음,
등등등..
 
성경에 나오는 위 단어들, 개념들, 이야기들..
또 저런것들을 재림교회식으로 재해석한 재림교회 교리들..

암만 교과서로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성경주석 몇번씩 편집해가며 쓰고 또 쓰고,
머리 굴려가며 앞뒤옆아래위 맞추어가며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를 하려 해도
절대로 결론이 날수 없는 이유..
 
무엇일까???
 
=====

기왕에 김주영님께서
이번 과정공부에 나온 선악과와 아담의 얘기에 대해서 화두를 던지셨으니까
선악과와 아담의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선악과와 아담의 죄로 시작하는 구원론, 십자가, 예수 (2번째 아담) 의 이야기에
학생님 말대로 "논리적 구멍" 이 너무 많은 이유..

선악과와 아담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드리는 전제하에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며 끼워맞추기 때문이다..

만약 창세기 1-3 장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냥 그 당시 유대인들이 삶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한 단순한 예화가 아닌
역사적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 (Historical fact) 이였고,
그 역사적 사건이 4 천년후에 나타나는 제2의 아담 (예수님)의 죽음과 
신약이 말해주는 사랑의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경륜과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면,
학생님 말마따나 이건 앞뒤가 맞지도 않고, 논리적 구멍도 엄청 많고, 너무나도 비이성적인 개념이라서 
쉽사리 받아드려지지가 않을수 밖에 없다는 당연한 결과가 나올수밖에 없는것이다..

그리고 우린 지난 수십년동안
쉽사리 받아드려지지 않을수 밖에 없는 개념을
어떻게해서든지 받아드려질수 있도록 하기위해 전세계적으로
수천, 수만, 수십만번의 안식일학교 교과공부와 신학대 교수들의 강의와 목사들의 설교와 시조사의 책들을 통해
별의별 억지를 쓰며 노력을 해왔고, 노력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만 하고 있을것이다.. 

"왜 이렇게 앞뒤옆아래위가 맞아떨어지질 않지???"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계획한 구원의 경륜에 수많은 논리적 구멍들이 있는건 왜 그럴까???"

영원히 이러고만 
있을것이다..

창세기 1-3 장을 역사적 사실로 믿어버린 상태에서는
절대로 앞뒤옆아래위가 맞아 떨어지는 논리가 나올수가 없다는 사실은 간과한체,
돈, 시간, 에너지 쏟아 부으며 별의별 방법으로 선악과와 구원의 경륜과의 관계를
어떻게서든지 끼워 맞추려는 노력만 계속 할것이다..

 
=====

창세기 1-3 장에 나오는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와 선악과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기 위해 성경에 있는 걸까???

역사적인 구원의 시초를 알려주기 위해???
인간 창조에 대한 역사을 통한 구체적인 설명???
제2의 아담인 예수와 그를 통한 구원의 경륜에 대한 역사적인 서두???

아니다..
전혀 아니다..

간단한 인생의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를 가지고
창조, 제2의 아담, 구원의 경륜 등등 거창한 언어들로 
앞뒤옆아래위 전혀 맞지않는 개념을 억지로 짜내려고 하니까
암만 토론하고 머리맞대고 고민해봤자 결론이 나올수가 없는 것이다..

선악과 얘기는 그저,,,

인간은 선과악을 구분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처음엔 순하기만 한 어린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선과악을 구분할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이 어디서 나온것이고, 왜 생겨진 것이고, 왜 필요한것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냥 전지전능한 그 무엇, 즉, 하나님이 인간의 선택과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선악과란 과일을 만들어 인간을 유혹했는데 
하필이면 인간이 그 과일을 따먹어서 선과악을 구분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재미나는 이야기로 
이 부분은 대충 설명하자..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것은 
선과악을 구분할수 있는 능력이 어디서 나온것이고 왜 필요한지를 역사적 사실로 알고 믿어야 하는게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소유하고 있는 이 능력을 
남들과 같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것을 배우는것이 중요하다..

화딱지 난다해서 죄도 없는 동생을 죽인 가인은 
선과악을 구분하는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인처럼 살면 안된다..

선과악을 구분하는 능력을 제대로 콘트롤하지 못하면
저렇게 친동생까지도 죽이는 실수를 범할수 있다..

자신을 궁지에 빠트린 멍청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내 하와와 이혼하지 않고
에덴에서 쫒겨나는한이 있더라도 죽을때까지 하와와 함께한 아담은
선과악을 구분할줄 아는 능력을 최선을 다해 사용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담의 지혜로운 선과악의 구분력을 교훈삼아야 한다..

배우자의 바보같은 행실에 화가나고 증오심이 불타오른다 해도
그 타오르는 불길을 사랑으로 덮을줄 아는 선과악의 분별력을 배워야 한다..

아무리 선을 행하는 천사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방심은 절대금물이다..

언제 어디서 내면에 잠재하는 
악한 모습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쁜 뱀으로 변신한 천사 루시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갈것이다..

이렇게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되는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스토리를
역사적 사건으로 탈바꿈 시켜버리기에,
선악과의 단순한 스토리를 시작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경륜까지 이어지는
말도 안되는, 앞뒤옆아래위가 전혀 맞지 않는 거창하기 그지없는 개념이 나오는 것이다..

=====

하나님과 아담과 선악과의 이야기는
그냥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주는 재미나는 이야기로 끝이 나야 한다..

이게 바로 선악과 이야기를 만든
옛날 유대인들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선악과 이야기를 통해
더 의미있거나 또 다른 방향의 인생에 대한 교훈을 얻을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통해 
안식교인들 뿐만이 아닌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에 이익이 될수 있는 여러가지 실질적인 교훈을 찿는 목적으로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

안 그런가???
 
하지만 이렇게 인생에 대한 좋은 교훈을 위한 단순한 이야기로써 끝나지 않고
선악과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면서 
이것을 서두로 예수의 십자가까지 들먹이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란 거창한 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학생님이 언급하듯 앞뒤옆아래위가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고, 수많은 논리적 구멍이 있는
요상망칙한 교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는 교인들에게
너무 따지지 말고 믿음으로 무조건 믿어버리라고 한다..

물론 귀찮게 따지지 않고 
맘 편하게 무조건 믿어버리는게 오히려
대다수 교인들에겐 더 쉬울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억지믿음을
학생님 말마따나 기뻐하며 속시원히 받아드릴수 있을까???

박명호의 앞뒤옆아래위 전혀 맞지 않는 창기십자가 교리를 
기뻐하며 속시원히 받아드리는 사람들이 있는걸 보면,
선악과와 십자가와 구원의 경륜을 연결짓는 교리를
이해가 되지않던 논리적 구멍이 많던 상관없이
기뻐하며 속시원히 받아드리는 수많은 안식교인들이 존재할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성적으로 말이 안되는것이 있으면
이성적으로 말이 될때까지 일단은 의심을 먼저 해보고 따져봐야 한다는 사실을..

논리적 구멍이 수많은 교리를 무조건 믿으라고 어느 누가 말한다면
논리적 구멍이 제대로 채워질때까지 일단은 믿지않고 고민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억지성이 두드러지는 개념이 과정책에 쓰여져 있으면
기뻐하며 속시원히 받아드려질수 있을때까지 그 개념을 재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박명호파 사람들과 존스타운 사람들의 가장 큰 실수가 바로
의심, 고민, 재고의 결핍이였다는 사실을..




끝..



p.s.
선악과와 구원의 경륜을
어떻게 창기십자가나 존스타운과 같은 수준으로 다룰수 있냐고 따질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아래 안식교회의 입산파들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또 개인적으로도 입산파의 쓰라린 고통을 맛보았던 사람으로써
사람들에게 해로움을 주는 스케일이 조금 다를뿐
전체적인 관점으로 봤을때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
 
 
학생님 wrote;

"God is no longer angry at you!"

---------------------------------------

This implies that He was angry at you before the cross.

그럼 십자가는 결국 화난 하나님을 달래는 역활을 한다는 것인데...

그게 과연 사랑일까요?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는 말은

임의적인 법의 선포였을까요

아니면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에 대한 warning 이였을까요?

선악과를 따먹으면 왜 죽어야만 할까요?

불순종 했기때문에 하나님이 죽이는 걸까요?

불순종했다고 자식 죽이는 부모는 도대채 사랑이란걸 아는 부모일까요?

그런 말도 안되는 법을 만드신 이유는 뭘까요?

선악과가 있어야만 자유가 있는 겁니까?

그럼 선악과가 없는 지금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는 걸까요?

사단은 선악과 없이도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범죄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는 왜 죽어야만 헀을까요?

왜 독생자를 죽여야지만 용서가 될까요?

법적인 대속으론 쉬 답이 안나오는 문제들 입니다.

복음이 무력한 이유는 "복음"에 논리적 구멍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앞뒤가 잘맞지 않고 비이성적인것은 억지로 믿을순 있겠지만

기뻐하며 속시원히 받아드리기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Articles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