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교회에서 꼭 없어야할 존재...

by student posted Apr 07, 2013 Likes 0 Replies 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주영님,


답장이 늦었습니다. 

이번 주말  프린스턴 재림교 학생들이 주최 하는 콘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공교롭게도 콘퍼런스의 내용이 바로 대쟁투적인 관점에서 심판”이었습니다.

약 300-400명정도 젊은이들이 모였었는데 에너지 레벨이 엄청났습니다.

재림교회가 제가 생각했던것 만큼 침체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이벤트 였지요.

답장이 늦은 설명을 하다보니 말이 삼천포로 빠졌네요.^^


사과를 따먹은 결과가 그렇게 크다면 십자가의 결과는

그보다  훨씬 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멘 입니다!  물론이 지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치지요.

이사실을 deny 기독교인들이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죄” 정의 이죠.  과연 무엇이 죄이냐?

죄라는 것이 혼자 따로 존재하는, 그래서 우리가 갖기로 선택하는  “섬띵”인가?

만약 그렇다면 님의 말씀대로 섬띵이 하나님보다 강한 신” 되겠죠.

섬띵을 처리 하지 못하시는 하나님….

한심하죠.

뿐만 아니라,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주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지 않은 무슨 섬띵”

존재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 하신것도 아니요

전지전능하신 것도 아닌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하나님이 창조하신것 외에 존재하는

무슨 섬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를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죄의 문제를 쉬 해결하기가 힘든겁니다.

깨진 관계는 치울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한사람이 해결할수도 있는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계” 단어가 암시하듯 혼자서만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그 관계의 대상도 인볼브가 되야지만 해결이 되는문제란 말이죠.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지만 분이 관계를 맺은 우리가

너무나 부족한 피조물이기에…  물론 하나님 입장에선 관계를 끊어 버리면

그만 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관계를 리페어 하자니

프로세스가 길어지고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물론   관계가  “법”적인 계약관계이냐, 아니면

부모 자식같은 사랑의 관계이냐 따라서 문제가 간단한히 해결될 수 있느냐

 아님 그 해결프포세스가 길어질 수도 있느냐가 결정 된다고 전 생각합니다.

어떤 관계냐에 따라서 해결방법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법적인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땐 법적으로 해결 해야 하겠지요. (리갈 섭스티튜숀)  

그리고   패라다임에선 죄에 대한“형벌” 결국은 법” 제정한 사람이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회복에 있어서 형벌과 용서는 페러다임에 센트랄 포인트가 됩니다.

이게 현재 이반젤리칼 들이 받아들이는 구원론이죠.  

전제자체가  법적인 문제에 대한 법적인 해결이기때문에 

해결도 간단 합니다.  법적인 대속이면 끝입니다.  모든게 법적으로 해결이 됬으니.  

그러나,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건 비상식적이 논리이고  거기다 법적인 대속 자체가  

엄격하고  복수심이 강한 하나님을 전제로 이론 이기에 

거기다 사랑을 같다 붙이면 논리적인 구멍이 많이 생길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모 자식과 같은 사랑의 관계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잘못하면 용서하면 됩니다.  아니요,  잘못하기 부터 잘못할걸 미리 용서 해놨다고 볼수가 있겠죠.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건 사랑과 신뢰 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도

자식이 부모를 신뢰하고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계가 유지되기 힘듭니다. 

이페러다임에서 깨진 관계는  전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신하는 자식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식을 죽도록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부모에겐 책임전가 중요한게 아니라 자식과 깨진 관계를 픽스 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신뢰가 깨졌을때  자식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단 하나 뿐입니다.  자신의 신실함과

자신이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자식의  인격을 얼마나 존중해 주는지 몸소 보여 줘야 합니다.

얼마만큼?  자식이 부모의 진정성을 알아 줄때까지… 

그렇기 때문에 페러다임에서 관계회복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아주 시간을 요할수도 있습니다.  언제 자식이 부모의 사랑에 반응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식의 선택에 달린거지 부모의 능력이나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의 깊이가

그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할뿐입니다.  

이 페러다임 안에선 깨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자식이 부모의 사랑에 반응하고 부모를 신뢰 하기로

선택할때까지 부모는 사랑으로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가 언제가 되던지...


재밌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구원론” 대속”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 장에 보면 구원 받는 3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첫째는 잃어버린 양…본인이 잃어 버렸다는 사실은 알지만 돌아갈 길은 모릅니다.

그때 목자는 99 마리를 방치한체 잃어버린 한마리를 찾아나서서 찾을때 까지” 찾습니다.

대속??  없습니다!


둘째는 잃어버린 동전이야기…동전은 자기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당연히 주인의 지갑으로

돌아갈 길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인은 쓸고 닦고 집안을 집어서  포기하지 않고

찾을때까지 찾습니다. 여기도 대속은 없습니다.


셋째는 돌아온 탕자이야기…방탕한 생활로 가져간 재산 탕진하고 거지꼴로 돌아왔지만

아버진 벌써 용서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지요.  사실 자식은 회개해서 돌아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가 배고파서 돌아간 거지… 아버진 아무조건 없이 자식을 용서했지

이 이야기 속엔 “대속”이란 대”짜도 않나옵니다.


그럼 성경엔 (특히 로마서)법적인 용어가 그렇게 많이 나올까요? (실질적으로 그런 걸까요

아님 그렇게 해석 하는 걸까요?)

구약엔 왜그렇게 많은 법을 주셨을까요? 

사랑의 관계에서 언약” 진정한 의미는 뭘까요?

그럼 하나님은 대속”적인 시로머니를 만드셨을까요?

가장 중요한문제,  예수는 죽어야만 했나요?

십자가를 법적인 대속이외에 다른 관점으로 이해할수는 없을까요?

모든 문제에서 하필이면 1844 나와야 하나요? 


대화를 계속해 봅시다. 


기왕 시작했으니 1844 부터 마치려 합니다. (마지막 한편 남았습니다) ^^

위에 제가한 문제들은 김균님이랑 대화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대화에 님도 끼어 주시길…


좋은 하루 되십시요.


스튜든트 올림.

피.에스.  좋은 글을 저에게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