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껴안는 삶

by 허주 posted Dec 23, 2010 Likes 0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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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제가 좋아하는 시 한편 올립니다.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의 승무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바로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는 구절입니다.


우리 모두 번뇌와 고민없이 살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단지 바람일 뿐,

그것에서 평생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동시에

그런 번뇌를 별빛이라 합니다.


겨울철엔 1등성 별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번뇌 속에 별빛을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은혜이죠.


어쩌면

예수님께서도

세사에 시달리셨기에

우리의 별이 되신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께서는

우리를 번뇌로부터 면제시켜 주시지 않았습니다.

때론

원망스럽고

때론

한이 생기고

때론 도망가고 싶고

때론

죽고 싶고.......


그렇습니다.

번뇌와 고통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번뇌와 고민으로

더 아름다운 구원을 이루신 예수처럼,

번뇌와 고민을 통해

더 밝은 별빛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시지 않나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여전히

번뇌와 고민은 나에게서

제하여 주시기를 소망해 보지만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번뇌와 고민으로부터

내 신앙에 환한

별빛을 비춰 주시길 기도하며

하루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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